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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의 애환(부제:살빼실 분 무료상담)


BY 불토끼 2006-05-25




친구가 어제 전화를 해서 10년 넘게 피워온 담배를 끊겠다고 했다.
헌데 그 소리가 내겐 아주 뜬금없이 들렸다. 왜냐하면...
불과 몇 달 전 아는 언니가(독일에 유학온 골초언니) 담배를 끊다 끊다 못끊어 다른 도시에 용한 최면술사가 있다는 소릴 듣고 최면으로 담배 끊으러 갈 사람을 모집했을 때,

‘그 돈 있으면 담배 한보루 사겠네!’

요랬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담배를 끊는담?
남자라도 생겼나?

사연을 물었더니 단식을 할거란다. 내일부터.
키 155에 몸무게 62. 사이즈 77이 점점 작아지려고 해서 올 여름엔 무슨 일이 있어도 단식으로 살을 빼려고 맘 먹었단다. 그러다 보니 금연이 필수적으로 따라온 것이고.
1시간동안 얘기하며 그녀가 갑자기 살이 찌개 된 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독신으로 5년간 독일에서 자취를 했기 때문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나도 혼자 살아봐서 잘 알지만 전기밥솥에 1인분 달랑 밥을 짓게 되면 밥이 아니라 부침게가 된다. 밥을 한솥 가득해야 밥 푸는 재미도 있건만 이건 바닥에 부침게 모양 눌러 붙었으니 보는 순간 입맛이 딱 떨어진다. 이러면 밥맛도 없거니와 전기 소모량도 많아진다. 해서 알뜰한 그녀, 매번 3,4인분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자주 밥먹기도 귀찮고 해서 3인분을 한꺼번에 먹고 하루종일 굶는다는 것. 이것을 독일 유학온 이래 계속 하다보니 1년에 2킬로씩 차곡차곡 쪄서 60킬로가 넘게된 것이다. 키 165cm도 아닌 155cm짜리 노처녀가.

나는 내 단식 경험을 되살려 그녀에게 여러모로 조언을 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내 인생 암흑기의 슬픈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왕년에 나만큼 각종 다이어트를 많이 해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뼈를 깍는 다이어트의 고통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오죽하면 다이어트 성공률이 암 치유율보다 낮다고 했을까. 그럼 나와 상담을 원하는 분들을 위하여 지금부터 내 살들의 역사를 파헤쳐 보도록 하자.

나는 원래 날씬한 아이였다. 아니 말라깽이였다.
국민학교 1학년 입학시의 몸무게가 18킬로였으니.
여름이면 각종 피부병, 겨울이면 편도선염에 때를 가리지 않는 온갖 잔병치레까지...
그렇게 잦은 병치레에 시달려 살찔 틈이 없었던 내가 중3때 부턴가 우리 여중에 매점이 생기고부터 부쩍 살이 찌기 시작했다. 아직도 분명한 원인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왜 갑자기 살이 쪘을까? 매점때문인가, 여성 호르몬 때문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계속 살이 찌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엔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뚱보’라는 별명이 내게 붙어 있었다.

왜?

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 나는 정신적, 신체적 성장이 다른 애들보다 늦는 바람에 당시 나의 관심대상은 남자도 아니었고 성적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먹는 것이었다. 이 먹는 것에 있어서 만큼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쉽을 십분 발휘했었다.

친구들을 데리고 짜장면집에 가서 빨리먹기 내기를 하는가 하면 1주일에 500원짜리 ‘먹자계’를 조직하여 스스로 ‘장’이 되기도 했다. 1주일에 500원씩 걷어 한달마다 한번씩 인근 도시를 배회하며 먹어대는 것이 우리계의 주된 활동이었다.

그렇게 그 500원 클럽 애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고3 졸업무렵엔 내 몸무게가 63킬로에 육박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500원 클럽의 멤버인 것이 참 아늑하고 좋았다. 거기만 있으면 나는 아담사이즈였던 것이다. 우리중의 하나는 170센티에 80킬로였는데 162센티에 63킬로짜리 나는 거기에서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교활하기도 하지.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은 역전되었다. 여자애들 물좋다는 소문에 다른 과에서 구경올 만큼 우리과 여자애들이 이뻤는데 그 중에 낀 63킬로 짜리 나는 늘 서러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 서러움을 참다 참다 결국 인근의 ‘차밍 에어로빅’이란 학원에서 한달치를 끊어 에어로빅을 시작했다. 새벽반과 저녁반 선생님이 달라 눈치껏 두탕 뛰는 날이 많았음에도 2년이 지나도록 내 몸무게는 58킬로에서 한치도 내려가지 않았다.

58kg.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는 내 몸무게에 절망하여 한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58은 혹시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숫자가 아닐까?’

이렇게 초연하게 내 몸무게를 받아들이게 되었을 무렵 나는 충격적인 모습을 접하게 된다.

고교시절 500원 클럽의 친구들 중 유일하게 나보다 짜장면을 빨리 먹던 애가 인하공전엘 들어갔는데 그 애가 학교를 졸업하고 무지 예뻐져서는 대한항공 승무원이 된 것이었다. 그 친구가 방콕 등지에서 산 가짜 메이커 시계나 트라이엄프 팬티 따위를 멤버들에게 돌리려고 모임을 가질 때마다 날로 아름다워지는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살다보면,
나이들어 생각하면 어리석다 싶지만,
그 시절 그 순간에 꼭 했어야만 했던 행위들이 있다.
내게 있어 그 시절 그 순간에 꼭 해야만 했던 행위는
 단식원엘 들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단식원엘 들어갔다.
수소문하여 대구시내 한복판에 있는, 살이 잘 빠진다는 ‘경북 요가 단식원’을 알아냈다.
여기에 아르바이트한 돈 20만원을 들이부터 10일치를 등록한 것이다.
재워주고 요가 가르쳐주고 물 먹여주는 대가로 10일에 20만원이라...
비싼 감이 없지 않았지만 살이 하루에 1킬로씩 빠진다니깐...

나는 과감하게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원에는 내 또래의 20대 초, 중반 아가씨들 대여섯명이 초췌한 몰골을 하고서 앉아 있었다. 아주 뚱뚱한 사람은 없었고 대개가 60에서 70킬로 사이의 아가씨들. 이들은 모두 단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들어온 게 아니라 나처럼 단시간에 살을 빼기 위해 무작정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 한 아가씨는 단식원에 들어오기 전날 친구들이랑 송별회를 한답시고 술마시고 배터지게 먹었을 만큼 단식에 대해 무지했다.

어쨌든 나는 그 무리에 끼어 단식을 시작했다.

첫째날과 둘째날은 그런데로 견딜만 했는데 세째날부터가 고역이었다. 입안에 설태가 끼고 기운이 없고 심장이 마구 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원장님은 아침부터 우릴 깨워 요가를 시키고...

‘선생님, 힘이 없어서 죽을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으면 죽기 전에 몸이 알아서 기절시켜 줍니다. 걱정말고 요가하세요오-’

당시 우리들의 기쁨은 모여앉아 단식원에 들어오기 전에 먹었던 것을 꼽아보고 상기하는 것, 여성지 요리코너를 보는 것, 저녁 무렵 창문을 열고 어느 고기집에선가 흘러오는 고기굽는 냄새를 맡는 것,

나는 오로지 살을 빼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견뎌 마지막에 가서는 관장을 하고 숙변까지 빼고서는 성공적으로 단식을 마무리 했어랬다.

날씬해진 나. 단식을 끝내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아이구 내새끼,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얼굴이 쾡 해가지구...’

하시며 보는 사람 민망하게 마구 우셨다. (그때 엄마의 얼굴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어쨌든 꿈의 몸무게 50킬로를 달성한 나.
그 이후부터 6개월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
당시 ‘시스템’이라고 주로 쫄바지 쫄티를 파는 의류 브랜드가 있었는데 무지 마른 애들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나는 시스템에서 검은색에 흰 가로 줄무늬가 들어간 짧은 치마와 쫄티를 사입고는 ‘치어리더’같이 해갖구선 개학 첫날 학교엘 갔었다.

뭐, 술렁거렸던 학교 분위기, 끈끈했던 남성들의 눈빛은 생략하기로 한다. 글의 주제에서 벗어남으로.

단식후 관리를 엄격하게 한 덕분에 금방 살이 찌진 않았지만 몸무게에 너무 집착을 하다보니 거식증과 폭식증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제대로 먹을 수 없다보니 다른 사람이 오면 요리해서 먹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했었는데...

어느날 언니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온 것이었다.

나는 양파넣고 계란넣고 참기름까지 두어방울 떨어뜨려 보글보글 맛있게 라면을 끓여 언니들에게 대접을 했다. 한술 뜨라는 언니들의 청을 물리치고 단 한 젓가락도 먹지 않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우루루 가고난 이후였다. 언니들이 남겨둔, 끓인지 3시간이 넘어 불어터진 남은 라면을 손가락으로 허겁지겁 집어 먹고 국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라면을 2개나 끓여 언니가 돌아올까 두려움에 떨며 한꺼번에 그 많은 것을 후루룩 삼킨 인간이 나였다.

심히 부끄럽다.

이런 일이 계속 되었었다면 지금까지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겠지만 다행히도 그 증상은 내가 다시 살이찌기 시작하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예전의 영광을 되돌리기 위해 유행하는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다 해봤지만 조금 빠진다 싶다가는 정확시 58킬로로 되돌아오곤 했다.

결혼식 당일까지도 58킬로였건만...

독일와서 살고부터 기후가 안맞는지 음식이 안맞는지 살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50킬로. 이젠 아무리 살이 쪄도 52킬로 이상 올라가는 일이 없다. 눈도 좀 쾡 해보이고 볼도 쑥 들어가서 살이 붙으면 좀 젊어 보이련만... 희안하게도 이젠 더 이상 살이 찌지 않는다.

살빼려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상담을 해온다(에어로빅 학원 다닐시 원장님의 권유로 교육을 받고 2년정도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무슨 방법이 살빼기에 제일 좋은 방법이냐고. 그럼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 있는 몸무게를 지키는게 제일 좋은 다이어트 방법이라고.

그럼 아컴 언니들은 이럴것이다.

\'지랄하네. 지가 날씬해졌다고 하는 소리지 뭐.\'

이거 절대 아니다. 내가 아컴에 들어와 여러사람들에게 듣기에 좋은말 하느라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다. 다이어트 끝에 1년간 생리를 멈춘 적도 있었고 거식증과 폭식증에 시달려본 사람으로서 권유하는 말이다.

한번 인위적으로 몸무게를 줄이기 시작하면 평생 몸무게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야 한다. 물론 직업적으로 날씬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은 몸이 밥벌이 수단이므로 다이어트를 해야겠지만 일반인은 아주 병적인 비만만 아니면 지금 자신의 몸무게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다이어트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날씬해지려고 고생하지 말고 당신의 마음을 바꾸어라. 그러면 모든 문제는 한순간에 풀린다. ‘나는 건강하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 다이어트를 하느라 시간낭비하는 것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다.

어떨 때 나는 종종 생각한다.
‘몸무게도 팔자가 아닐까?’

그렇게 죽도록 살뺄려고 돈들이고 공들이고 했던 것이 원할때는 이루어지지 않다가 포기하고 무관심해졌을 때 빠지는 걸 보면... 이걸 어떻게 팔자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살찌고 빠지는 것도 팔짜야 팔짜!

내가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얘기를 늘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젊었을 적의 나처럼 죽어도 살빼야 한다 하는 분들 꼭 있다. 이분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린다.
인생에서 60킬로가 넘어본 사람의 애환을 아는 사람하고만 상담하시라.
평생 날씬했던 사람은 뚱보의 애환을 모르기에 상담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당신이 서른전이라면 꼭 이 한마디를 해야겠다.
젊어서 다이어트 하느라 몸 함부로 하지마라.
언젠가 타임머신이 발명되면 그 기계를 타고 50된 당신이
스물다섯된 당신을 찾아와 뺨을 후려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