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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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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그리고 그 아이


BY 영롱 2006-05-24

 보름 전 만난 그녀는 임신 7개월의 부푼 배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불임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니 그녀의 아이 아빠?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사춘기 시절 짝사랑 이야기가 하고 싶다.

 말이 없고, 조숙했던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는 하얀 얼굴의 하얀 미소가 아름다운, 조용하고, 착한 한 동네 남자 아이였다.

 하얀 미소가 아름다워 목련꽃이라 혼자 이름 붙였던 그 아이를 숫기없는 나는, 마음 속으로 정말 좋아했었다.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레어 ,  항상 잔잔한 미열이  있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릿하다.

나의 단짝 이었던 그녀에게, 나는 내 사랑을 어렵게 고백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십여 년이 훨씬  지난 후, 동창 모임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여전히 목련꽃 향기를 몰고 다니는 그 아이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였다.

일찍 결혼해서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 오랜 내가 주책없이 또 설레었다. 그 아이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는 것도 모임에서 깨달았다.

아무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했다.

그 아이는 이혼을 한 상태였다.

얼마 후 그녀와의 통화에서, 사귀는 사람이 그 아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너무 놀라서 한 동안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녀도 이혼 상태였다.

전교 3등 안에 들 만큼 공부를 잘 했고, 명랑했던 그녀는 나의 단짝이면서 또한 나의 열등감을 부추기는 존재였다.

내성적이고, 왠지 주눅 들어 있던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도, 명문대를 진학한 그녀에게 오래도록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그녀는 이혼과 함께 소식을 끊었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연락이 되고, 또 어느날 문득 사귀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또 어느날 문득 불임이라던 그녀는 배가 한껏 부풀어 나타났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뭐라고 해야하나... 정말 그 아이를 그녀가 사귄다고 했을 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 나이에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철없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녀를 만나, 봄 햇살 아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내가 사랑햇던 두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나도 이른 봄, 잎새 보다 먼저 피는 그 아찔한 목련꽃을 보면, 여전히 그 아이가 생각날 것이다.

이런 감정마져 불살라 버린다면, 삶은 참 버겁고, 팍팍하겠지?

하얀 목련이 피면, 다시 생각 나는 사람... 갑자기 그런 노래가 생각 난다.

훗훗 미소를 흘린다.

그 순간은 참 아리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은 예쁜 감정이다.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