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우산을 두 개나 두고 와서 헌 우산을 들고 출근을 했다.
우산살이 덜렁거리는 걸 들고 빗길을 빠르게 걸어갔다.
나처럼 살이 다 망가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토요일 날 건물주인 아줌마와 함께 화원에 들려 야생화를 사다가 건물 주변에 심었다.
주인아줌마는 내가 권한 찔레와 꽃범의 꼬리와 노란마가렛을 샀고
나는 패랭이와 꽃범의 꼬리를 샀다.
요즘은 화원에 가면 야생화가 유행처럼 번져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
화려한 서양 꽃보다는 은은한 우리 나라꽃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름도 외우기 쉽고 소박하고 우리나라 꽃을 보고 있음
어릴 적 고향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꽃을 심고, 주인아줌마가 한 움큼이나 준 코스모스 씨를 카페 입구 잔디에 뿌렸다.
오늘 마침 단비가 내리니 화초에 물을 안줘도 되니 큰일이 하나 줄어들고,
흙이 부드러워져 꽃씨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가 훨씬 편하겠다.
비 오는 날은 심심하다.
밖에 나가 꽃들을 만질 수도 없고 시든 꽃을 정리도 못하고
훼방꾼 잡초를 뽑을 수 없고,
쪽동백 나무 아래서서 순백의 꽃을 올려다 볼 수 없어 심심하다.
이런날은 창가에 앉아 빗물에 빨래한 꽃잎을 보고, 목욕한 나무를 하염없이 보게 된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의 우산 구경을 하는 날이다.
요즘 우산들은 걸어 다니는 꽃이다.
디자인도 다양하고 색도 화려하고 곱다.
노랑부터 진빨강까지 한련화꽃이 걸어 다닌다.
항아리치마 우산도 있고, 레이스 달린 치마도 있다.
무지개색 우산도 있고, 도금한 금, 은 우산도 있다.
만화 주인공이 뛰어다니고, 귀달린 우산도 총총거린다.
점심 식사 후 슬쩍 졸고 있는데 손님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단골 손님이었다.
따스한 유자차를 시키고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온다고 나가셨다.
가끔 손님들이 식사 되냐고 들어오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미안해서 간단한 식사를 싸 가지고 오셔서 드시면 어떨까요? 했더니
오늘 온 손님 두 분은 그러려고 오셨단다.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 분위기 있게 차를 마시며 식사를 하고 싶은 여자마음,
내가 그걸 알기에 뭐든 싸오셔도 괜찮다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차 값이지만
가끔은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 차를 마시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은 아시려나?
빗방울 떨어지는 창가에 자리를 잡은 두 분은
떡볶이와 순대를 차와 함께하고
나는 내 자리에서 빗방울을 보았다.
빗방울 속에 많은 이야기가 걸려 있다 떨어진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빗물보다 눈물 많은 이야기도, 붙잡고 싶던 행복이란 이야기도
빗물처럼 모였다가 떨어지면 그만이다.
지금은 슬퍼도 떨어져 땅으로 스미면 맑은 이야기가 된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꽃들은 빗물을 너무 마셔 불어터졌고,
나무는 물에 젓은 청바지 같다.
나는 심심해서 차를 넉 잔 마셔 물 배가 찼다.
하도 심심해서 맑은 날은 몇번씩 거니는 잔디밭을 오늘은 딱 한번 거닐었다.
코스모스 싹이 나왔나? 이틀밖에 안됐는데...성질 급한 나.
친구가 출근하면서 녹두 빈대떡을 사가지고 와서
비 오는 날 빈대떡 안 먹으면 서운해서 기분 나빠진다나 하면서
맥주 한 잔과 \"삶을 위하여~~\"를 했다.
물 배 찬 내가 물 먹은 꽃과 나무와 함께 어울려 물 젖은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