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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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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하고 싶다.


BY 일상 속에서 2006-05-22

 

비가 오네요. 이런 날 빈대떡을 부쳐서 막걸리 한 잔하면 딱 좋은데...

 

아빈이와 약속한 것이 있다.

휴일이면 비디오 한편씩 빌려주기로. 덕분에 문화적(?)지식 수준을 조금씩 높이는 중이다.


선택권은 아들에게 있기 때문에 어느 때는 외화, 만화, 격투기, 방화... 등 여러 장르의 12세 관람가를 시청하는데... 등급 수준을 어디가다 두고 나이제한을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아들이 6살 땐가?


‘엄마, 아기는 어디서 나와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빈이가 생후 10개월쯤 됐을 때 아들의 장난감이 책이길 바랬던 극성엄마였던 나. 13년 전, 지하 단칸방에 월세로 살면서 거금 53만원짜리 동화책을 사서 매일 아들의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그래서일까, 아빈이는 돌을 앞두고 한글을 어느 정도 깨우쳤다.


덕분에 난 한때 천재를 낳았다는 자만심에 빠지기도 했었다. 곤충박물관을 비롯해 파충류 박물관까지, 궁금해 하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지 데려가는 타에 모범적인 극성엄마(?)상을 보여주던 난, 그래서 ‘엄마, 아기는 어디서 나와요?’하는 질문에 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던지, ‘배추밭에다가 황새가 물어다 줬다.’는 식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배워야하는 101가지 상식부터, 유아상식 교육 지침서까지 완파한 장한 대한의 아줌마로써 아이가 성적인 호기심을 보일 때 감추지만 말라는 가르침대로 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엄마의 뱃속에는 아기주머니가 있단다. 그 속에 아빠가 아기씨를 넣어주면 엄마가 품고 있다가 낳는 거야.’


하고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그 말에 ‘네’ 하고 넘어가던 녀석이 점점 커가면서 물어오는 질문들은 갈수록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엄마, 아기씨는 어떻게 아빠가 집어넣어요?’

‘......’


이 질문이 아빈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집어 넣냐는 말에 살짝 당황한 나는 등줄기로 땀까지 맺힐 정도였다.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잠시 머릿속을 뒤집어서 정리를 한 후,


‘여자의 생식기는 안에 숨어 있고 남자의 생식기는 밖으로 나와 있잖니?’

‘엄마, 생식기가 뭐에요?’

‘... 음... 여자는 잠지를 말하는 거고 남자는 고추를 말하는 거야.’

‘아... 그래서요?’


어렵게 꺼내는 말에 아들 녀석이 태클을 걸고 나면 어째 더 진땀이 빠지는지...


‘남자의 생식기를 여자의 질 속에 넣는 거란다. 질이란 아기 주머니와 연결된 길 같은 거야. 그곳에다 아기씨를 넣어주면 정자라는 아기씨가 헤엄쳐서 난자라는 아기주머니를 찾아서 들어가는 거지.’

‘아...’


진땀이 빠졌지만 어떻게든 아들의 궁금증을 풀어줬으니 내 할 일은 다했다 싶었다. 남편은 우리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남녀간에 애정표현 즉, 스킨 쉽이나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면 아들을 쫓아내곤 했지만 난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렇게 아들의 학습적인 면에서 언제나 적극적이던 나였는데... 요즘은 상황이 많이 바뀐 상태다.


아빈이가 4학년 봄 방학 때 어른이 되기 위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포경수술을 봤게 되었다, 그날 병원에서 울렸던 아들의 떠내려 갈 것 같은  고함과 비명소리가 지금도 생생할 정도다.


“으아~~~ 사람 살려~~~ 잘못 했어요. 엄마~ 도와주세요.”


뭘 잘못했다는 건지, 지가 뭐라고 떠드는 건지는 아는지, 녀석의 입은 쉴 틈도 없이 떠들어 대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병원 안에 있던 다른 환자들이 하나 둘씩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서있는 수술실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많이 다쳤나 봐요....쯧쯧쯧... 걱정되겠수...”

“...지금 포경수술 중이에요...”

“포경?...히히히 몇 살인지 몰라도 참을성이 좀 없구만, 난 또 크게 다쳐서 온 환자라고...”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사람들이 실망(?)과 안도의 표정으로 다들 있던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난 한참을 아빈이의 고함소리 앞에서 잔뜩 움츠려 있어야만 했다.


수술이 다 끝났다고 했을 때 들어간 수술침대에 아빈이가 큰 대짜로 누워있었다. 남자의 심벌이 피 묻은 붕대로 칭칭 감겨져서 발딱 서있었다. 창피한 줄도 모르는지 녀석은 아프다며 팬티며 바지 입는 것도 싫다고 난리였다. 강제로 아랫도리를 입히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잘 걷지도 못하는 녀석을 데려왔을 때 수술한 자리가 터지면 안된다길래 화장실 가는 일 빼고는 식사까지 침대에 누운체로 해결 시켜줘야 했다. 꼬박 이틀을 시중  들었던 난, 그날 이후로 아들의 고추를 본 적이 없다. 얼마나 비싸게 구는지...


팬티도 아무대나서 훌렁 벗어던지고 갈아입던 녀석이 이제는 문까지 잠그고 난리도 아니다. 샤워할 때 등도 못 밀어주게 할 정도니 말 다했지.


그뿐 아니라 내가 옷을 갈아입을라치면 ‘엄마,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하고 면박을 주기 일쑤다.


‘자식이 식군데 어때?’ 하고 반박하지만 속으로 뜨끔거려서 다음부터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13살... 내가 13살 때는 그랬을까? 어제일도 기억 못하는 머리에게 그런 궁금증은 무리다.


어쨌든 녀석은 이제 순진무구한 어린애가 아니다. 엄마의 대답만으로 호기심이 충족되기란 역부족이란 말이지...


남편이 좀 깬 사람이라면 아들과 대화도 좀 하고 취미생활도 같이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씨도 안 먹힐 얘기다. 넌지시 ‘아빈이랑 좀 대화도 좀하고 함께 어울려 보지. 저것이 요즘 사춘긴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하면 ‘사춘기는 무슨, 내가 클 때도 혼자 컸어.’ 하고 말 정도니, 벽을 보고 얘기하는 편이 났다.


아무튼 그런 녀석이 영화를 빌려오면 12세 관람가인 영화를 빌려오는데 특히 우리나라 영화 같은 경우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욕이 나오거나 성적 충동을 일으킬 제스춰가 다반사다.


그런 장면이 나올 때면 왜 그렇게 내가 좌불안석이 되는 것인지... 아들은 태연하기 짝이 없다.


“너, 저거 정말 12세 관람가야?”


야한 장면에 믿기지 않아서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럼요, 엄마가 꺼내서 보세요. 그리고 저거 다 연기잖아요. 진짜 하는 것도 안닌데, 엄마는 왜 그러세요?”


밑져야 본전일 줄 알았던 나의 질문은... 본전도 못 찾았다.


일주일에 한편씩 보여주기도 했던 비디오, 그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햄릿처럼 두 가지 의문점에서 요즘 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너, 저기서 나오는 것처럼 좋아하면 그냥 뽀뽀하는 것 아니다.”


조바심에 가만있지 못하고 말 한 적이 있다.


“알아요. 저래야 영화가 재미있으니까 그런 것.”


역시 본전도 못 찾았다.


아들을 키우면서 참으로 엄격하게 가르쳤고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선행학습을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이 점점 내게 바람을 빼놓는다. 겸손하게 만든다. 마음을 비우게 만든다.


4살 때 구구단을 외우던 녀석 5살 때 다 까먹고 초등학교 2학년 때 다시 외우느라고 진땀 흘렸다.


‘엄마, 나뭇잎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아요.’


3~4살 때 이렇듯 시적으로 흔들리는 나뭇잎을 표현하던 녀석이,


‘아빈아, 저 구름이 무슨 모양 같으니?’ 하고 묻는 내게,


‘구름은 그냥 구름이죠. 엄마는 무슨 모양으로 보이세요?’ 한다.


난 아주 평범한 녀석을 낳았다는 것을 점점 실감하고 있다.

최고 대통령에서 최소한 경찰대학은 갈 거라고 믿었던 녀석이었건만...

이제 나의 꿈은 녀석이 그냥 서울에 있는 4년 대학만 나와도 할아버지 할 판이다.


아...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 난 언제까지 실망을 해야 하나...


난, 아이들 일에 대해서 초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