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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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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장사꾼.


BY 일상 속에서 2006-05-19

 

사이판에 어느 섬이라는데 그림같죠? 시원한 바다가 너무...이곳에 가보고 싶네요.

 

 

5월 달은 무슨 놈의 학교 행사가 그리도 많은지, 정신이 없다.

5월 19일 오늘은 알뜰 바자회 날.


저학년인 딸 반은 협조할 엄마들이 많기에 고학년 아들 반만 명예교사직을 맡았다. 도서실에서 책만 대여해주면 되는 줄 알았건만... 요즘 반대표에게 문자가 꽤 많이 온다.


오늘은 오전 9시까지 학교에 모여 달라는 부탁에 오래는 못 있고 잠깐 동안만 도와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미리 말을 해야 다른 사람을 대체 할테니.


시간 하나 만큼은 칼인 나건만 남편이 출근을 미루는 바람에 조금 늦은 9시 15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나의 열렬한 팬(?)중에 차를 매일 달고 마시는 내게 무가당, 무색소의 캔 커피를 한 박스씩 대주는 사람이 있다. 그 분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야 하는데...


먼저 보내 주신 것도 아직 남았건만 또 다시 한 박스를 보내 주셨으니 커피가 넉넉했다. 그래서 그것으로 기분을 내기로 하고 10개의 캔 커피를 가져가서 엄마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괜찮은 물건을 고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내가 담당한 것은 옷이었다. 군데군데 무엇이 묻어있는 옷이며 구겨지긴 했지만 상표까지 붙어있는 새 옷들까지, 가지가지 나오기는 많이들 나와 있었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 두 분이 다가왔다.


“아줌마, 몇 학년 것 보시나요?”


최대한 상냥하고자 애썼다. 내 남편이 그런 모습을 보면 ‘하여튼, 남들한테는 무지 잘해. 나한테도 그래봐라.’ 했을 것이다.


“내 것 좀 보려고.”


아줌마 한분이 말씀하셨다.


“아~ 이거 어떠세요? 아줌마처럼 멋쟁이 스타일은 이것이 딱 이겠는걸요?”


하늘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줄무늬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멋쟁이는 무슨... 그거 얼마유?”


연세가 있으나 없으나 다들 칭찬에는 약하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오백원만  받아요.”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눈치 없는 반 엄마가 입방정을 떨었다. 수익금 전액이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기금으로 쓴다는데 될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받아야 하건만...(아...간사한 사람 마음, 내가 물건 살 때는 어떻게든 깎으려고 난리굿을 하는데.)


말한 엄마에게 가만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천원이에요.” 했다.

“저쪽에서 오백원이라잖우.”


아줌마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들었으니 당연히 따져 물으실 수밖에.


“이것을 어떻게 오백원에 받아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 한 번이나 빨았겠어요? 천원이면 돈 버시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모이는 돈이 저희들이 갖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쓰여 질 거예요. 그러니 좋은 일 하시는 거죠. 와~ 이것 딱 아줌마 옷이네요. 피부도 고우시고~”


어쨌든 난 그것을 천원에 팔았다. 지나가는 아는 엄마들에게도 반 강제적으로 책이며 공책이며 무자비로 팔아 버렸다. 그러고 보니 난 장사 수완도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완벽하게 뭐든 잘해서 어쩜 좋은지... ^^


“엄마~!”


아영이가 친구들과 몰려 왔다.


“응. 맛있는 것 사먹었어?”


절대로 다른 것 사지 말고 먹고 싶은 것만 사먹으라고 주의를 준 터였다.


“엄마, 나 예쁜 볼펜 사고 싶어요. 사도 되요?”

“볼펜이 왜 필요해?”

“너무 이뻐서...”

“엄마는 네게 쓰라고 2,000원을 줬으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쓰면 되는 거야.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사고.”

“네.”


아영이는 다시 신나서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리고 5분도 되지 않아서 내게로 또 달려왔다. 급식도 없는 날이라고 하던데 칼로리 꽤나 빠져나갔을 것이다.


“엄마~!”

“왜 또?”

“엄마는 하얀색 양말이 좋아요, 노란색 양말이 좋아요?”

“엄마 집에 양말 많으니까 안사도 돼. 너 먹고 싶은 것 사먹어.”

“네.”


아영이가 존대를 꼬박꼬박하는 것을 보니 기분은 짱인 것 같다.

몰려드는 아이들과 딸의 성화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판에 누군가 ‘아빈아~’ 한다. 큰 아이 1학년 때부터 가깝게 지내는, 나보다 4살 나이 많은 6년 지기 친구(?) 예진이 엄마였다.


“어. 장사는 안하고 왜 돌아다녀?”

“한 바퀴 돌려고, 자기 찾았지. 내가 뭐 사줄게 같이 돌자.”


우린 큰아이들끼리도 한 학년이고 작은 아이들끼리도 같은 학년이다. 예진이 엄마는 저학년 딸의 임원으로 2학년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우린 친구처럼 말을 놓고 지내지만 그래도 윗사람 대접은 깍듯하게 해주는 나다.


무언가 얻어먹을 때만 일시적인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뭐 사줄라고? 돈 많이 가져왔구나?” 내가 물었다.

“아니, 그래도 자기 사줄 수 있어.” 예진엄마가 웃으며 대꾸했다.

“여기서 말고 시장에서 뭐 사주냐고 물어보면 안 될까?” 짓궂게 내가 물었다.

“뭐야~! 학교 안에서 사.” 예진엄마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우린 데이트하는 남녀사이처럼 팔장까지 끼고 학교를 돌았다. 예진엄마가 아영이의 머리 고무줄과 특이하게 생긴 악세사리를 사서 내밀었다.


“자긴 이런 것 좋아하잖아.” 오래 알고 지내니 내 취향도 잘 안다.

“그럼, 예진이 것도 사. 내가 사줄게. 우리 여기서 서로한테 기분 좀 내지 뭐.”

하고 내가 제대로 쏴주겠다고 큰소리 탕탕 튀겨보았다.


괜찮다고 빼는 친구에게 난 예쁜 고무줄을 사서 내밀었다. 예진엄마는 내게 4천원을 투자했건만 난 1천원으로 답례를 했다. 다른 것을 더 사주려는데 극구 사양한다.


나보다 더 힘겹게 살면서도 언제나 밝은 친구의 모습에서 난 또다시 반성을 해봤다.


학교 운동장을 도는데 왜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이도 장사를 하는지, 오백원, 천원짜리 사다보니 만원이 후딱 넘어갔다.


거기 더 있다가는 주머니 속에 넣어간 돈이 바닥이 날까봐 나중엔 줄행랑을 쳐야할 판이었다.


한 엄마가 전날 자신이 음식을 파는 곳에 있을 테니 오라는 말에도 가지 못했는데 그 엄마가 내가 장사하는 곳으로 찾아 왔다. 그러고 보니 제법 인기도 많은 나다. (날도 구질구질한데 착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려볼 판이다.)


남편이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나갔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그렇게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사라는 것... 잠깐 해봤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제는 시장을 돌아다녀도 가격을 깎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 같다.


아빈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모두 아영이가 좋아할 인형과 고무줄이었다. 3천원을 줬는데 천원을 남겨왔으면서도 산 것은 모두 동생 것뿐이다. 자식, 때리지나 말고 데리고 놀지. 동생을 잔뜩 기죽이는 놈이 챙기기도 잘 챙긴다.


“아빈이가 삼 천원을 다 쓰고 올 줄 알았는데, 남겨왔네. 알뜰하게 돈 쓰는 것을 보니까 엄마가 믿음이 간다.”


아들에게 칭찬을 해줬다. 아빈이의 입이 귀에 걸린다.


“그쵸? 엄마 것도 사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 못 샀어요.”

“무엇을 사려고 했는데?”

“청소 로봇이요.”

“헉...청소 로봇도 나왔디?”

“아니요. TV에서 나오는 것 말고, 정말 로봇트가 빗자루 들고 쓰는 것이 있었어요.”

“!... 안사길 너무 잘했어. 이 작은 집에 로봇트까지 들어오면 우린 어디서 살겠니? 나중에 아들이 훌륭한 사람이 돼서 큰 집에 제대로 생긴 로봇 사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엄마의 말에 대꾸가 없다. 자식, 많이 컸다. 현실감이 생긴 것을 보니. 옛날 같았으면 빌딩을 사달라고 해도 ‘네~’하더니, 이제는 생각을 깊이 한다.


아... 피곤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