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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랬던 것은 ....


BY 찔레꽃. 2006-05-18

내가 바라고 원했던 결혼 생활은 이랬습니다,

 

담위에 철조망이 쳐지고 담밖의 세상이 보이지 않은 그런 호화로운

집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

밤에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 양주잔을 기울이는 조금은 사치스러 보이는 그런밤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속옷만 걸치고 잠을 자도 마음편한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조그만 집이라도 마당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을수 있는 꽃밭이 있고 .

햋빛이 잘드리우는 마루에는 고운 커텐을 드리우고 폭삭한 소파는 싫습니다,

마루에 카펱하나 깔아놓고 그 가운데 교자상을 하나놓고 들꽃 한묶음이라도 꽃은

꽃병하나 놓아두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꽃을 보며 차를 마시는

그런 여유로움 속에 나를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요 !

그런 나의 이상과는 다른 결혼 생활이렀지요.

뭐 원하고 바라는 대로 다 되는것은 아니겠지만,.....

 

=자고로 여자는 살림하는거 잘배워서 시집가서 잘사는기 부모한테 효도하느기라=고

하셨던 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에 우리 딸들은 직장생활이라는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줄줄이 바톤을 이어받아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살다 결혼을 했지요.

나 역시 친척의 중매로 아제를 만나 후딱 결혼해 버렸습니다

그때는 조금은 늣은 나이였기에..

그리고 시집을 들어서는 순간.................

그 순간부터 내게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똑같은 생활을 강산이 두번 쯤 바뀔정도가 될때까지 살았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고통이나 힘든 상항이 되어도 그것은 그 자신의 몫이 아닐까요?

나 역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함께 동반하면서도 누구를 원망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복이려니 내가 만나야 할 인연이려니 하고 사실을 받아 드렸습니다,

내가 친정에서는 내 올케에게 시누이라고 어느 글에 썼던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시누이 이지요..

그래서 시누이들과 마찰없이 지낼려 했습니다,

나는 어린 나이에 두 올케 언니를 보아서 시누이란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올케언니들이 친언니하고는 또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시누이들로 부터 올케라는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애교스럽지 못하다는것 .시 어머님에게 살갑게 구는 며느리가 아니라는점,

뭐 대강 그렇습니다 지금이야 내 셩격도 많이 바뀌었다고 본인도 생각합니다 ^&^

 

그때 옆에 살고 있던 큰시누이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내 일이 끝나면 시누이 가게가서

일을 도왔습니다,

막내 시누이와는 11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시누이 라기보다는 친 동생같은 그런거 입니다,

가끔 앙탈을 부리던 시누이 였지만 또 한 내게도 잘해 주려 했던 막내

시누이 입니다,어머님께 거짓말 하고 나를 데리고 나가서 같이 연극도 보고 했답니다,

그랬던 시누이가 시집을 가던니.....

지금은 참 많이 힘들어 합니다,

아이둘을 시누이가 데리고 있습니다,

처음과는 다른 상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파 회사도 쉬고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시누이가 아이둘을 데리고 있다는것도.병원에 입원해 있다는것도 어머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시게 되면 또 속않이를 하실테고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우실테니깐요..

그래서 지금 쬐매이 힘들어 졌습니다,

아이들을 우리집으로 데리고 올수도 없고 해서 반찬이라도 좀 해서 가져다 주고

어제저녁에는 가서 설것이도 해주고 왔습니다,

시누이 병원에도 가보야 합니다,

내 아이들 큰고모부께서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큰 시누이 밥챙겨 먹으라고

가끔 국도 끊여 주어야 합니다,

어머님 눈치 살펴 가며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바랬던 결혼 생활은 정말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난 그저 내아이들 잘키우며 남편에게 내조 하는 그런 소박한 여자로 살고 싶었습니다,

 

넓은 마루에 카페트를 깔진않았지만 그래도마루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꽃 다 심을수는 없어도 조그만 꽃밭도  있습니다,

이 조그만 꽃밭도 시아버님과 의 투쟁에서 내가 이겨서 만들어진 꽃밭이랍니다,

내가 원했던 그런 생활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고난의 길을 지나왔다고 생각햇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주위에서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지금 처해 있는 상항을 받아 들여야 겠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서로 존재 하고 있기에 큰 시누이에게나

막내시누이에게나 국도 끊여주고 반찬도 해주고 병원에도 가보아야겠습니다,

6년이란 세월을 병중에 게시다 돌아가신 시아버님 모셔놓고 오면서 내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

친정부모님이 계시는것도 아니고 이제 시아버님도 계시지않은데 홀로 계신 시 어머님께.

며느리 때문에 속상하다는 말씀은 안하시게 해 드리자고..

 

나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저 내 가족을 위해서 살고 싶은데..

하지만 어려운 일이든 . 또 힘들어도 어우려져 사는게 가족인가 봅니다,

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볼수있는 꽃밭이 있다는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