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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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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수업에서...


BY 일상 속에서 2006-05-18

 

요즘 더우시죠? 시원한 바다를 보시고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들 되시길....

 

“엄마! 꼭 학교에 와야 해. 1시 10분까지 꼭~!”


등교 길에 현관문을 나서는 아영이가 두 번째 개방수업을 하는 날이다. 엄마가 깜빡 잊고 오지 않을까봐 신신당부하는 것이 정도가 좀 지나치다 싶다. 귀에 딱지가 앉을 판이니.


“알았어! 몇 번을 말해. 너! 엄마가 갔을 때 자꾸 쳐다보느라고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그냥 나와 버린다.”

“응.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니아니... 엄마 학교에서 봐.”


선생님이 무서워 빨리 등교를 하는 아영이의 뒤를 이어 아빈이가 6학년의 고참이라 그런지 조금은 느긋하다 싶게 나갔다.


아... 아이들이 빠져 나가고 난 집은 엉망진창. 도둑이 들어와서 한바탕 뒤집어 놓아도 이만 할지. 굴러다니는 머리 고무줄하며 빗, 벗어놓은 잠옷들, 집구석이 비좁아서 늘어놓다 말았는지... 옷 서랍장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옷가지는 복날 다가오는 땡칠이의 혀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거울 앞을 지나치다 나의 몰골을 보게 되었다. 단정하게 핀으로 올려 꼽고 잤던 머리였건만, 한쪽으로 높다란 산봉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은 어떻고...4년 입은 홈피스는 군데군데 기름얼룩까지...더 이상 자세히 보고 싶지도 않다. 김치 국물까지 튀어 있을까봐...


‘못 산다, 못 살어. 남들처럼 클레식 음악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은한 커피 향에 취하지는 못할 지라도, 혼자만의 느긋한 여유에 행복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이건 아니지...이게 무슨 꼴이냐고... 진짜 머리 한쪽에 커다란 꽃 하나 꽂으면 영락없는 미친X형상이네...’


요즘은 왜 그리 시간에 쫓기며 사는지...직장을 다니는 사람보다 더 바쁘다. 그러니 거울 앞에서 궁상떨며 있을 시간도 아깝다. 딸의 신신 당부가 있었으니 기필코 열일 재껴두고 학교를 가야한다.


부리나케 집안청소를 했다. 전화가 왔지만 다행이도 잘못 걸린 전화였다. 쓸고 닦고...(그나마 이런 때는 작은 집인 것이 다행이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머릿속에 소재를 고르고 그것을 옮겨 내려갔다.


그리고 대충 훑어본다. 몇 번을 훑어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글, 자꾸만 나오는 오타... 2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글을 올리는 순간마다, 정성을 다하고 싶지만...쉽지 않다.


중요한 한가지의 일을 마쳤으니 학교 갈 일만 남았다. 기초화장만 하고 립그로스를 살짝 발랐다. 워낙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색조화장은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10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아영이와 눈이 마주치면 산만해 할까봐 몸을 가급적 창문과 좀 떨어져서 있었다. 학부형이 한두명씩 모이기 시작 했다. 아이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키는 아이에, 손을 흔드는 아이들까지.


아영이의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입모양을 보니 ‘아영이 엄마다. 들어오세요.’ 하며 손짓까지 했다. 난 얼른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조용하라는 싸인을 보냈다.


공개수업시간 5분을 앞두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라는 것 같았다. 우르르르르......떼거지로 모여드는 아이들, 그 무리 속에 아영이가 있었다. 교실 밖으로 나서는 아영이의 표정엔 실망이 가득했다. 그런 눈으로 복도를 훑어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


이산가족 상봉을 연출하는 딸... 매일 집에서 보는 엄만데 그리 좋을까.


곧 학부형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는 엄마들이 톡톡 치며 인사를 건넨다. 나 역시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답례를 했다.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지고 손을 번쩍번쩍 드는 아이들, 세 번째 질문에 아영이가 지목 되었고 수줍지만 용기 내어 “사슴이요.” 한다.


그림을 보여주고 그 속에 나온 동물들을 말해보라는 질문이었는데 아영이는 노루를 사슴으로 봤나보다. 분명 자막도 나왔었건만 가시나가 그것은 읽지도 않았나보다.


“음...사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이름이 있는데 아는 사람?”


다른 아이가 일어나서 대답을 했다. 아영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집에서만 까불지 밖에선 너무나 내성적인 그것이 여러 사람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까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자꾸만 엄마를 바라보면 밖으로 나가겠다는 엄포를 해선지 아영이는 내가 서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틀린 답을 얘기한 것이 창피했는지, 아니면 엄마가 얼마나 실망하고 있을까 걱정됐는지 아영이가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난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씨익~ 웃고 입모양으로 ‘ 참 잘했어. ’ 해줬다. 용기가 다시 났는지 아영이가 다시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많이 컸다. 일년 일찍 학교 보내고 늘 전전긍긍했는데 힘겨워하지만 그런대로 따라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10분 늦게 들어오는 엄마가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청바지에 운동화까지 멋스런 모습의 엄마를 한번 흘려보고 다시 선생님께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내 앞을 지나가던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헉...!!!”

“내가 좀 늦었지? 오늘 어디 갔다가 배고파서 집에서 점심까지 먹고 오느라고 ...”


아영이와 일 학년 때부터 지금껏 같은 반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인연으로 1살 터울이긴 하지만 친구로 지내는 영민이 엄마였다. 숨을 헐떡거리며 내 귀에 대고 늦은 연유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10분을 더 서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그런지 밖 못지않게 뜨거울 열기가 숨이 막혔다. 앉을 때도 없이 서 있자니 다리도 아팠다. 영민 엄마와 텔레파시가 통한 걸까... 내 귀에 대고 말을 한다.


“나, 다리 아파서 죽겠어. 우리 나가서 있자. 응?”


못 이기는 척 밖으로 나왔다. 알고 지내는 엄마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신발이 이쁘다, 모자 괜찮다, 핸드폰 고리 그거 나도 하나 얻어 주라... 여자들의 수다 속에서... 아이들의 참관수업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흥에 겨운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 졌다.


“ 쉿, 좀 조용히 하자. 안에서 다 들리겠다. ”


나의 경고에 조금은 소리가 줄어들었다. 우린 소곤소곤 쑥덕쑥덕... 별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을 때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순찰(?)을 돌고 계시는 것이 보였다.


교실 안에 들어갔다 나오신 교장선생님이.


“왜, 여기들 나와 계세요. 들어가서 아이들 하는 것 좀 보세요.”

하신다.


“네...”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끝.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학창시절에도 어려워하지 않던 선생님이거늘... 내 아이들의 선생님은 참으로 어렵다.


수다스런 아줌마들은 다음 주에 밥을 먹자는 약속까지 만들어 놓았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아영이가 나왔다.


“엄마, 왜 나갔어? 내가 자꾸 쳐다보지 않았는데...”

“응... 너무 더워서 땀이 막 흐르잖아. 그래서 나왔지. 하지만 아영이 하는 것 다 봤다. 너무 잘하더라. 그래서 엄마가 아주 기뻤어. 자, 이거 마셔.”


반은 거짓말인 말이 좀 찔렸다. 그래서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반대표가 엄마들에게 돌린 것.) 섬유음료를 꺼내서 아영이에게 건냈다. 아영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엄마, 이거 어디서 났어요? 엄마는 마셨어요?”

“응.”

“엄마, 그런데 노루가 뭐에요?”


아영이는 자신이 했던 오답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사슴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라 많이 헷갈리는 동물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자막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잘 보고 있었다면 틀리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덧붙여주었다.


말 시작할 때부터 존대를 하는 아들과 달리 허물없이 말을 제 기분에 따라 말을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는 정신없는 딸, 공부하는 실력도 터무니없이 차이나는 나의 두 아이들. 한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희한할 정도이다.


세상에서 제 엄마가 제일 예쁘고 똑똑한 줄 아는, 그래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는 나의 아이들... 품 안에 자식이라지만, 그래서 좀 더 크면 친구를을 좋아하고 애인을 좋아해서 밖으로만 돌지언정... 지금 이순간은 행복하다.


가을도 아닌데...외로운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과음들 하지 마시어요... 제가 요즘 좀 한잔 할 일이 많다보니... 속이 쓰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