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여러분들의 세상은 어떠신지요~
학원을 다녀와서 저녁식사를 마친 아빈이가 설거지하는 내게 물었다.
“엄마는 제일 처음 꿈이 뭐였어요?”
“뜬금없이 그건 왜?”
“학교 숙제에요. 부모님의 꿈이 뭐였는지 알아 오래요.”
“음...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이 제일 처음의 꿈이었는지 모르겠지만...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다음엔요?”
“화가? 엄마가 그림을 조금 그렸잖니.”
“그 다음엔요?”
“개그맨.”
“또요?”
“가수”
“그리구요?”
“소설가.”
“또 있어요?”
“그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그럼 엄마는 꿈을 이루셨네요. 소설을 쓰셨으니까요.”
엄마와 인터뷰(?)를 마친 아들이 제방으로 들어갔다. 이상기후로 벌써부터 찜통인 날씨이긴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아직은 선선하다. 주방의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건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엄마는 꿈을 이루셨네요......’
에휴... 아들의 말이 바늘이 되어 나의 이곳저곳을 쑤셔 됐다.
자식이...엄마를 가지고 놀리고 있네...
시간 틈틈이 글을 써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막혀버리기 일쑤였다. 인터넷 이곳저곳을 들락거리다가 난 고스톱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친정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엄마의 속을 태워 뭉개게 했던 것들 중 한 가지가 노름이었다. 그 아픔은 간접적으로 함께 나누었던 나였기에 화투나 포커 같은 것을 만지는 사람을 싫어했다.
신혼 때였던 것 같다. 저녁 늦게 들어온 남편이 만원짜리 몇 장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마누라에게 칭찬이라도 듣고 싶었던 게다.
“고스톱 치길래 고리 뜯었어.”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만원짜리 지폐가 잠시 나비가 되어 방 이곳저곳을 날아 다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술 먹고 마누라 패는 거랑 노름이야! 지금껏 노름판에 있었다는 거야?”
“노름? 노름판도 아니었고 심심풀이 화투판이었어. 거기서 구경하면서 고리 뜯은 거고.”
“구경하다 보면 하고 싶은 거고, 늦바람이 무섭다고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날뛰는 거라구. 알아?”
그날 밤도 잠시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남편은 절대로 내 앞에서 민속놀이에 대해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댁을 내려가서 친목을 도모하는 화투에도 낀 적이 없는 나였다.
그랬던 내가 고스톱게임을 시작 한 것이다. 그것도 남편 몰래. 처음엔 아들도 모르게 한다고 했는데 몇 번 들키고 부터는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 저보고는 게임하지 말라면서 왜 하세요?”
“그러게 말이다. 하다보니 재미있네. 엄마는 나쁜 엄만가 보다.”
“아니에요. 돈 들여서 하는 거 아니잖아요. 글이 안돼서 하시는 것 알아요.”
처음 게임할 당시 아들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하루에 5번, 십 만원씩 주워지는 게임만 하는 나를 보고 이해심 많게 말해주던 아들의 말이었지만 그때 역시 뜨끔하긴 마찬가지였다.
글이 안돼서, 머리가 복잡해서 시작했던 그 게임이 여간 재밌는 것이 아니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한 번도 돈을 들여서 게임한 적은 없지만 충동은 여러 번 느끼기도 했었다.
눈만 감아도 화투장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전에 언젠가 친구가 고스톱머니가 몇 천 만원이 모였다느니 몇 백을 잃었다는 말에도 한심하다고 했던 난데, 아무튼 나는 입만 여물었던게다.
그래서 남의 흉 볼 게 못 된다는 말이 있나보다.
지금도 어쩌다 한 번씩 게임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어쩜 그렇게 아들놈이 잘도 알고 나타나는지, 타이밍이 제대로다.
“어? 엄마 또 게임하시네요? 중독은 아니죠?”
“이게 엄마를 어떻게 보고!!! 니 엄마가 그럴 사람으로 뵈냐?”
“아니죠. 농담으로 물어 본 거예요.”
아... 난 호랑이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마냥 고분고분할 줄 알았던 녀석이 이제 말을 빙빙 돌려서 지엄마를 가르치려 한다.
남편을 비롯해 식구들이 한 대모여 TV를 본 적이 있다. 화투 도박판이 벌어진 현장이 낱낱이 공개되는 뉴스 속에 주부도박단들이 이불이며 옷가지로 몸을 숨기는 장면이 나왔다.
“세상 말세야. 저것들이 미치지 않고서 살림하는 주부들이 저 지랄들이야?”
남편이 한심하단 듯 혀까지 차가며 말했다. 아들놈이 의미심장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남편 몰래 눈에 힘을 실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네가 살아남을 길이다.’
무언의 협박을 실어서...
“아빠, 우리 엄마는 저런 짓 안하니까 참 좋은 엄마죠?”
아들 녀석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성질만 빼면 좋지.”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대답했다.
“.......”
죄인은 할 말이 없으니 조용했다.
“어째 당신이 그렇게 조용하냐? 대꾸도 없이?”
속 모르는 남편이 나를 보며 말했다.
“TV 볼 때는 조용히 하자고요.”
무진장 찔리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에 지퍼를 달았다.
그날 이후, 난 절대로 아들 앞에서 고스톱을 치지 않았다. 한번 씩 할 때는 꼭 시간을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아들 몰래 고스톱을 치다가도 ‘아니,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눈치 보면서 이짓을 해야해?’ 하고 꺼버리기도 한다.
‘엄마는 꿈을 이루셨네요... ’
아들이 했던 말이,
‘꿈은 한번만 이루면 되는 건가요?’ 로 해석되어 들렸다.
아들이 정말 무섭다. 딸도 점점 무서워지려한다.
천하에 내게도 두려운 존재가 생겨버렸다. 아...괴롭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