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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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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과 친정 아버지의 대화


BY 불토끼 2006-05-11


남편(마씨라고 부름)이 처음으로 우리 식구들에게 선뵈러  왔을 때, 우리 식구들에 대한 인상을 \'사무라이 가족\'이라고 표현했었다. 지금까지 동양인 집에 초대되어 간 적이 없어서 그저 자기가 지금까지 보아온 일본 사무라이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긴 우리 집안이 좀 그런 구석이 있긴 하다. 밀직공파 23대손으로 조상묘를 손질한다는 명목으로 집안 어른을을 비롯하여 출가외인인 딸들을 제외한 모든 아들들이 백만원씩인가 품빠이 한 적이 있었고, 해마다 업데이트된 족보를 인쇄해다가 각 친지들에게 돌린다. (나도 한권 받고 싶었으나 출가외인이라고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뉘집 큰일 친다 하면 모든 친척들이 전국에서 득달같이 모여든다. 그 예로 우리 할머니 돌아가실때.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실 뻔한 고비를 열 번정도 넘긴 걸로 알고 있는데 열 번이면 지칠만도 하지만 그때마다 전국에서 모든 친척들이 우리집으로 모여들었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내가 생각해봐도 좀 사무라이같은 구석이 있는 양반이다. 지금은 늙어서 젊은 시절의 깡다구가 많이 희석된 면이 있지만 젊었을 때의 내가 기억하기에도  한깡다구 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국민학교 6년을 20리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여름에야 해가 일찍 오르니 다닐만 하다지만 겨울엔 20리길이 꼬마들에겐 춥고 힘든 길이다. 그 길을 논두렁에서 주운 소똥으로 불을 지펴가며 6년을 다녔다고 한다.
그후 경주중학교엘 다니면서 작은 삼촌들이랑 자취를 했는데 쌀이 떨어지면 기차값 아낀다고 경주에서 옥산까지 30킬로나 되는 길을 걸어서 쌀가지러 왔단다. 그 쌀가마니를 지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깡다구가 생길밖에.
그렇게 쌀가마니로 단련된 몸이어서 그런가 한번은 중2짜리 조그마했던 아버지가 고등학생 둘을 상대로 싸워서 이겼다고 한다. 이거 말로 하니까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인데 잘 생각해보면 실제 중2는 아직 어린애고 고등학생은 어른이다. 일단 체력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그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은 우리 아빠가 싸움에서 한칼 한다는 말이다.

아직도 명심보감을 읽으시는, 국민학교 대신 서당을 나오신 큰아버지에 비하면 신식이긴 하나 우리아버지는 서울사람에 비하면 옛날사람이다. 자식들과 대화할 때도 늘 훈계조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어릴때)
\'시어른을 잘 섬겨라\'(결혼할때)
\'늘 즐겁게 살아라\'(요즘)
 
하여간 그런 우리 아버지인데 우리 마씨는 덩치만 크지 곱게 자라서 우리 아버지같은 깡다구가 없다. 지딴엔 쿵푸도 배우고 빙슝도 배우고 했다지만  우리 아버지랑 싸움 붙여놓으면 쨉도 안될 것이다.
그런 마씨가 우리 집에 와설랑은 중간에 떡 앉은 우리 아버지 앞에 앉았다.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어슬프게 절을 하고 꿇어앉은 거다.

\'결혼이란 것은 모름지기 서로 다른 환경의 두 남녀가 만나 화합하는 것으로서....(중략)

일장의 연설이 끝나고 이제 대화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싸우지 말고 잘 살아라\' 하면 \'예\', \'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들 이해하고 살아라\' 하면 \'예\',
\'앞으로 한국말을 배워 친정식구와 대화에 힘쓰거라\' 하면 \'예\'

무조건 예 예한다.

이렇게 예,예하던 것이 독일에 와서까지 여전하다. 나는 한달에 두어번 집에 전화를 하는데 대부분 엄마랑 대화를 하게되고 어쩌다 아버지와 통화를 하게되면 묻는다.

\'마씨랑 통화좀 해볼랍니꺼?\'

우리 아버지 화들짝 좋아하신다.

\'그럼 함 바꿔봐라\'

마씨는 전화기를 들고 자기 엄마 아빠랑 통화할 때처럼 재찍하게 의자에 앉아서가 아닌 깍뜻하게 서서 아버지와 통화한다.

\'아버님 안녕하셔요?\'(한국말)
\'그래, 니 잘있었나. 거는 날씨가 요새 우째되노. 한국카마 춥제?\'

우리 아버지는 사투리를 마구 하신다. 마씨가 대학에서 몇학기 한국말을 배워서 기본회화는 좀 알아듣는 편인데 이렇게 사투리로 하시니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 한다.
게다가 얼굴 뿐만이 아니라 귓볼까지 빨게졌다. 내가 급한 김에 마구 말한다. \'날씨, 날씨!!\'
뭔소린지 알아챈 마씨,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날씨가 꾸무리하건만 늘 연습한 대로 \'날씨가 좋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혼자서 주절주절 마씨에게 일장의 연설을 끝내시고 맨 마지막에 가서 다짐을 받듯이,

\'둘이 싸우지 말고 잘 살아라\'
\'서로 이해하며 살아라\'
\'빠른 시일 내에 한국말을 배우도록 하여라\'
하신다.
그때마다 마씨는 아버지가 바로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허리까지 굽히며 아버지가 \'예\', \'예\' 한다. 얼굴까지 빨개져서는.

이런 대화가 있는 날이면 나는 배꼽을 잡는다.



은지네 님의 \'국제결혼...\' 글을 읽고 답글을 쓰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 일곱으로 독일에 와서 산지 6년이 되었습니다. 아컴에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재미있는 글에 매료되어 이제는 매일 들어오게 되었지요. 계속해서 재미있는 글 많이 들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