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가까이 남편의 생일날을 시작으로
화장실 거울에는 색종이로 만든 축하 카드가 늘 붙여 있었다.
“아빠 생신을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세 딸들의 합작품이다..
심심한 화장실 거울 속.
내 얼굴만 보는 것도 지겨운 참에
생일이 훨씬 지났어도 축하카드를 떼지 않고
놔두었더니 5월 6일 막내딸 생일이 다가오자
내용만 바뀌어진 똑같은 축하카드가
그 자리에 다시 붙여져 있었다.
“다희야~ 생일 축하하고 사랑해!~”
이번엔 언니 둘이 동생에게 보내는 생일카드였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이 역시 거울에서 떨어질 때까지 그냥 냅두기로 했다.
유난히 행사가 많은 5월..
어린이날을 보내고.. 막내딸 생일날을 보내고..
드디어 어버이 날..
난 세 딸들의 반응을 빈라덴처럼 숨죽이며 살펴보고 있었다.
애들이 지금쯤 엄마 선물은
뭐 사줄까하고 고민 무지 하고 있을 거야..
음 그럴게 아니라 차라리 내가 먼저
갖고 싶은 물건을 말해줄까?
그럼 아이들의 고민하나가 덜텐데..
애들 돈이 내돈.. 내돈이 내돈인데머..
음..막내한테는..
2천원짜리 메니큐어 하나 사달라고 하고..
그리고 큰딸한텐 영화표?
흠...둘째한테는.....
드디어 어버이날 아침..
막내가 식탁에 가지런히 놓은 학교에서 만든
카네이션과 편지가 기다렸다는 듯 놓여 있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편지를 읽고는 나머지
큰 두 딸들의 반응을 말없이 기다리는데
점심때가 넘어 학교에 돌아온 녀석들..
시험 끝난 해방감에 만화책 보느라 정신이 없다..
요것들이 깜짝 파티라도 하려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구..
작년엔 영화표며 뻥튀기며 사오더니..
아..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쩝..
은행일도 볼겸 컴퓨터를 키고 아컴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 이곳 아컴에서 최지인님이 올리신
딸애가 차려준 밥상이라는 글을 보고
너무나도 부러운 마음에 거실에서 만화책을 보던
두 딸들을 냅다 소리 질러 불렀다.
“이야~~너희들 이리와 뽜!~~~”
“왜에~~~”
“오라면 올 것이지~왜라니~~어른이 부르면 대답부터 하고 와야짐마!!”
소심한 나.. 살~짝 기분 나쁠 뻔 했다..ㅡㅡ;.
“아라써어~~~^^”
뭔 일인가 싶어 쪼르르 달려온 아이들에게
보조의자까지 내밀며 갑자기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두 녀석 컴퓨터 앞에 앉히곤 최지인님의 글..
아이가 차려준 밥상이라는 글을 읽으라 했다.
딸아이가 어버이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엄마 아빠를 위해 아침상을 정성스럽게 차린 내용인데
비록 남의 딸이지만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부럽던지..
글을 읽고 있는 둘째딸의 뒤통수에다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야 ~그 아이도 너하고 똑.같.은 고1이다!”
아래 글은 최지인님의 글 내용중 일부이다.
---참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보글뽀글 끓이고..
색색이 갖은 야채가 들어간 계란말이..
냉장고에 있는 모든 반찬을 이쁜 접시에 담아
한상 가득 차린 딸아이가 차린 아침 밥상----
때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거실로 나온 난
내심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이들의 동정을 훔쳐보니
즈네들끼리 글을 읽으면서 킥킥거리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웃음이 나와...감동 없인 볼수 없는 글이건만..
웃어?...너희들 전화 끊고 나서 보자궁..
잠시 후..뒤에서 저승사자처럼 근엄하게 나타난 나..
\"너희들...그 글보고 뭐 느끼는 거 있음.. 말해봐!“
음식도 디~게 못하는 큰딸이 먼저 내게 묻는다.
“엄마~뭐 먹고 싶어? 그렇잖아도 오늘 저녁은
우리가 하려고 했는데 엄마 먹고 싶은거 있음 말해봐.
내가 다 해줄께!“
”헉!.........“
(이런 의도는 아니였는데..ㅡㅡ+)
“음...참치 넣고 김치찌개 끓여줄까?..
아니면 색색이 갖은 야채가 들어간 계란말이?
엄마 걱정마~ 우리가 냉장고에 있는 모든 반찬 꺼내서
이쁜 접시에 담아서 한상 가득 차릴게~^^“
켁~~내가 미쵸..
저 메뉴판은... 좀 전 글속에서 읽은
그 메뉴하고 똑같은 거 아닌가..
공부할 때 머리는 나쁘면서
그런 건 어찌나 잘 외워서 말하던지..
두 녀석들 즈들끼리 큰소리로 웃는데
나도 그만 기가 막혀서 같이 웃고 말았다.
“느이들 말이야~ 그러면 안돼~”
썰렁 유머의 대가인 둘째딸이 진지하게 말한다.
“엄마 있잖아~우리학교 애들한테 물어보니깐
어버이날 엄마아빠한테 선물 하는 애 없더라?
아무래도 우리 집만 해주는 거 같아~”
“뭐셔?~~”
“혜린아~엄마 삐질라~오늘 저녁은 참치 김치찌개하고..
색색이 들어간 야채 계란말이를 하자구~”
“그래그래 냉장고에 있는 반찬 이쁜 접시에 다 꺼내 담자언니”
저것들이 또...
에휴.......내.가... 졌.다....
그날 저녁 낮에 한말 모두 까먹고
저녁상을 맛있게 먹고 치우는데
안방에서 컴퓨터 하던 큰딸이 갑자기
튕겨 나오더니 자기가 설거지를 한단다.
아 맞다! 오늘은 어버이날이지..
그새 까묵었다.. ㅡㅡ;
“그.래.라..”
우띠..진작 말할 것이지..
세제 다 묻히고 행구기만 하면 되는데..억울해라..
“깨끗히 잘 행구고! 식탁도 깨끗이 잘 닦아라~”
기다렸다는 듯 싱크대에서 물러난 나.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려고 비누를 묻히는데
순간 거울 속에 보이는 달라진 엽서가
눈에 번쩍 띄이는 게 아닌가!
“해피해피~~ 어버이날!!~~ 엄마 아빠 사랑해요!!
오늘은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우리가 다 해드릴께요~~“
허걱!!
곧 잠자리에 들 시간...
오늘 하루 뭐든지 시켜만 달라고??
경제력이 딸리니 몸으로 효도하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언제 막내 생일카드에서 어버이날 카드로 바뀐 거냐구...
손에 비누를 묻힌 채
기겁을 하고 거실로 나와 세 딸들에게 외쳤다.
“야~너희들! 이 카드를 지금 붙이면 어케 하냐?
오늘 하루 뭐든지 시켜만 달라고??..오늘 하루 다 갔잖아?
이런 경우가 어딨냐? 말도 안돼..이건 반칙이야!! @#$#$%$%....“
”그거 오늘 아침에 붙힌 건데?“
‘헉!...뭐...뭐..셔...........”
“엄마....그거 지금 본거야?”
“--;....................”
“엄마 정말 웃긴다~푸하하”
오메... 억울한거.......
어버이날! ...
돌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