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햇살을 사랑하게 되었다. 퍽퍽한 삶의 편린들을 고스란히 펴 말리면 햇살은 어머니처럼 따스히 쓰다듬어 주리라. 추억처럼 달콤하게 속삭여 주리라. 세균투성이 영혼을 말끔히 소독해 주리라. 플라스틱 김치통의 군내를 앗아가듯이 햇살은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합리화 시키던 불순한 의도들도 반짝이게 해 주리라 햇살은 우울한 상념을 거두어 가고, 정갈한 언어를 안겨 주리라. 그리하여 등 떠밀어 주리라. 다시 꿈을 꾸라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로, 유치원으로 가버린 놀이터의 고즈넉함을 새들은 나 만큼이나 누리고 싶어한다 감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부드러운 바람의 숨결을 느끼고 있자니 문자메시지가 온다. 벌써 한 달 전부터 하루에 두 서너 번씩 오고 있는 문자 메시지다. 강원도 사투리 잔뜩 섞어 기발한 내용과 기호로 보내 오는 이 문자 메시지는 이번 주 있을 중. 고등학교 총동문회 참석 촉구 메시지다. 문득, 학창시절이 생각나고,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이쯤에는 선생님들도 생각난다.
싸리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동글동글한 얼굴의 여 선생님, 들에 핀 싸리꽃을 한아름 꺾어커다란 옹기 꽃병 가득 꽂으면, 싸리꽃보다 흐드러진 선생님의 웃음... 별로 기억에 나는 건 없는데, 어쩌다 도심에서 싸리꽃을 보면 그 시골 여 선생님이 생각 나는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담임으로 오신 선생님은 한 학기를 겨우 어설피 가르치시고는 군대를 가셨다. 짧은 머리에 군복 차림으로 휴가를 오셔서 동생같은 제자들과 친구처럼 웃고 떠들던 고2 때 선생님, 위문 편지를 보내면 멋진 붓글씨로 격언이나 명언을 쓰셔서 함께 보내주시곤 하셨다. 혼란스럽던 시절 염세적이던 질문들에 편지로 도움을 주셨던 새내기 선생님은 지금도 아이들을 친구처럼 사랑하시겠지?
오늘처럼 햇살이 호사스런 날이면, 교정으로 학교 뒷동산으로 야외 수업을 가시던 국어 선생님의 들든 모습도 생각난다. 학교 뒷동산에 옹기종기 앉으면 시를 쓰라고 하시고는 선생님은 우리의 존재도 잊은듯, ㅅ시상에 잠겨있곤 하셨다.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되뇌이노라면, 어제일처럼 그날이 생각난다. 유월 어느 햇살 탐스런 날 오후, 학교 뒷동산에서 햇살 건너편 선생님을 보며, 시를 쓰던 순간이 생각난다. 이 기억속에서는 늘 브리지스의 \'유월이 오면\'이라는 시의 건초 냄새가 난다.
선생님은 시를 써가면 한 번도 잘 썼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위해, 시를 썼고, 어쩌다 \"좋아\" 이 한마디를 들으면 세상이 모두 내것이던 시절이었다. 얼마나 선생님의 칭찬에 목말라 했는지 다른 공부는 바닥을 기면서도, 국어와 현대문학은 반에서 1등을 했었다.
비가 오는 오후에 수업을 하시다 말고 갑자기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을 낭송하시던 선생님, 봄 소풍날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부르시던 선생님.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국어를 가르쳐 주시고, 6년 동안 문예부에서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선생님을 닮고 싶던 내가 그립다.
중학교 1학년 선생님과의 첫 수업 시간, 각자 돌아가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라고 했을 때, 나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설가\" 라고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볼래?\" \"소설가요\" 소설가가 꿈이라고 말한 사람이 나 혼자 뿐이어서 였을까?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지금도 기억난다.
얼마전, 동창회를 다녀왔다는 친구에게서 여전히 교직에 계시다는 선생님 소식을 들었다. 내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반가워 하시더 란다. 나는 요즘 생각한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멋진 소설가가 되어서 햇살처럼 화사하게 선생님을 뵙는 공상을 한다.
오월의 햇살은 유월의 햇살보다 덜 싱그럽다. 진초록 이파리를 녹음으로 몰아가는 유월의 광합성 건너편, 서른 살 선생님의 자유 냄새가 그립다. 퇴색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퇴색하는 나의 꿈도 그립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리운 것만 부질없이 많아진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