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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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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누이이기도 하다.


BY 일상 속에서 2006-05-08

 

 

 

점심때쯤, 막내 동생이 결혼할 여자 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왔다. 식구들에게 나에 대한 어떤 얘기를 듣고 왔는지 아가씨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얼굴도 눈도 동글동글하니 순하게 생겼다. 마음에 들었다. 처음 온 아가씨에게 보자마자 “어서 와.” 하고 말을 놓았다. 애들 올 시간에 맞춰서 상을 차리려고 나는 아침부터 꽤나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시장보기, 집안 치우기, 정리정돈(서랍 한쪽에서 굴러다니던 식탁보까지 깔아 대고... 나 역시 아가씨 못지않은 시집(?)살이를 한터였다.) 음식 만들기...


닭도리탕이 은근한 불에 간이 어느 정도 베어들쯤 도착한 동생과, 여자 친구, 나의 아이들이 상에 뱅~ 둘러앉아서 곧바로 식사를 했다.


아가씨가 밥을 푸려고 할 때 그만 두라고 했다. 처음 온 것이니 오늘은 손님이라고 다음에 오면 그땐 시키마 했다.


설거지까지 다 끝내고 방울토마토와 딸기를 준비해서 녹차와 함께 먹었다. 7살 터울지는 막내 동생의 여자 친구는 동생보다 2살이 어리다니 나와 9살 차이가 났다.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건축설계 회사를 다니고 있다니 그만하면 안정된 직장에 능력 있는 아가씨였다. 내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지만 싹싹 하려 애쓰는 모습도 괜찮게 보였다.


그 애들이 오기 몇 시간 전, 엄마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 귀찮아서 어쩌냐? 그래도 맛있는 거 해줄 거지? ”


하시는 엄마의 곁에 그 아가씨가 있는 듯 했다. (그 애들은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왔다.) 그러니 목소리 톤도 낮았고 욕도 없는 맹숭맹숭한 말씀 뿐이셨다. 쉽지 않았을 터이니, 엄마 역시 시집살이셨을 것이다.


그 애들이 도착하기 30분 전쯤에는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편하게 해줘라.” 하셨다.


아가씨에 대한 아빠의 커다란 배려였다. 큰 올케 때는 볼 수 없었던 관심이었다. 올케가 알면 섭섭하겠지만...


부모님의 걱정과 부탁이 아니더라도 예전처럼 딱딱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친정에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나의 전설 중, 한가지.


큰 동생이 결혼 할 여자를 부모님보다도 내게 먼저 선을 보이러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늘씬한 키에 세련된 옷매무새... 보통은 넘을 것 같은 인상 속에서 꽤나 고집스런 면이 느껴졌다.


편히 앉으라는 나의 말에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 동생에게 꽤나 교육을 받고 온 듯 했다. 아가씨의 목에서 십자가 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종교 자유국가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난 남의 믿음을 존중한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는 아가씨는 어찌됐던 큰며느리 자리로 들어오겠다는 것이다.


그 자리가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아가씨가 알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앉아서 얘기를 하던 중에 나는,


“혹시라도 어른들이 무슨 일로 인해서 교회를 빠지라고 한다면 아가씨는 어떻게 할 건가요? 집에 제사부터 시작해서 모임들도 많고 그러는데...”


하고 물었다. 아가씨는 나의 말에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는 가야 합니다.”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도 아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난감한 말씀이시네요.’도 아니었다. 딱 자른 그 당찬 말 한마디에 나 또한 기분이 확 상해 버렸다.


둘이 보내고 나서 몇 시간 후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어땠어?”

“어떻긴 뭐가 어때. 니들이 좋으면 사는 거니까 맘대로 해. 하지만 그 애랑 결혼하면 집안이 편치만은 않을 것 같구나. 부모님께서는 어쩔지 모르지만 난 그 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결혼 하거든 나와의 인연은 끊자.”


나의 말에 동생은 실망을 했다.(드라마 속에서 나 같은 캐릭터는 못되고 심술궂고 여우같은 시누이로 비춰지겠지.)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그 아가씨에 대한 일을 내 감정을 그대로 실어서 리포터라도 된 듯 자세히도 설명했다.


엄마는 나의 말에 보지도 않은 그 아가씨를 못마땅해 하셨다. 그래서 동생이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내려갔을 때, 차갑게 대하셨단다. 머지않아 동생이 그 아가씨와 헤어졌다는 말을 했다. 동생의 그 말에 내심 기뻤던 나였다.


 

어느 날 친정에서 남동생의 일기장을 훔쳐 본 적이 있었다.


‘장남이란 자리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 애랑 헤어진 것도 가족들과 원만한 관계로 지내기 힘들 것 같아서 였는데...그 애에게 자꾸 전화가 오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오든 다들 꼬투리를 잡겠지. 장가가기 힘들 것 같다.’ ...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나가 돼서 도움은 못주고 해방만 놓은 꼴이 됐으니 왜 안 그럴까? 해서, 나는 죄책감(?)을 안고 몇 개월 후에 사귀는 여자가 있다고 데리고 온 동생에게 무조건 좋다며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줬다. (지금까지 올케와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마음고생 많은 큰 며느리 자리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전에 그 일이 잘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좋고 싫은 것이 확실한 나를 시누로 둔 올케들은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잘못 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서야하니,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러니 시누이 자리에 있는 나 역시 편하지 만은 않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나의 불같은 성격은 점점 유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썩은 속을 하고도 해맑게 웃었고 온갖 수다로 떠들었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래의 올케가 다녀가서 몇 시간 후에 전화를 했다.


“형님, 감사해요. 너무 따뜻하게 잘해주셔서... 사실 무서운 분이라시기에 걱정 많이 했거든요.”

“부담 된다. 계속 잘 해줘야 될 것 같아서. 사회에서도 그렇겠지만 시집살이도 그래,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예쁨도 받고 미움도 받는 거야. 나는 네 착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가씨에게 나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알아두면 좋을 얘기들을 조금 더 해준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동안 혼자서 며느리 사랑을 받았던 올케가 조금은 상실감을 얻지 않았을까 전화를 해줬다.


친정에서는 이렇듯 나의 자리가 정상에 가깝다. 하지만 시댁만 내려가면 바닥을 기어 다녀야 하는 아랫것이 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친정처럼 시댁역시 딸이 귀해서 시누이가 한명 뿐이다.


그 시누이는 나이가 나보다 한 살 많지만 서열로는 1단계 아래다. 6남 1녀의 6째인 시누이는 성격 또한 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좋고 싫은 것이 확실하다.


싸우려고 들자면 엄청 보대낄 나와 시누이는 만나면 수다로 몇 시간을 보낼 정도로 통하는 것이 많다. 그나마 다행이다.


명절 때, 그 많고 바쁜 일을 앞에 두고도 시누이는 일은 뒷전일 때가 많다. 그래서 만화책을 보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 시누이에게 나는,


“고모, 시댁에 내려가면 고모도 손에 물마를 새가 없지요? 친정이니까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테니... 나도 우리 친정가면 물 안 묻히는데, 올케가 와서 일하는 것 보면 가만히 못 있겠습디다. 그것도 얼마나 자기 친정이 그리울까 싶어서요. 고모는 안 그래요?”


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뻘쭘해진 시누이가 마지못해 책을 한 쪽으로 밀어 놓고 주방으로 나왔다. 시누이는 입바른 말을 해대는 내게 늘 하는 말이 있다.


“ 언니는... 참으로 강적이우... ”


내가 며느리 자리에 있으니 며느리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올케 자리에 있었으니 그 자리 역시 쉽지 않은 자리임을 알 수 있었기에 친정에서 만난 올케와 주방에서 설거지를 서로 하겠다고 다툴 수 있는 것이다... 엄마가 나보다 올케의 편에서 얘기하는 것도 싫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