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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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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주절주절,질퍽질퍽)


BY 개망초꽃 2006-05-06

퇴근 시간을 한 시간 남긴 여섯시 무렵,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카페에 들어왔다.

말하는 입 밖으로 술 냄새가 담배연기처럼 메케하다.


“새로온 주인이세요?”

“아니에요. 조금 이따가 일곱 시쯤 나오세요.”

“술 먹으러 왔는데, 주인에게 전화 걸어서 나 좀 바꿔주세요?”
“제가 술 주문 받아요. 술 드시고 계시면 곧 올거에요.”

“이상한 여자네, 주인하고 통화 하고 싶다니까 전화를 왜 안걸어주고 그래요?

내가 잡아먹나.”

술 주문 받으려고 메뉴판을 들고 있는 내가 멋쩍고 어정쩡하다.

새로운 주인이 바뀌면 주인 얼굴 보려고 호기심에 남자들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구나, 술 먹는 남자들이 술집여자 얼굴 보는 것이 삶의 낙인가보구나…….

냉수도 갖다 주고 재떨이도 갖다 주면서 내 딴엔 웃는 얼굴로 갖다 주었는데

일하는 여자는 여자도 아닌지 자꾸 주인 여자만 찾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주었다.
“새로 오신 사장님이세요? 목소리도 예쁘시고..하하 기다릴 테니 얼른 오세요.

거기면 십오 분만이면 오시겠네요. 주절주절, 주접주접, 질퍽질퍽……. “

얼굴도 모르는 사장님하고 친 한척 애교도 떨고 붙임성도 엄청 좋다.


“녹차 한 잔 주세요.”

“따듯한 거 드릴까요? 시원한 거 드릴까요?”
“아니, 시원한 거 줘야지, 누가 뜨거운 걸 먹어요!”

그런가…….난 뜨거운 녹차가 좋은데…….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물어 본건데,

저따위로 말을 하다니…….내가 종업원이라서 저리 말하는 건가?

차가운 녹차를 웃는 얼굴로 갖다 드렸다.

“몇 살이에요?”

나이랑 녹차랑 뭔 관계라고 그런걸 물어볼까…….

 찬 녹차나 마시고 목소리 예쁜 사장님이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

“나이는 알아서 뭐하세요?”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 못한다.

말을 함부로 하고 무시하는 것들에겐 좀 드세게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거 참…….나이 좀 알려 주면 안 됩니까?”
확실히 한 풀 꺾인 목소리다.

“사십 넘었고요, 오십은 안됐어요.”

“그럼 마흔 중반인가 보구나…….마흔 다섯? 여섯? 나도 사십댄데..”

웃기만 하고 더 이상 대답을 안했다.

그랬더니 시계를 자꾸 보면서 십오 분 만에 오신다는 사장님이 왜 안 오냐고 투정이다.

난 또 웃으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화장하고 옷 챙겨 입으려면 삼십분은 걸릴 거라고 했더니

“난 우리 마누라한테 십분 안에 준비해! 그러면 금방 하던데.”

“오호호호 마누라하고 카페 사장님하고 똑같나요.안그래요? 호호호~~”

꽃밭으로 나왔다.

더 이상 얘기해봤자 술장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입 다물고 내 할일을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하얀 블라우스 입은 마가렛과 주황색 치마를 입은 한련화를 심었다.

화초사이 잡초가 무성하다.

\'남자들이란...새로운 여자가 흥미롭다 이거지...주절주절\'

맨 손으로 잡초들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뽑았다.

\'종업원이라고 무시하는거야 뭐야...질퍽질퍽\'

마구마구 풀을 뽑다보니 손톱밑이 까맣다.

 

사장님인 친구가 왔다.

사장님을 본 등산복 남자가 자기 마누라도 아니고 애인도 아닌데 반갑게 맞는다.

바르게 인사도 하고 점잖게 말을 한다.

나한테는 꼬투리를 잡고 무시하는 말투더니…….

확실히 사장은 좋은 것이긴 하다.

퇴근을 하면서 등산복 남자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즐겁게 드시다 가세요? “

오늘은 어린이 날이고 석가탄신일이다. 좋은 날이다.

나도 끝마무리를 좋게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