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믈하고 하나였을 때
지금은 다 잊은 詩 이지만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라는 시의
제목을 웬지 잊지 못하고 생각나게 하는 계절에 와 있는것 같아서 또 가슴이 설렌다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그때는 세상의 모든것이 내것과 같았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던 때 라고 생각된다
젊음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아직 앳된 청춘이 풋콩처럼 산들바람에 고이 나붓끼던 때.........
그 때 그사람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이었다
그는 내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신접살림을 시작한 집의 주인댁 아들이었다
한창 신혼살림에 빠져 있는 언니 집을 난 눈치도 없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난 언니에게서 주인댁 아들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모대학의 공학도라고 했다
\"그 사람은 공학도인데도 철학을 하는 사람처럼 행색이 항상 꾀제제 해가지고 한여름에도 긴 점퍼차림으로 다닌단다
그리고 집에서는 노상 흰고무신을 신고 사는데 저번엔 학교갈 때도 흰고무신을 신고 가더라니까 글쎄....1세기에 한번 날까말까 하는 사람 같지 않니?\"
언니에게서 얻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실에 꿰듯 자세히 내머리속으로 쌓여만 갔다
그의 얼굴을 한번 보려고 늘 기회를 틈탔지만 좀체 그런 일은 내게 주어지지 않아 조바심을 하고 있던 터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언니가 집을 잠깐 비운 사이에 누가 들어왔는지 방에있던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카메라는 형부가 파월장병으로 있던 시절 고국으로 돌아올 때 기념으로 사온 것이어서 값도 제법 나갔고 가장 아끼던 물건이여서 언니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잃은 물건을 찾아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주인댁 아들이 언니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순간. 내 심장은 멎는듯 했고 그의 얼굴에서 솟구치는 알 수 없는 광채에 난 눈이부셨다
그는 진정으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자 하는 열성을 보여주며 언니와 함께 이것저것 방법을 강구했다
난 잃은 물건에 대하여는 별 관심도 없이 오직 그의 얼굴을 훔쳐보는 일에만 온 관심을 기울일 뿐이었다
적당한 키. 마르지 않은 몸에 어떤 생각이든 모두 담고 있는 듯한 부드런 눈. 상냥하고 친절한 말씨. 분위기를 상하지 않는 적당한 유머. 더구나 그가 한사코 신고 있는 흰고무신의 애틋함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그날 언니는 카메라를 끝내 찾지 못한 채 형부의 퇴근 길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난 더 자주 언니집을 기웃거렸지만 그의 모습은 전혀 찾을 길이 없었다
내 하루의 일상은 오직 그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고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를 생각하는 일기를 밤새 써내려 가기도 했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아는거라곤 언니에게서 얻어 들은 그의 극히 부분적인 일상의 얘기들과 단 한번의 만남을 가져다 준 것 뿐이었지만 그것들은 내 생활 속에 너무도 큰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건 왜 였을까?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내가 마치 그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아는양 왜 그를 그렇듯 목말라 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 알 길 없다
난 더 이상의 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 할 다른 길은 없었다
난 드디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그의 앞으로 익명의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주소와 그의 이름은 언니에게 들어 익히 알고 있는 터에 난 망설임없이 곧 실행에 옮겼다
난 겉봉에 이렇게 적었다
\'섬나라에서 돌쇠\'
왜 그런 이름이 생각났었는지 그 이유도 지금은 알 길 없다
난 일주일에 한번 또는 닷새한번 다시 또 사흘에 한번 도 어느 땐 하루 한번 그에게 편지를 쓰고 또 보냈다
내용은 그가 읽더라도 보낸 사람이 남자인지 또는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아. 난 그 많은 날들을 그에게 편지를 쓰고 또 보내는 것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가 그 편지를 받으면서 또는 읽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었지만 난 쉼없이 쓰고 또 보내었다
그렇게 늦은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계절은 다시 겨울로 바뀌어갔다
그가 학교를 졸업했다는 얘기를 언니에게서 듣고 난 조금은 서운한감이 앞섰다 왜 그랬을까?
얼마 후 언니는 내게 엄청난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댁 아들이 취직이되서 저 아래 경남 지방으로 내려갔대 거기서 하숙을 하게 됐다지 아마....\"
그때의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선 그 어떤 것들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소리가 천둥소리 보다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절망의 나날을 감당하는 시간들이 꽤 오랫동안 내 생활을 지배했다
어떻게 그 깊은 심연의 늪에서 빠져 나왔는지 알 길 없지만 그가 없는 서울의 하늘아래서 내가 홀로 보낸 시간들은 지금 생각하면 아까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에 읽었던 책과 썼던 글들이 지금은 내게 정신의 자산으로 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내겐 행운의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그를 본 일도 없었고 그에게 편지를 다시 쓰는 일도 없었지만 내 삶에 있어 그가 차지한 부분은 실로 크고 많은 부분들이었던것 같다 지금은 그의 얼굴도 기억에 없다 그의 목소리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부드럽고 정겹던 눈망울은 아직 내 기억에 새로운 것은 왜 일까?
지금은 거리에서 그를 만난다 해도 전혀 알 길도 없을거면서..........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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