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날하루 산사람이 되려고 산으로갔다.
산을 오르는 묘미 그것을 모르면 산에를 가는 아무런의미가 없는것 같다,
전날 제주도에 고향을 둔 딸아이 친구가 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친구도 볼겸 군항제도 올겸 해서 토요일날 왔었다,
두 딸을 데리고 밤 벗꽃을 보려고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길을 갔엇다.
벗꽃이야 제주도에도 있고 진주에도 있겠지만 차를 타고 천천히 꽃이 함께 어우려져
터널을 이루고 있는 길을 갈때는 딸아이 친구는 우와 ~~ 하는 감탄사를 연발 한다,
일요일날 다시 해군사관 학교와 작전사를 가려고 했는데 딸 아이들이 일어 나지를 못한다,
꽃 길을 걷고 야시장에 들려 늣게 오던니 피곤 한것 같다,
이렇게 좋은날 산에는 진달래가 곱게 피어 있을것인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매년 진달래가 필때쯤이면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천주산 으로 갔다,
시아버님 께서 살아 계실때 모시고 온천에 목욕을 가면서 이맘때쯤이면 진달래가 피어
온 산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저 산에 언제 한번 가보나 하면서 바라만 보던 산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부터 혼잡하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정보들을 얻다 보니 어느 곳에 어느 산이 좋더 라는것을 알기 때문인지
서울에서.대전에서.전라도에서 .경북에서.여려 지방 산 사람들이 많이들 왔다.
도량을 끼고 있는 좁은 밭둑을 걷다보니 이제는 논둑에도 밭둑에도 푸른 색채로 온통 칠해져
있는것 같기만 하다,그런 들판을 보니 신선한 느낌이 든다.
첨 쑥이 뾰족 뾰족 올라 올적에는 캐기도 힘들었지만,그래도 쑥을 보면 캐고 싶은 마음이었는데너무 많은 쑥을 보니 캐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냥 듬듬하게 보아진다,
이곳에는 쑥이 참많네 하는말로 궁시렁 거림시로,진짜 사람많다 ,본격적인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산에 오르지도 못하겠다.
정상으로 가는길은 양쪽으로 일렬하게 진달래 나무 들이 자라고 있어 선 분홍색 진달래 꽃을 피 우고 있다 .하얀 벗꽃에서 순결함을 느꼈다면 분홍빛 진달래꽃에서는 첯사랑의 감정이 느껴진다.이제 막 봉오리를 터트리는 꽃을보며 아짐매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아~~~ 내 열아홉살 적 모습같은 꽃이다,=했던니 옆에 아제가 =당신 열아홉살 적에 저래 이뿟나=
=아니 내 모습이 이뿟다는거이 아이라 열아홉살 적에 가슴속에서 울렁거리던 내 감정의 색깔이 고밧다 이거지=그리고 앞서 가면서 엉디를 삐적거리고 걷고 있는 아제의 뒷모습을 봄시로 혼자서 낄낄 거리고 웃었다 ^&^
정상이다 정상이 원래 진달래 군락지인데 아직 정상의 진달래는 다 피지를 않아서 아쉽다.
왔던길 뒤돌아 보니 숨이 턱에 차서 헉헉 거리면서 등에 땀줄이 흘려도 정상까지 왔다는 내 인내에 뿌듯함을 느낀다,
어쩌면 힘들게 산을 오르는 것도 내 삶의 한 부분일것이다,
내게도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 라는 이유로 어머님의 독선은 은빛 화살촉이 되어 내 가슴에 꽃히는 날에 혼자 멍울을 삭히는 내게 아제는 날 부등켜 안고 한숨지며 그랬다.
차라리 이집을 떠나라고 당신 정도 하면 어디가던지 인정 받고 살 것이라고 하지만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부부라는 인연으로 맻어 졌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함께 한숨 짓던 아제랑 이렇게 고운날 고운 꽃을 보려 오게 될것이라고 그때는 몰랐다.내게도 이런 봄날 같은 날들이 있을것이라는것을 ..
지나간 그 힘듬의 세월에 연연해 하지말고 지금 지난 날의 아픔으로 잉태한 두 그루의 보석 나무가 푸른잎이 생기고 고운 꽃이 피고 그리고 열매가 열려 잘 익어면 그 열매를 따야 한다.
그때 까지 난 스스로 움직일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가져야 함이다,
그때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어머님 이었다면 오늘같은 여류로움도 없어으리라,
세월은 그렇게 사람을 힘이빠지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고 아무튼 나 역시 늙어 가는 세월이지만 세월에게 감사 해야 겠다.
그래도 집에 와서 =어머이 산에 갔다 왔심니더=
=오냐 조심 하지 =예=
또 한 세월은 드는 줄 모르게 끈끈한 정을 갖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