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있다.
딸 셋낳고 나은 아들이라 더 애틋하고 귀하기도 하지만
집안의 장손이란 위치 때문에 더욱 더 든든한 아들였다.
요즈음 세대엔 아들, 딸 구별하면 욕 먹지만
나의 세대만 하드라도 아들은 또 다른 의미였고
아들 낳은 며느리와 딸 낳은 며느리의 위치는 크다란 차이가 있었다.
세 번째 딸을 낳았을때 또 속았다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시어머니 때문에
얼마나 서러웠든가?
“너는 다 좋은데 아들을 못 낳아서 그게 제일 큰 험이야”
나를 무지 좋아하셨든 시아버지가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하셨든 말씀도
내 가슴을 치게 했다.
“이번엔 그만 아들을 하나 쑥 뽑지...”
세 번째딸을 낳았을때 울 친정 엄마가 하셨든 원망썩인 푸념였는데
아들도 명주실 뽓듯 그렇게 맘데로 쑥 뽑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남들 다 잘 낳는 아들을 난 왜 못 낳을까?
더구나 여섯이나 되는 시누이들은 결혼하자마자 말 그데로
명주실 뽑듯 아들을 쑥쑥 뽑았는데....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다 네 번째에 드디어 나도 아들을 낳았다
그때의 뿌듯하고 당당했든 마음을 어디에 비교할수 있으랴.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말 그데로 무럭 무럭 자라줘서 참으로 든든했다.
유난히도 엄마에게 각별했든 넘.
누나들과 달리 다 자라기도 전 사춘기 시절에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었다.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그랬는데도 오히려 엄마, 아빠를 격려하면서 잘 헤쳐나가줬었다.
몸 담을 집도 절도 없자 휴학계를 내고 재빨리 군에 입대해서
부모의 짐을 덜어줬든 기특했든넘.
그애는 내 삶의 희망이자 기둥이었다.
친정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홀로 있게 됐을때
받을거 다 받은 내 남동생은 장남이 아니란 이유로 아버지 모시길 외면했다.
장남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장남을 지는 불러올 재주라도 있는지....
아버지 연세가 92세.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싶어 내가 모시기를 자청했다.
집도 절도 없는 서울살이에 너무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비싼 물가. 월말이면 닥치는 집세.
1달 1달은 왜 그리도 빠르든지...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학교에 다니든 아들에게
할아버지의 상황을 의논했을때 두말않고 가라고 등 떠밀어 주며
지 걱정은 조금도 말라고 하든 기특했든 아들..
시골살이는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
대소변을 못가리는 아버지가 미워질때마다
전화통에 대고 아들에게 푸념아닌 푸념을 하면
“힘들드라도 참으세요. 대신 제가 나중 엄마 아빠에게 잘 할께요”
빈말이라도 그렇게 나에게 용기를 주든넘였다.
그 아들넘이 아팠다. 많이...
처음에는 맹장염이라고 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받을때도 나는 까맣게 몰랐었다.
엄마 걱정한다고 누나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기에
수술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맹장염 그건 수술도 아니예요. 간단한건데 뭐...”
허겁지겁 달려간 내게 요렇게 안심을 시켜주든넘.
아들이 입원을 했어도
아버지 때문에 계속 옆에 있어줄수가 없었고
겨우 하루 있다가 돌아와야 했다.
퇴원을 했는데 계속 열이나고 배가 아프고 복수가 찬다고 했다.
다시 재 입원.
괜찮다고해서 퇴원을 하면 또 복수가 차오며 아프다고 했다..
멀리 있는 나는 전화통만 붙들고 속수무책였다.
도저히 안되어서 병원을 바꿔보기로 했다.
더 큰 병원으로...
바싸기로 유명하단 S 병원.
급한 마음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또 지난번에 했든 검사를
새로히 했다.
입원을 했어도 걍 링거만 꼽고 있었고
내가 갈때마다 의사는 코빼기도 볼수 없었다.
바싸단 KTX.
평소 같으면 돈이 아까워서 타지도 않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타지 않을수 없었다.
하루만에 올라갔다가 내려옴의 반복.
돈 아까워도 아버지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내 사정 때문에 형제들이 하루 이틀 대타를 해주긴 했지만
시종일관 나만 찾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고 아우성였다.
내가 있으면 잘해주지도 않는 아버지가 내가 없으면
그렇게 찾으시다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병실은 2등실였다.
빨리 3등실이 비어야 하는데... 말은 않았지만 속이 탔다.
아들이 편하게 있어야 하지만 그넘의 돈이 원수지.
이넘은 왜 하필 집 꼬라지가 거지가 되어 있을때 아프단 말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느날.
그날도 서울역에서 내려 헐레벌뜩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복도에서 어느 보호자가 병원비 걱정 하는걸 들었다.
벌써 몇천을 까먹었다고.
그 소릴 듣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돈이 없는데....몇천 아닌 몇백도 내 수중에 없는데....
그럼 내 아들은 어떻게 되는건가?
눈물이 나왔다. 아아... 사랑하는 내 아들.
병실에 들어서자 아들이 웃었다.
웃는 아들을 보자 그만 다시 서러움이 북받쳐왔다.
병원비. 병원비....
머릿속은 온통 병원비 생각만 났다.
“어머니. 담당 선생님이 퇴원해도 좋대요.
2주마다 와서 경과보고 약 타가면 된다고 해요. 인제 걱정마세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들어갔든 병원비가 만만찮았을껀데 인제 더 이상
병원비 걱정은 안해도 되는구나.
“아이구 그러니? 잘됐다. 만세 3창할까?”
막 웃었다.
인제 그 비싼 KTX 도 졸업이구나.
한번도 병원비 청구서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아들과 딸에게
“야들아. 그동안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냐? 엄마 걱정하는건 알지만
그래도 나도 대충 알고는 있어야 하잖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보험금이 나와서 오히려 돈 남았어요”
의기양양하게 자랑스런 표정으로 말하는 아들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보험? 언제...누가 보험 들었는데?”
옛날에 들었든 보험은 손해보고 다 해약을 했었다.
당장 밥 먹고 살아야했기에...
그리고는 든 것이 없었다.
내일을 위한것도 좋지만 바로 오늘 살기가 급급한데 보험 들
여유가 어디 있으랴.
“제가 들어놓았거든요. 어머니것도 들었으니 아파도 조금도 걱정하지 마셔요”
아아...아들. 아들아. 넌 왜 이렇게 일찍 철이 드니?
거의 몇 달동안 병원을 오고간후 인제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다시 건강해졌단다.
펑펑 울었다.
아버지 때문에 정작 내 아들이 아팠을때는 옆에서 지켜주지 못했는데도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고 기특하게도 보험까지 들어서
나의 걱정을 덜어준 아들이 너무 고마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