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버스기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92

생 명


BY 동해바다 2006-02-16



      말라붙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화초가 살아 있었다. 

      노지에서 월동할 식물이 아닌것 같기에 베란다 작은 화단에 심어 놓았는데 그만 바싹 말
      라버리고 말았다. 손으로 만지니 붙어있던 잎이 부스스 부서지며 떨어진다. 추위를 견디
      지 못했던 탓인지 겨울나기를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죽어버렸구나 예
      측하며 언젠가는 뽑아버려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춥기도 하거니와 바쁜 일상사로 베
      란다를 그득 메우고 있던 화초들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던 차였다. 

      올해는 강추위가 오랫동안 버티고 있어 매해 잘 견디던 화초들도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많이 죽어버렸다. 조금 썰렁해져 버린 베란다를 보면서 애꿎은 봄만이 치료제라는 생각
      이 들었다. 그래서 더 소홀히 여겼던 공간, 오늘은 큰 맘먹고 신문과 면장갑을 끼고 작업
      을 서둘렀다. 너희들을 다시 살려보마, 어떡해서든 보살펴주마 속으로 다짐하며 초록의 
      화원을 그려본다. 베란다의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더니 갑작스럽게 부는 강풍에 천정까
      지 올라가 허리숙이고 있는 벤자민의 힘없고 얼어버린 잎들이 마구 떨어져 흩날리며 떨
      어진다. 마치 추풍낙엽처럼....

      영동지역에 불었던 돌풍으로 사건사고가 속출했다는 뉴스앵커의 낭랑한 음성이 모니터 
      밖으로 새어 나왔다. 한낮의 바람소리가 음울한 음향의 세기를 더하며 들려온다. 열려있
      던 창문을 닫고 화초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하나하나 관심을 기울여 살펴 보았다. 유
      리문을 통과하는 정오의 햇살에 등허리가 따뜻해진다. 작은 화단에 옹기종기 모아놓은 
      화초들이 추위에 움츠려 들며 성장속도가 정지되어 있는듯 고만고만한 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죽었다고 여겼던 화초를 쑥 뽑는 순간이였다. 수많은 잔뿌리를 증식해가며 
      가지밑둥에서 아주 작은 돌기처럼 하얀 순이 나오고 있었다. 새 생명이 땅을 뚫고 나오
      려는 순간 나는 그새를 못참고 뽑아 버렸던 것이다. 참지 못한 미안함에 얼른 흙 속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얼어버린 동토의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생명력, 저 안 깊숙히 치밀고 올라오는 여린 
      생명이 제게 베풀어준 흙에게 보상하려 함인가. 세상 밖은 이미 죽어버린 가지가 꽂꽂하
      게 서서 땅 속의 새로운 생명에게 양분을 모두 내어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졸지에 바깥
      세상을 미리 구경하게 된 새순은 나의 당혹스러움을 살짝 엿보고 다시 흙 속으로 들어갔
      다. 이웃했던 키 작은 식물의 본모습을 보고 들어간 새순이 땅속에서 재잘재잘 잉태한 
      친구들에게 바깥 세상을 알리지 않았을까 싶다. \'벌써 꽃이 선보였다구, 따뜻한 봄이 오
      고 있다구, 희망을 가지라구, 힘내라구...\' 귓가에 들리는 재잘거림이 마치 나를 위한 희
      망의 팡파르를 울려주는 듯 했다. 

      비좁은 화분에 더부살이로 살았던  알뿌리 식물은 제집인냥 터를 잡고 객식구까지 늘려 
      온통 크고작은 알뿌리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것역시 화단으로 옮겨 숨통을 트여주었
      다. 쑥쑥 밀고 올라올 보라색 꽃의 향연이 언제쯤 열리려나. 뻘쭘히 커버린 머리를 싹둑 
      이발시켜 주고는 다독다독 흙을 눌러주었다. 그 뒤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는 제라늄의 
      개화가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꽃대궁마다 예닐곱 개의 연두색 봉오리들이 분홍색의 꽃
      을 피워내려 하고, 겨울 꽃 동백은 가분수처럼 큰 꽃의 무게에도 아랑곳없이 핏빛 붉은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며 수십 개 피어 있다. 썰렁한 듯한 초록의 움츠림에 이런 꽃들
      의 기지개와 세상 밖으로 나올 새 순들의 움틈이 나를 기쁘게 한다.

      죽은 듯 살아있던 생명이 내게 던져주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숨쉬지만 살아있지 않은 
      生을 근근히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 내가 속해 있을까. 아니면 흙 속에 살아 새로
      운 생을 준비하고 있는 식물처럼 새 삶을 향한 도약의 발판이란 말인가. 연필심처럼 생
      긴 새순에게서 나는 삶의 원초적 본능을 배운다. 이미 헤치고 살아가야 할 의무가 부여
      된 새순처럼 내게도 힘이 주어진 것이다. 결코 소홀해서는 안될 아주 작은 지침이 의기
      소침해 있는 나를 일깨운다. 저들의 강한 생명력은 소멸이라는 과정을 지나 재탄생하게 
      되는 자연의 섭리였던 것이다.

      가뭇한 흙 한줌 쥐어보니 녹녹하면서 부드럽다. 흙냄새도, 물을 흠뻑마신 초록의 냄새도 
      모두 봄을 알리고 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쭈그리고 앉아 볼품없는 화초 하나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한낮, 시샘하듯 유리창 밖 마른잎들이 강풍에 이리저리 패대기당
      하며 온실처럼 따뜻해뵈는 베란다 안을 기웃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