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퍼즐 한 조각의 의미는
내 남편에게는 두 가지의 소원이 있다. 하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일요일을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하루종일 낚시를 하는 것이다. 후자의 무게가 더 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내 남편은 낚시광이다. 엄밀히 말하면 플라이 배스 낚시꾼이다. 서재 벽에는 \'흐르는 강물처럼\'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고 시간만 나면 늘 낚싯줄을 풀렀다 감았다 하는 것이 낙인 남자다. 남편을 만난 16년 전에도 남편은 낚시광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낚시광이다. 그런 남편이 언어영역 수능 전문 강사가 되어 일년 내내 일요일도 없이 11월 중순까지 돈벌이를 해야하는 처지에 내몰리자, 낚시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갔고 새벽녘에 귀가해서는 잠들 때까지 요즘은 부쩍 더 낚싯대를 폈다 접었다, 낚싯줄을 풀렀다 감았다하는 낙으로 곤한 하루를 견디는 중이다. 아마도 수능이 끝나면 낚시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꿈을 품는 탓이리라 생각하니 가엾기조차 하다.
그런 남편이 한 달 전, 길거리에서 대어를 낚았다며 \'흐르는 강물처럼\' 사진으로 완성될 천 개의 퍼즐 조각 박스와 판넬을 들고 흥분한 얼굴로 들어섰고 3주 동안 매일 잠들 때까지 퍼즐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에 와서도 할 일이 많아 컴퓨터 앞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는 남편에게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구부정하게 쭈그리고 앉아서 퍼즐을 맞추고 있는 남편의 얼굴과 몸 동작에는 비장함마저 흐르고,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퍼즐을 보면서 혼자 히죽거리며 웃곤 하는 걸 보면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커피를 갖다놔도, 과일을 깎아다 줘도, 밥을 먹으라고 해도 대답만 허공에 떠돌 뿐, 남편의 \'퍼즐 맞추기\'에 대한 집중력을 깨뜨리진 못했다. 늘 서재 한 쪽 방바닥에 누워있는 판넬과 조각들을 행여나 건드려서 한 조각이라도 잃어버릴까봐 나는 청소를 할 때도 그 주변은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걸레질을 해야했고, 아들 녀석이 들어오면 가까이 가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매일 매일 얼마나 완성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남편뿐만 아니라 아들의 일과가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녀석은 아빠가 심혈을 기울여 맞춰가고 있는 퍼즐이 언제나 완성될까 기다리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일과가 된 것이다.
사건은 퍼즐을 3분의 2정도 완성한 지난주에 일어났다. 새벽 2시,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남편은 들어서자마자 언제나처럼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에 늘 남편은 그 막간을 이용해서 퍼즐 맞추기를 시작하곤 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몸살이 심해서 종일 비실대며 일을 해야하는 나도 지쳤지만 그래도 나보다 지금은 남편이 더 고생하는 걸 알기 때문에 무거운 몸을 추스르며 저녁을 차리려고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고 남편은 퍼즐을 맞추려고 방바닥에 주저앉다가 갑자기, 뭐야! 하고 얼굴이 시퍼래져서 소리를 질렀다. 여태 살면서 남편이 먼저 아무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흥분한 적은 몇 번 없었던 터라 나는 너무 놀라 일어나던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뭐야! 하나 어디 갔어? 하고 소리를 질러서 돌아보니 낚싯대를 잡고 있는 제일 중요한 손목 부분의 퍼즐 조각이 사라져서 마치 구멍처럼 뻥 뚫려 있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란 말이야! 못 봤어? 이 방 오늘 청소했어? 숨소리조차 헐떡거리며 흥분하기 시작한 남편은 딴 사람 같았다. 남편은 급기야 책상 위에 놓여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 들춰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책꽂이 사이사이와 방안을 온통 뒤지며 사라진 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거실로 나가서 거실 바닥에 한 가득 널어놓은 빨래들을 다 들춰서 흔들어 보더니, 신문을 가져와서 쭉 폈다. 휴지통을 거꾸로 쏟아 유심히 헤쳐가며 살폈고, 먼지와 자잘한 쓰레기들로 꽉 찬 청소기를 분해해서 털어 보기도 하면서 연실 중얼중얼 대며 가끔 힐끗힐끗 내 쪽으로 원망 가득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 문을 열고 이불을 꺼내 하나하나 펴서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고, 팔짱을 끼고 그런 황당한 동작들을 연출해내고 있는 남편을 노려보다가 급기야는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뭐 해? 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몰라서 함부로 해? 그거 맞추는 게 유일한 낙인 걸 몰라서 그렇게 무심하냐? 한 조각도 없으면 다 필요 없는 게 퍼즐이라는 거 몰라? 그것도 마치 일부러 제일 중요한 부분만 쏙 빼서 버린 것처럼 없잖아! 높지도 낮지도 않아 더욱 가슴을 긁어대는 원망과 분노의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할 말을 모두 준비라고 하고 있었던 듯 빈정대면서 이 방 저 방을 오고가며 남편은 중얼거렸다.
순간 뭉쿨, 아랫도리가 뻐근하더니 무언가 뜨거운 것이 또 흘러나오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내게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하혈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한의원을 찾아갔더니 몸 안에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서 맥이 잡히지 않는다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몸을 좀 챙긴 후에 다시 맥을 짚어보자고 했지만, 나는 여태까지 한의사의 요구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거의 쓰러질 상황까지 온 것 같은 날들이 며칠째 가고 있었지만, 나는 수능 막바지에 나보다 더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구구절절 나의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뭐하냐구? 나도 하루종일 수업하느라고 목이 붓고, 손발이 떨려! 밥 먹는 시간 놓쳐서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수업하다보면 벌써 밤이야! 내가 하루에 몇 시간 수업을 하는 줄 당신 알기나 해? 나도 한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슈퍼우먼처럼 일 한다구! 나보다 그 놈의 퍼즐 한 조각이 더 중요해? 그 까짓 퍼즐 조각 하나 때문에 사람 속을 이렇게 뒤집어? 일 주일 내내 빌빌거렸지만, 내가 당신한테 뭐라 한 적 있으면 말해봐! 그 까짓 퍼즐이 그렇게 중요하냐구!
남편은 한참을 나를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선 채로 한참을 씩씩거리며 서 있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곧이어 주루룩, 쓰레기통에 퍼즐 조각을 버리는 소리가 났다. 안 하면 돼! 그래, 이 까짓 거 안 하면 그만이지!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해봐야 소용없어. 됐어! 이제 신경 쓰지마. 버리면 돼. 내가 소리 지른 건 미안하지만, 내 것에 무심했던 당신도 섭섭해. 그리고 그렇게 많이 아픈지 몰랐던 것도 미안하고 내가 퍼즐 조각 맞추느라고 당신 일 안 도와준 것도 미안해. 안 해! 안 하면 되지... 남편은 냉장고를 열고 소주 두 병을 들고는 서재로 들어가서 30분쯤 지나 술에 취해서 나오더니 아무 말 없이 비틀거리며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편은 안방으로 들어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코를 골고 잠들었지만, 나는 아침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다음 날, 우리는 굳은 표정으로 서로 말 없이 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신발장에 놓여진 휴지통 밖으로 흐트러져있는 퍼즐 조각을 보고는, 누가 이랬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녀석은 아빠가 얼마나 퍼즐에 심취해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버려진 퍼즐 조각을 보고 적잖게 놀란 기색이었다. 이제 안 하신대, 한 조각이 없어서 할 필요가 없대. 그래서 밤에 엄마랑 아빠랑 싸운 거였어요? 들었겠지. 큰소리를 내면서 울기까지 하며 싸웠으니까. 아들 녀석의 얼굴이 금세 사색이 되어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도 엄마, 아빠가 싸운 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나보다 싶어서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며 괜찮아, 미안해... 하는데 아들은 그런 내 손을 걷어내더니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녀석은 아빠를 한 동안 쳐다보더니, 아빠, 이거야? 이거 때문에 그랬어요? 하면서 손바닥을 쭉 펴며 사라진 퍼즐 조각을 내놓았다. 금세 울음이 터져 나올 듯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얼굴로 녀석은 아빠를 올려다보며 문제의 그 퍼즐 조각, 손목 부분의 그 조각을 치켜들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 내가 가지고 있었어... 왜? 왜 네가 가지고 있었어? 드디어 울음이 터진 녀석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울면서 떠듬거렸다. 아빠가 퍼즐 다 맞추고 나면 주려고 그랬어, 한 조각이 없으니까 완성 안 된 거잖아, 그래서 아빠가 실망할 때 멋지게 짠, 하고 주려고 내 비밀 상자에 넣어놨었어... 그리곤 엉엉 선 채로 녀석은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새벽에 엄마 아빠가 싸운 건 알았어도 잠결이라 구체적으로 무슨 이유로 싸운 건지는 몰랐다고 했다. 남편은 아들 녀석을 안아주며 등을 토닥거리면서 괜찮아, 그랬구나, 우리 아들이 아빠 보다 더 멋진걸! 아빤 그것도 모르고... 괜찮아, 울지마...
눈에 눈물이 고인 남편과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