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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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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BY 개망초꽃 2006-01-26

늘어진 아침을 맞는 건 내겐 버릇이고 일이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몸을 치대며 침대를 벗어나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잔 마시는 것이 아침 요기의 전부다.


이런 치명적인 버릇을, 나는 치명적으로 생각지 않는데, 주변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려면 이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아침잠이 많게 된 것이 이십년이나 됐다는 얘기다. 고쳐 보려고 했지만, 고칠 수 없게 된 건 아침에 일찍 서둘러 일을 하면 일이 진전이 없고 정신이 몽롱해서 그냥 내 버릇대로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포기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사할 때 삼년만 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서성일 일도 없고, 아침 댓바람처럼 찾아오는 손님도 없고 해서 이 버릇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 가는 아이를 보내고 난 다시 침대 속으로 내 몸을 숨긴다. 오전 잠이 달콤하다 못해 침대와 함께 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오전에 집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은 그건 나와 관계가 없는 구매성 전화나 광고형 전화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날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전에 절대적으로 전화를 안 거는데, 잠에 취한 목젖으로 전화를 받으면 전화 건 입장에서 맥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아주 급한 용건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데, 집 전화는 안받지만 핸드폰 문자는 잠에 취해 보고, 급한 일이면 내가 연락을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엔가 아침형인간이란 책이 유행 한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나 같은 인간은 게으르고 아주 망해도 싸다는 인간으로 취급해 버렸다. 아침형 인간이 건강하고, 아침형 인간이 성공을 하고, 너는 너무 게으르다는 그래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야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억울했다. 너로 인해 장사가 점점 안 된다는 말까지 들어야했다. 오전에 일찍 서두르진 않아도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던 나는 억울했다. 오전에 손님이 별로 없어서 일하는 아줌마를 일찍 나오라 하고 나는 밤에 혼자 장사를 했다. 손님들도 오전에 나와서 일하는 분은 부지런하다 하고, 밤에 늦게까지 있는 내게는 혼자 있어서 무섭지 않은세요?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일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에겐 부지런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찍 서두르는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시간에 잠을 일찍 자는데. 그러니까 일하는 시간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고 똑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난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글을 쓴다. 이것도 버릇이 들어서 그렇지만 낮엔 글이 안 써진다. 새벽에 글이 써지는 건 웬 팔자소관인지…….누가 나보고 고양이네요, 하면 난 그런다 달맞이 꽃이라고…….  달 밝은 밤이 오면 꽃을 피우는 외로운 달맞이꽃~~~이런 유행가도 있었다. 요즘은 통 들을 수 없는 노래지만, 내게 맞춘 주제곡 같다.


그러니까 보통사람들은 점심식사를 할 때 내겐 아침이다. 낮 한시쯤 첫 번째 밥을 먹는다. 둘이 살다시피 하는 난 첫 번째 밥을 혼자 해결한다. 상 차리고, 식탁에서 안 먹고 찻상을 꺼낸다. 작은 접시에 반찬을 담고, 예쁜 공기에 방금 했어요, 하는 따끈한 밥을 담는다. 혼자라도 제대로 상을 차려 밥을 먹는다. 그리고 음악이 나오는 텔레비전 채널을 맞춘다. 차근차근 먹는다. 이제 아침이라 밥맛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마른 몸을 무척 많이 아껴서 밥은 꼭 먹어둔다. 마른 명태 같은 몸이 더 말라서 쓸모가 없을까봐 뭐든 먹으려고 노력을 한다. 주변사람들은 노력을 안 한다고 보는데 그것 또한 억울하다. 나도 살이 뒤룩뒤룩 찌고 싶을 때가 있다. 젖가슴이 풍만해져서 애인이 생기면 젖탱이를 흔들며 애교스럽게 코맹맹이 소리를 하고 싶다.


오후 5시쯤 간식을 먹는다. 커피 우유를 탄다. 빵이나 과자를 과일과 곁들인다. 커피 우유를 맛있게 타는 법은, 찬 우유에 커피를 한 스푼 넣고 노란 설탕을 넣는다. 알고 나니 별다른 방법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방법을 모를 땐 뜨거운 물에 커피를 먼저 풀고 우유를 넣었었는데, 우유에 직접 커피를 넣으면 더 맛있다. 이 편하고 더 맛있는 방법은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나처럼 마른 여자가 가르쳐준 것이다. 그 여자는 나보다 더 말랐었다. 가수 강수지를 닮았다고 했더니 제가 그렇게 예뻐요, 하며 좋아했다. 그 여자는 커피 우유를 마시면서 시어머니 흉을 지겹게 보았었다. 같이 커피 우유 마시는 순간은 좋았지만 시어머니 흉을 흉직하게 봐서 나중엔 내가 그 여자를 피하게 되었다. 남편이 방송국에 다녀 돈도 잘 벌고, 남편이 마누라 말이라면 꼼짝마였는데, 마누라 말이라면 벽에 붙어서 벌벌 떤다는, 벽처가였다. 돈도 잘 벌고 착한 남편의 어머니를 왜 그리 죽이도록 미워하는지 세상사가 모순투성이다. 그 때부터 커피 우유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오 년 후쯤에 시골 가서 자연에 파묻혀 살고 싶은 것이  큰 소원이다. 그러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텃밭도 가꾸고 들꽃도 돌아봐야하는데, 시골 아낙네들과 어울리려면 아침에 부지런을 떨어야하는데, 아침 군불을 때다가 말 안 드는 개가 있음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 가야하는데, 밤에 꽃을 피우는 인간이라 그게 좀 걸린다. 그 날을 위해 지금부터 고쳐야 하나 요즘 고민 중이다. 근데 오늘도 난 새벽까지 이러고 있다. 그때는 그때 가서 버릇을 고치든지…….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