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이십오 년 전에 본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강화도를 찾아들었던 2005년 마지막 날은 목에 두른 목도리처럼 따듯했다. 전등사로 먼저 발길을 디디며 이십오 년 전의 풍경을 더듬어 보았다. 모든 풍경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는데, 사찰 마당에 서 있던 느티나무만은 내 기억 속에 병들지 않고 남아 있었다.
느티나무는 가지를 뻗은 모습이 조화를 잘 이뤄 아름다웠다. 나무는 적당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45도의 기울기로 나무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나무 의자가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어서 그 곳에 앉아 사찰 풍경을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여체도 45도로 누워 있어야 제일 요염하고 섹시하다고 한다. 한팔은 머리를 바치고 한팔은 허리선으로 흘러내리고, 사타구니가 보일락 말락하게 다리를 꼬고 누워 있는 이런 모습은, 화가들의 그림 속에도 여러 번 접하고 영화 속에도 자주 등잔 시킨다. 나도 그렇게 누워 있어봐 봐? 근데, 그것도 젊고 몸매가 예뻐야 섹시하지 피부가 쳐지고, 살이 뒤룩뒤룩하면 섹시는커녕 이불로 온 몸을 가리든지 불 끄라고 난리를 치게 된다.
공을 던질 때도 45도 각도로 공을 던져야 멀리 날아간다고 한다. 45도 이하로 공을 던지면 땅에 금방 떨어져 멀리 가지 못하고, 그 이상 높이 던지면 하늘만 찌르다 만다. 공을 멀리 던지고 싶으면 45도 각도에 맞춰 힘 있게 던지면 제일 멀리 날아간다. 그런데, 살면서 공을 멀리 던질 일이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도 45도 각도이기 때문이란다. 적당한 각도인 산을 오르면 숨이 차서 산소가 많은 공기를 폐 깊숙이 들여 마시게 된다. 그럼 몸도 맑아지고 마음도 같이 비워진다. 더 이상 가파르면 사람 몸에 무리가 가고, 내려올 때는 무릎이 상하게 된다. 매주 마다 산에 오르는 일은 내겐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 휴식처가 된다. 산을 처음 오를 땐 숨이 차고 두 번 다시는 산에 오고 싶지 않다가도 한 시간쯤 산을 오르면 몸과 기분이 새털이 되어 부는 산바람과 함께 가볍게 춤을 춘다.
내가 가지고 싶은 욕심도 45도만 채워지면 만족해야 한다. 그러면 탈이 없다. 그게 사랑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물질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자식도 50% 이상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의 바램과 소유욕과 집착은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지금 내 삶은 45도 정도 채워졌다고 본다. 이 선에서 만족을 하고 나를 가만히 놔 두고 보니 나는 그리 불행하지 않고, 그래도 행복하다. 큰 딸아이는 일류대학을 가지 못했다. 그래도 방학 때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 용돈을 쓴다. 이번 겨울 방학 때도 일을 하고 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는 동생 교복을 사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훈훈해진다. 둘째 아들은 나를 닮아 내성적이고 말 수가 적은데, 그 대신 잔정이 많고 착하다. 같이 장을 보고, 비닐봉투를 들고 와서 냉장고에 넣으며 정리를 다 해 준다. 무거운 건 들지 못하게 하는 아들을 보면 든든하다.
전등사를 등 뒤로 두고 보문사로 찻길을 돌렸다. 가다가 빙어 낚시터를 구경했다. 빙어가 잡히는 모습에 우와~~ 잡혔다. 나도 덩달아 신나했다.
보문사로 들어가는 뱃길엔 사람들이 없었다. 2005년 마지막 날이라서 다들 해돋이를 보며 동해로 내달려 갔나보다. 보문사로 올라가는 길 가장자리로 음식점이 즐비했다. 갑자기 내 입속에 고구마튀김을 공짜로 넣어준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튀김을 넣어준 그 아줌마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강화도에 와서 꼭 먹고가라고 강조하는 벤뎅이 회 무침을 먹었다. 벤뎅이는 잡히자마자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죽어버린다. 해서……, 자기 성질대로 속 좁게 구는 사람을 비유해서 벤뎅이 속이라고 한다. 벤뎅이 무침보다는 잔 새우볶음이 고소하니 감칠맛이 낫다. 보문사로 올라서는 입구에서 군밤을 공짜로 두 알을 준다. 콩만한 밤이 맛이 좋았다. 내려오면서 두 봉지에 오천 원을 주고 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보문사의 가파른 계단은 눈썹바위까지 이어져 있다. 계단 높이가 45도 이상이라 숨이 꼴까닥 찬다. 확실히 조금 높아지면 몸이 거부를 한다. 눈썹바위엔 불상이 새겨져 있다. 발가벗지 않고 모자도 쓰고 옷도 입은 불상이다. 바깥에 평생 앉아 있어야 해서 옷을 입혔나보다. 코가 망부석처럼 크다. 나는 불자가 아니라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그냥 자연석에 정교하게 세긴 불상이 신기할 뿐이다. 촛불이 바람에 연실 흔들린다. 향을 피우는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불상위 바위틈에서 집을 짓고 사는 비둘기를 올려다 보았다. 비둘기는 우리를 보고 있다.
그 섬 수로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하늘위로 새들이 화살표를 그리며 날아간다. 해도 저물지 않고, 달도 뜨지 않는 정오를 지난 시간이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양이 아름답다. 저 들은 지금 어디로 무얼 하려고 가는걸까…….잠자러 가는 시간도 아니고, 때를 채울 시간도 아닌데……. 기울고 있는 마지막 날을 알고는 있는걸까…….자연 속에 누워 자연을 보면 살아가는 일이 자유롭고 간편해진다. 살아가는 일이 간단하다.
석모도를 나와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가에 차들이 바다를 보고 있다. 나도 같이 바다를 보았다. 바다위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2005년의 마지막 태양이다. 흐린 하늘이 붉게 붉게 번짐을 계속한다. 붉음이 사라질 때까지 자동차는 바다를 보았다.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한척의 고독한 배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오지 않는 2005년의 고독을 바다인지 하늘인지 모를 곳에 실어 버린다. 슬펐던 일이 뭐냐고 묻지 않았다. 기뻤던 일은 무엇인지 알기에 그것 또한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여기에 앉아 고독한 한 척의 배를, 아니 비행기를, 아니 비행기는 고독하지 않다. 그저 보고 있다.
새해에는 45도만큼 채워졌다고 믿는, 내 사람들과 내 가족과 내 일상이 덜 고독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