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창업박람회 65세 이상 관람객 단독 입장 제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52

은이라는 아이


BY 아미라 2005-12-24

우리 집안에 은이라는 아이가 있다

 

사촌오빠의 아이이며 나에게는 가장 나이든 조카이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같았던 것 같다

 

내가 은이와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것은

나는 내 오빠벌인 그아이의 부친과 서열이 같아서

그아이가 늘 어려워한 때문이기도 하고

나나 저나 그다지 곰살맞은 성격이 아니라서이기도 하다

 

은이와 나는 두어 번 만난 기억이 있을뿐이다

 

내가 사춘기일때 은이도 사춘기였고

내가 학업에 병을 앓을때 은이도 앓고 있었고

내가 섯부른 인생을 염려할 때 은이도 그랬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쾌활한 성격이었는 데

은이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은이이다.

 

어느날 은이는 대학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하필이면 큰오빠의, 그것도 큰아이였기에 온 집안이 뒤집혔다

남편보다 쟁쟁했던 은이의 엄마는 난리난리 그런 난리도 아니게

소란스러운 낙담을 했었다

 

은이의 아빠, 그러니까 나의 사촌큰오빠는 그래도 세상 이치를

알아보는 혜안을 가진 이라고 우리집안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나는 늘 오빠를 그렇게 여기고 자랐다. –

아이의 이유를 듣고자 했다

 

은이는 이유불문하고 대학진학 않을 것이며

두번다시 그 이유를 묻지 말라고 아직 그 이유도 채 몰라 어리둥절한

주위사람들에게 못을 박았다.

 

쾌활했고 외향적인 나는 오히려 부모님 말씀 좇아

온갖 싫은 분야 공부하다 지쳐 나가 떨어졌는 데

내성적이고 조용한 무지무지. 그앤 정말 옆에 있는 것 같지도

않게 행동하는 아이였다. – 은이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실행했고  

그날 이후 그 아이의 삶은 자유로를 달리듯 탄탄대로였다.

 

그아이는 누구도 상관하지 않게 되어버린 틈을 타서

은행에 취직했고

이십대를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았고

삼십대 초반까지 그렇게 싱글로 신나게 살다가

얼마전 결혼을 했다.

 

은이의 자유선언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심하게 요동쳤던 집안의 어수선함을 나는 기억한다.

 

마침내 오빠의 말씀 한마디,

- 은이는 상관하지 말란다.

 

은이의 결단은 일종의 쿠데타였다

은이는 성공했고 쿠데타의 댓가로 세상의 모든 십대들이

원하는 자유를 얻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고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아도 그럴 수 없었는 데

내가 할수 없는 일

나도 하고 싶은 일

그것을 얻어낸 그아이가 너무나 부러웠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말뜻을 이해하지만 누구나 다 실현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집안풍경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잃는다.

내가 조심하는 건 바로 이런 점이다.

 

내 아이들도 내 어딘가로부터 이러한 것을

배울것이고 닮을 것이고 스트레스받을 것이고

어쩌면 용기를 아주 가끔 낼지도 모른다

 

은이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늘 용감하고 자기 할일 다 하면서 가풍이고 뭐고

훌훌 던져버리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 것이다

 

그것은 은이를 떠올릴 때마다

젊은날 집안의 반골이라고 불리웠던 그 아이의 아버지.

역시 큰오빠의 아이. 라는 이미지를 지울 수 없는 것과

같다.

[카이로에서] 200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