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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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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 아이들 맞습니까?


BY hayoon1021 2005-12-01

 

요즘 들어 부쩍 애들이 예뻐 보인다.

꼭 헤어질 날 받아놓은 것처럼, 울컥울컥 애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애틋해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새삼스럽게 이런 기분이 드는지.

나는 아침마다 두 녀석을 어린이집까지 데려다 준다. 어린이집 차가 집 앞에 오긴 하지만, 그거 잠깐 타려고 5분, 10분 일찍 나가서 기다리기도 성가시고, 직장 다닐 때 늘 시간에 쫓겨 애들 닦달했던 게 미안해서 조금 느긋해지기로 한 거다. 아무리 놀아가며 걸어도 10분이면 간다. 엄마 없이 혼자 가는 애들도 있다. 그런 애들 보면 내가 너무 과보호하는 건가 싶다가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며 철길 때문에 절대 애들끼리만 보내지는 못 한다.

내가 도와줘서 준비가 일찍 끝난 작은놈이 먼저 쪼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금방 다시 들어와서는 비가 온다고 한다. 내다보니 눈이다. 작은놈은 제 우산 챙기자마자 얼른 다시 나간다. 나도 막 뒤따라 나서는데, 3층인지 4층인지에 사는 여자가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그 시간쯤 계단에서 가끔 만나는 여자다. 어쩌다 보니 서로 인사 한번 안 했다. 처음에 인사 안 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 그대로 굳어져 버린 거다.

그런데 작은놈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안녕 하세요\' 한다. 가만히 그 여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내가 뜨끔해진다. 그 여자도 뜻밖의 인사에 당황했는지 \'으응\' 하는 대답만 하고 후다닥 내려간다. 작은놈은 한술 더 떠서 \'아줌마는 왜 우산 안 가져가세요?\' 하고 물으며 졸졸 뒤따라간다. 여자는 벌써 저만치 가 버렸다. 

일곱 살인 큰놈은 누구한테 인사를 해야 하고 누구한테 인사를 안 해도 되는지 눈치로 꿰뚫고 있는데, 다섯 살 작은놈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다 반갑다. 길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특히 좋아한다. 작은놈의 그런 천진한 모습은 보석 같다. 녀석에 비하면 제 형은 이미 때가 묻었고, 나는 닳을 대로 닳은 돌멩이다.

첫눈이다. 12월 첫날에 첫눈이라, 기분이 좋다. 싸락눈인데도 제법 사람 발길이 안 닿은 데는 쌓이고 있다. 녀석들은 신이 났다. \'나는 눈이 좋아서 꿈에 눈이 오나 봐\' 란 노래를 합창한다. 큰놈이 나중에 집에 와서 눈싸움해도 되냐고 묻는다. 금세 녹아서 질척해질 광경을 훤히 계산할 줄 아는 나보다, 지금 이 순간에만 몰입할 줄 아는 아이들이 더 현명해 보인다.

보통 때는 찻길만 건너 주곤 돌아 섰는데, 오늘은 왠지 불안해서 어린이집 현관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산을 꽂아 주며, 옷과 가방의 눈을 털고 들어가라고 했다. 큰놈은 순순히 들어가는데, 작은놈은 그 자리에 서서 입을 아, 벌린 채 눈을 받아먹고 있다. 억지로 등을 떠다밀었다.

한데 오다가 돌아보니 두 녀석이 다시 어린이집 마당에 나와 서성이고 있다. 그냥 들어가기엔 아무래도 아쉬운가 보았다. 그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감기도 걱정이고 옷도 젖으면 안 되겠기에 어서 들어가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간 줄 알았던 엄마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놈들은 화들짝 놀라 안으로 뛰어 들어 간다.

은행잎이 한창 떨어져 쌓였을 때, 작은놈은 아침마다 두 손 가득 은행잎을 퍼 올려서 허공에다 뿌려 댔다. 그리곤 눈을 살며시 감고 흩날리는 은행잎을 온 몸으로 맞았다. 그때의 행복한 표정도 오늘과 꼭 같았다. 더러우니까 하지 말라고 해도 녀석은 은행잎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 짓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형제인데도 둘은 다른 점이 많다. 큰놈이 조심성 많고 차분하다면 작은놈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쪽이다. 길을 갈 때도 형은 엄마랑 손을 꼭 잡고 가는데, 놈은 천방지축이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다람쥐처럼 잽싸다. 그러다가 가끔 나를 향해 까르르 웃는다. 숨이 멎을 만큼 예쁜 웃음이다. 행동이며 말이며 몽땅 화석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스런 순간이 많다. 자식들은 평생 할 효도를 어릴 때 다 한다더니, 요즘 작은놈을 보면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요새 며칠 제 형보다 늦게 들어온다. 함께 차에서 내리는데도 따로 오는 것이다. 숨을 할딱이며 들어서는 작은놈을 붙잡고 이유를 물었더니, 옆 동에 사는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온단다. 계단이 위험해서 제가 집 앞까지 데려다줘야 된단다. 가소롭다. 다음부턴 너나 집으로 곧장 오라고 강조했지만, 녀석은 똑 부러지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

밥이나 간식을 먹으려고 상에 둘러앉으면 두 놈은 잔뜩 시끄러워진다. 엄마한테 서로 말을 많이 하려고 난리다. 공룡 얘기며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며 짱구 얘기까지 마구 튀어 나온다. 형에 비해 말이 느리고 어휘력이 부족한 작은놈은 어물어물 뒤처지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면 내가 큰놈 입을 다물게 하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작은놈은 말할 기분을 잃었다. 입을 쑥 내밀고 눈을 내리깐다. 그 삐친 모습조차 나는 깨물어 주고 싶다.

난 내 아이들이 내게 너무 과분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 같은 엄마를 만나기엔 너무 아까운 아이들인 것이다. 예전에 어디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한 철없는 여자가 아이를 낳은 뒤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백 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훌륭한 관상을 지닌 아이다. 결코 네가 잘나서 이런 아이를 낳은 게 아니다. 이 아이는 다만 네 배를 빌렸을 뿐이다\'. 우리 애들도 다만 내 배를 빌린 천사들이 아닐까 싶다.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면 애들 얼굴은 유난히 뽀얗고 빛이 난다. 눈이 부시다. 와락 애들을 껴안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하느님, 정말 이 아이들이 내 아이들 맞습니까?\' 눈물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