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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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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고사떡


BY 송서윤 2005-12-01

 

외출하고 들어와보니 식탁에 못보던 종이 봉투가 놓여있다

손으로 살짝 만져보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승원아 이거 뭐야?"

"응....옆집 아줌마가 먹으라고 주시던데...."

펼쳐보니 시루떡 세조각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다.

떡순이인 날 알아보시네...어쩌지....저녁을 두둑히 먹었는데....

밥은 밥이고 떡은 떡이다. 떡한쪽을 후딱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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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추수가 어느정도 다 끝나갈 무렵 집집마다 가을 고사떡을 하느라 분주하다

오늘은 개똥이네 굴뚝에서 떡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오늘은 바우네 굴뚝에서 떡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오늘은 이장님네...

가을떡을 하는날은 매일매일 잔치날이다.

 

 

 

일하는 아저씨는 마차를 대동하여 쌀가루를 방앗간에서 빻아오시고

엄마와 할머니는 팥을 삶아 놓으셨다.

대청마루에 커다란 시루 놓으시고

쌀한켜...팥 한켜...쌀속에 호박꼬지 머무려 한켜...

또 팥 한켜...무를 채썰어 쌀가루와 버무려 한켜....

떡시루가 꽉차면 한지로 뚜껑을 만들어 단단히 오므려 덥는다.

 

 

 

 

커다란 무쇠솥에선 물이 펄펄 끓고 그 위에 시루를 올려놓구

쌀가루반죽으로 김이 세어나가지 않게 찬찬하게 둘러가며 잘 봉한다.

장작이 이글거리면서 타오르고 그날 방구들는 몸살을 앓는다.

몸살을 앓고있는 방구들은 엄마와 할머니의 지친 허리를 지지는데 특효가 있었고

떡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있다

 

 

 

다익은 떡을 다시 대청마루에 올려놓구 할머니는 뭐라뭐라 손을 비벼가면서

고사를 지내신다..도통 무슨소리인지 알아듣질 못하겠다

아마도 신과 통하는 할머니만의 비밀스런 의사소통인가보다.

 

 

 

한지 뚜껑이 열려지면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김을 가르며 엄마는 커다란 식칼로

시루떡을 가른다.

"고시레......."

떡한쪽을 떼어네 마당에 던지면서 접시마다 떡을 담아서 장독대에

올려놓고 잠실에도 들여놓고...부엌에도 올려놓고 외양간앞에도 놓고...

곳곳마다 산재해있는 신들이 우리집을 잘 봐달라는 간청인가보다.

 

 

 

또다른 무쇠솥에선 시원한 맑은 장국이 끓고있다.

고기한점 넣지않은 무우국은 그야말로 일품중에 일품이다.

동네 어른들이  속속들이 우리집 안방과 건너방에 자리를 하시면

떡과 동치미,무우국,김장김치가 한상가득 차려진다.

 

 

 

아이들은 아직 그 상앞에 앉을 자격이 없다.

동네마다 떡을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얼기설기 밤이슬이 내려앉은 밤거리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나기 쉽상이다.

막내 남동생을 대동하여 밤거리에 나선다.

되도록이면 거리를 단축시키고 동선을 줄이려면 한꺼번에 3-4개를 겹쳐서 가면 되는데

방금 꺼내낸 떡은 어찌나 뜨겁던지...

웃도리를 길게 느려 접시를 잡아보지만 3-4개는 역부족이다.

 

 

 

집집마다  떡이 다 돌려졌다 싶으면 이제 우리들 차례다.

떡을 돌리고 돌아오면 어느새 손님들은 하나둘 가고

엄마는 따로 우리들 상을 조그맣게 차려주신다.

 

 

 

구들장을 뜨겁다고 몸살을 하고 우리들도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떡과 동치미 를 한점씩 떼어문다.

그 시절 군것질 거리 변변치 않던 시골에서 먹던 떡맛....

지금은 입맛이 고급스러워져서 옛맛이 설겁지만 그래도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가을 고사떡은 아직도 내 입속에서 추억과 함께 버무러져 

단맛을 더해가고있다.

 

 

 

할머니와 엄마는 그날밤 뜨거움에 앓고있는 구들장에 허리를 지지시고 고단한 하루의

옅은 신음을 하셨다.

 

 

 

글/송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