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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의 오진으로 에이즈 양성을 받는 남성의 사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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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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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BY 雪里 2005-12-01

 

눈을 뜨니 일곱시가 넘었다.

늦었다,여덟시면 출발 해야 하는데.

 

새벽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깻다가

포근한 이불속의 유혹을 못 뿌리치고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그새 단잠을 자버린 것이다.

 

초겨울  짧은 해를 늦잠으로 시작하면

하루가 반쯤으로 줄어 든것 같이 금방 해가 저물고 마는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마음 먹어 놓고도

이렇게 병원 예약까지 되어 있는 날,

또 늦잠을 자 버리다니......

 

삼분짜리 화장을 백밀러로 한번 들여다보니 한쪽 눈썹이 긴 것 같아서

검지로 문질러 줄이고는 운전대에 앉았다.

오늘도 기사는 나다.

 

정안천변의 안개를 두른 가로수들이 호위병 같다.

잎을 다 떨구고 서 있으니 그 모습이 더 당당해 보여서 그것도 좋다.

 

이곳의 가로수들은 몇년전부터 은행나무로 거의다 교체 되었는데

가을이면 그 노란빛이 너무나도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서

시내로 나가는 길이 다른 길도 있지만

잠깐 동안이나마 멋진 장면속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같아

나는 늘 이길을 택하곤 한다.

 

다행이도 러쉬아워에 걸리지 않아서 이십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병원안 커피자판기 앞에서 지갑을 열고 동전을 찾아 남편에게 건네니

의아하게 쳐다본다.

 

"자기가 뽑아요. 저번처럼  당황하지 말고 실습을 해봐요.

내탓이야, 너무 다 내가 해 줘서 그래, 자요,자~~~! "

 

머리를 가로 젓고 뒤로 물러나며 남편이 웃는다.

밀크커피를 뽑아 건넸다.

 

지난달 부부모임이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어나니 커피는 셀프란다.

저녁시간이라 나는 커피 생각이 없어서 미리 나오다 보니

남편이 커피뽑는곳 앞에서 멈칫 거리고 서 있다가  뒤에 서 있던

다른 부인이 건네주는 컵을 받아들고 나왔다.

 

"어느걸 눌러야 내가 원하는커피가 나올지 몰라서....."

여지껏 한번도 자판기 커피를 뽑아본 적이 없는 남편이다.

 

커피를 들고 서로 마주 보았지만 그냥 웃고 12번창구 앞 의자에 앉았다.

남편도 나도 긴장하고 있는 거 였다.

 

지난주 일년만에 검진을 했는데 또 혹이 자라 있었다.

그래서 떼어내어 조직검사를 의뢰했고 오늘 결과를 보러 간 것이다.

 

처음, 그때도 그랬다.

대장에 융종이 있어서 떼어내고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러 오는날 내내 긴장하고 있는 우리 내외에게 

챠드를 보시던 의사선생님이 머뭇거리시더니 무서운 소리를 하셨었다.

그리고 일년뒤 또 뇌하수체 수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결과가 좋아서

여섯달 동안 편했었는데 혹시 잘못 되나 싶은게 여간 긴장 되는 게 아니다.

 

두번째로 불려 들어가는 남편을 따라 나도 들어갔다.

남편옆 보조 의자에 앉아 설명을 들으며 의사의 얼굴을 보니

처음 그때의 표정과는 다른 것같다.

 

"선종입니다. 일년뒤에나 봅시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육개월 뒤 뇌 검사하러 오면 되겠네?"

"장은 일년뒤라니까  그뒤 육개월이구~~!"

 

병원을 나오면서 둘이는 둘다 아는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랬다.

목소리도 톤이 자꾸 높아졌다.

 

집에다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으시는 어머님도 너무나 좋아 하신다.

저녁에 만두를 할테니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고기가 들어가서 남편이 싫다고 한다.

될 수 있으면 채식만 할거라며 다짐을 하지만 글쎄다.

 

춥겠다던 예보완 달리 날씨가 포근하고 좋다.

늙어서 시끄럽던  경유차 소리도 갑자기 줄어 든것 같다.

신호등도 내가 도착할때마다 파란불로 바꿔주어서

시원하게 달리면서 집에 왔다.

 

오는길에 자주 만두를 사 먹던 그이가 오늘은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식후에 남편은 편안한 자세로 장기두는 화면에다 훈수를 둔다.

나도 오후가 통째로 비어 있으니 마음이 여유롭다.

 

모처럼 작업실에 난로불을 켰다.

한참만에  먹냄새를 피워 봤다.

 

겨울이 시작인데  나는 목련을 피우며

조급하게도 미리 봄을 그린다.

 

 

 

*11월의 마지막 날

그리고 병원도 금년엔 마지막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