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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소형 복도식 아파트는 승강기가 한 대 있다. 오래된 이 아파트는 모든 것이 낡아 문들어졌는데 승강기도 늙어서 얼마나 느려 터졌는지 내 속이 터질것같으다. 층수가 써있는 단추를 누르면 털컥 소리가 나고, 승강기 문도 체머리를 흔들며 닫히고, 열릴 때도 다리 불편한 노인네처럼 삐거덕거린다.
현관문들은 똑같이 생겨가지고 번호만 다르게 붙어 있는데, 사람들은 그 번호를 보고 자기네 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감각과 승강기에서 몇 번째가 우리 집이구나 입력이 돼 있어서 찾아 들어간다.
우린 승강기 내려 왼쪽으로 두 번째 집이다. 첫 번째 집은 우리 딸만한 아들이 살고 있어서 내 나이 또래쯤 됐겠고, 세 번째 집은 아침에 출근하는 나와 자주 맞닥뜨리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아이가 한명 있는 젊은이가 산다. 요놈의 아들이 나를 보면 웃고 인사를 한다. 나도 한번 웃어주고 유치원 가는구나 하고 만다. 나는 무뚝뚝한 편이고 잘 웃지 않는 편이고 쓸데없이 말을 붙이지 않아서 오해를 살 때가 더러 있지만, 원래 생김이 그러니 갑자기 고쳐 먹을 수도 없고, 나도 내가 싫을 때가 더러더러 있다.
이 곳으로 이사 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 아는 이웃도 없다. 일을 하다보니 이웃과 인사할 틈도 없고, 만나다보면 내 모습이 들어날것 같아서, 그렇다고 내 모습이 부끄럽거나 속이고 싶은 건 아니다. 암튼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 없다. 내 몫의 공간에서 아들아이와 조용히 놀고 있다.
아파트 나이는 십년이 훨씬 넘었지만 이사를 할 때 수리를 한 집을 샀기 때문에 안은 그런대로 깔끔하고 분위기가 좋다. 격자무늬 하얀 창과, 나무로 깐 베란다, 그것과 흡사한 장판과 벽지. 부엌 벽의 하얀 타일,씸플한 조명. 꼭 필요한 것만 새로 산 살림,단촐한 식구로 인해 살림살이가 간편한 편이다. 아들아이는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말이 없다. 나와 만나면 눈을 마주치며 웃고, 손 한번 서로 잡아주고, 학교에서 별일 없니..숙제는..문제지는..밥 먹자... 잘 자라..안녕히 주무세요, 그러면 끝이다. 그래도 우리 둘이는 친하고 다정하다. 같이 웃찾사를 보며 웃고, 작은 찻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잔다. 내가 살면서 요즘이 제일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하다.
베란다엔 늙수그레한 소여물통이 있고 그 위에 싸구려 화분이 몇 개 앉아서 햇볕과 놀고 있다.
친정엄마가 분갈이 해서 준 군자란엔 괭이밥이 언제부턴가 다정한척 살고 있고, 메발톱 화분 속엔 강아지풀이 메발톱을 이겨먹고, 지네들이 점령을 해 새끼치고 오글오글 강아지풀 집이 되어있다. 십년도 넘은 사랑 초는 꽃을 피워서 베란다가 꽃밭이다. 남향이라 아침부터 오후까지 햇살이 풍성하고 넉넉하다. 보잘 것 없는 화분도 햇살과 놀면 신이 나고 활기차다. 선물 받은 석부작의 난은 자꾸 노란 병이 들어서 말라가고 있다. 그걸 보고 있음 안타까운데 살려낼 방법을 모르겠다. 분무기로 물을 줘도 먹기 싫타하고, 햇볕과 마주보게 해 줘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나는 싼 화분은 잘 기르는 편인데, 비싼 건 비위 맞추기가 영 까다로운 게 아니다.
두 식구라서 편한대로 내 마음대로 산다. 딸아이는 어지르는 편이라서 치워도 언제 치웠는지 모르게 어질어질한데 딸은 기숙사로 독립을 해, 딸아이는 고등학교 때 대학생이 되면 무족건 독립한다고 하더니 말이 씨가 되어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래서 한두 달에 한번 오거나 방학 때만 온다. 아들아이는 깔끔한 편이라서 치워 놓은 대로 그대로이다. 도리어 자기 발에 먼지가 밟히면 청소기로 밀고 있다.
혼자라서 내 자고 싶은 대로 실컷 잔다. 아침에 아들아이 학교 보내고, 한낮까지 늘어지게 잘 때가 많다. 내 세상이다. 참말로 내 세상이다. 혼자 살아서 좋은 점? 실컷 잠자고 실컷 게으름 피운다는 것이다.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어 컴퓨터에서 엉덩이가 아프도록 논다.
또 하나 좋은 점, 늦게 돌아다녀도 잔소리 할 사람이 없다. 외박을 해도 싸울 사람이 없다. 바람을 피워도 의심할 사람이 없다.
근데 아들아이가 내가 늦으면 전화가 꼬박꼬박 온다. “도대체 어디세요?” 아니 엄마가 혼자 사는데 남자도 만날 수 있고, 여행도 갈수도 있지 도대체 어디냐고 묻기는……. 딸아이는 내가 늦에 들어가면 동생 혼자 놔두고 늦게 다닌다고 잔소리를 한다. “여자가 늦게 다니면 수상한디... 아들은 혼자 놔 두고서리...히히힛~~” 그러면서 딸아이는 같은 여자라고 같은 성인이라고 이해력은 높다. “남자 만나는 건 좋은데,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
나는 혼자되면서 스스로에게 약속한 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재혼을 하게 돼도 아이들은 내가 키운다. 친구들을 만나도 12시를 넘어서 들어오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외박을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술을 먹거나 도박을 하거나 빚을 지거나 남자를 따라 도망가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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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혼자살아 좋은점은...
사랑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사랑을 하면 불타게 정열적으로 하고 싶다,
그러면서 구속하지 않겠다. 편하게 오래도록 사랑을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