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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우리 착한 형부를 보신분 없나요?


BY 도영 2005-11-25

 

인천사는 형부가 가출했다는 서울 여동생의 전화였다.

"포항 언니 난데...인천 형부가 어젯밤에 언니랑 대판 싸우고 가출 했데."

"왜에??"

동생은 까르르 웃더니 형부가 장인어른 잇빨 안해준다고 가출 했다며

이건 완전히 거꾸로 벌어진 기 현상 이라며 깔깔 댔다.

그러치 않은가 .딸들은 보통 친정 에 뭐라도 못해줘서 안달하고

사위들은 그냥 의무적으로 할뿐 장인 이빨 안해준다고 가출하는 사위는

아마도 우리 형부 뿐일게다

 

내친정은 3남3녀다

딸 아들 순으로 골고루 배치를 받은 6형제중 우리 세자매는 딸이란 이유로

불이익을 받으며 항상 아들들에게 기죽어 살았다.

그 차별이 아들들이 결혼 하고 딸들이 결혼하자..차별을 넘어서 무시라고 말해도 될만큼

그 도가 결혼후에는 절정에 달했다.

당시 아버지는 딸은 출가외인이요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주들은 당신의 노후를 책임질 버팀목이라고 생각 하시고

단단하고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딸들과 사위들 외손주들은 철저히 밀어낸 아버지였다.

아버지 눈에는 아들과 며느리들은 다 잘났고

딸들과 사위들은 노골적으로 못난이 취급을 하셨다.

게다 형부는 하는일마다 잘 풀리지가 않아서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보니

그도가 더했는데..언젠가 인천 언니가 내게 한말이 생각 났다.

"우리애들 셋 어릴때 말야..쌀사먹기도 부담된 가난한 시절에 골목 하나 사이에 사는 민기네<남동생>집에 아버지가 쌀을 한가마 싣고 오셨는데 일분거리에 있는 못사는 나는 쌀 한댓박도 안주고 가시더라..게다가..며느리 밥하기 힘들다고 식사는 우리집와서 하시고 가시는데..너무 섧드라."

이거뿐이랴..열거 할래면 하도 많아서 기운 빠져 이만 생략을 해야겠다.

 

부모의 지원을 받아 아들로 태어난거에 특권의식을 갖고 자랐던

아들들 역시도 덩달아 사위들과 딸들을 무시하면서 특히 장남인 오빠는

기본적인 자식된 도리도 하지 않았었다.

아버이날 한번 다녀 갔다는말 들은적 없는데 아버지는 그래도 한결같은 믿음으로

아들들을 대하셨다. 친정 아버지는

딸들이 주는 용돈은 아까운줄 모르시며 당연하듯 받는 양반이

아들이 어쩌다..기만원 내놓으면 출발 하는 자동차 안으로 던져주고

뛰다시피 대문을 닫는 아버지였다.

 

그후..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가만 놔 두었으면 지금쯤 십억도 넘을

논이며 밭을 팔어 아들들을 특히 큰아들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다

그런 세아들들중 막내만 제외하고

부모의 도움으로 살다보니 두아들들이 자생력이 없어져서인지.

부도들을 맞는 위기가 닥쳐왔다.

사업이 잘되어 떵떵거리며 잘살때도 모른척 하던 아버지를

현재는 사는게 빡빡 하다는 이유로

일년에 한번도 올까말까 하다보니 딸들이 아버지를 외면 할수가 없었다.

그중 인천 언니가 맏딸이라고 두루두루 친정에 신경쓰는것을 보고

역시 맏이는 타고나야혀..그랬었다.

언니는 자신이 가난하고 힘들적에 나몰라한 남동생 들에게

이것저것 사다가 날라주고 집고쳐주기 등등 많은 도움을 주고

나나 막내 여동생 역시도 크게 작게 아버지 눈에 잘난 아들들을 도와주며

가슴아파 하건만.착한 사위들이 오바되는 행동에 승질이 슬슬 날때도 있었다.

그중 가장 오바하는 사위가 형부인데

홀로사시는 친정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렇게 이뻐했던 올케가 가버리고

어린두아들을 키우는 둘째 남동생의 김장을 하러 형부랑 친정에를 갔었단다.

형부는  얼마전 처갓집 보일러를 교체 해주고 집안곳곳  손보랴.바빳고

언니는 혼자서 그많은 김장을 하다보니

아버지가 김징 김치에 편육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는데.

시간이 없어 못해드렸더니 형부가 날리가 났다했다.

노인네 편육 하나 못해드리냐고 인천가는 차안에서 오지게 당했다했다

그런데다가 아버지가 이가 시원찮어 제대로 음식을 씹지를 못하자.

장인어른 이를 해드리자고 형부가 그랬다보다.

그일로 언니는 지나치게 오바 하지 말라고 말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였다

언니말이 나는 일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집앞에 점포세를 받아서 생활하시는데

넉넉지는 않지만은 당신 생활비와 용돈은 충분하시다

언니는 수십년 고생끝에 이제야 형편이 피는 중이라 부담이 되는것도 있지만

아버지가 아직도 아들들 짝사랑에 못깨어나 밉기도 하였나보다.

얼마전 지금 아버지가 사시는 집과 점포를 팔아 아들들에게 다내어주고

단칸방에 사실거라는는 기가찬 정보가 입수가 되었다.

그정보를 여동생 시아버지에게 듣고 막내딸인 서울 여동생이 달려가

집파는것을 막고 집만은 지니고 계시라고 말렸나보다.

"아버지..아버지가 아들들한테 부모 로서 최선을 다했어요..아버지가 생각할때 오빠들 밥굶는거 같지만 그래도 애들 메이커 입히고 좋다는것은 다하고 살아요.집만은 돌아가실때까지 지니고 계셔요"설득을 했단다.

나역시도  집판다는 소리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집과 점포를 까지 다내어주고나면 생활비다 병원비다.

다들 세딸이 해야하는데..나역시도 작은 공무원 월급에 수십년째

시부모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인데.아고.내팔자야..그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언니는 아버지 이는 못해드린다 그래 이뻐한 아들들은 뭐하냐.. 

아들들 아니더라도 아버지 돈있다.  맞서고 형부는

"당신같은 악질 딸은 없을끼다 .자식이 여섯이면 모하냐..부모 이하나 못해주면서.."하며 게거품 물고 가출을 해버리고.

내 실랑은 형부의 가출소식을 내게 전해듣고  카드를 빼서라도 당장 돈부치라며

덩달아 나서는 것을 보고 돌아서면 그만인  뒤끝 없는 성격을 지닌 

착한 두 사위들이 존경시려웠다

형부가 가출을 하고 세딸이 쑥떡쑥떡 입을 모았다.

비록 구박 받고 자랐지만 착한 사위들에 행동에 감명?을 받고

육남매가 돈을 걷자..결론을 내리고 이번에만은 아들들에게도 책임을 지우자.

그래서 십시일반 돈을 걷기로 했다.

세딸중 아직도 아버지에대한 반감이 덜풀린 나는

"그렇게 아들아들 하시드만..이게 뭐냐구.."퉁퉁거리자

여동생은 목소리를 갑자기  재벌가 여인네들의  우아한 말투로 변신하더니

"언니..구박 받은 세딸이 뒤늦게 잘 풀리잖어..그리고 돌아가신 엄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세딸들 밀어줄거여..그러니 잘혀...토달지말구.."

동생의 말에 신이나서 내가 그랬다.

"마져..엄마가 언젠가는 꿈에 나타나서 롯또 번호를 찍어줄 날이 있겠지 .혹아냐 아버지 이해드리고 나면 조만간 꿈에 나타사셔서 도영아..1.3.6.7.9. 찍어라 그러실지.. 헤~~계좌번호 대바 ~우힛`~"

혹 ...어젯밤에 가출한 우리 착한 형부 보신분 없나요?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