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고 있는데, 큰애가 다가왔다.
\"엄마, 혀가 이빨 사이로 막 들어가요.\"
입 안을 들여다보니 아랫니 두 개가 흔들린다. 녀석은 원래 이가 듬성듬성 나서 이와 이 사이에 틈이 있었는데, 그 이가 흔들리니 혀가 쑥쑥 들어가는 것도 맞는 말이었다.
\"너, 이 빠질 때가 됐구나.\"
난 별 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일곱 살이니 슬슬 이가 빠질 때도 되었다. 한데 난 까맣게 그런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한테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이제 아기 때 이가 다 빠지고 튼튼한 어른 이가 날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큰애는 이가 다 빠진다는 말에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소리가 이상했다. 웃음이 울음으로 변한 것이었다. 아이는 이가 다 빠지면 말도 이상하게 하고 밥도 잘 못 먹을 일이 걱정이라고 했다. 이는 한꺼번에 다 빠지는 게 아니고 하나 빠지면 하나가 바로 생긴다고 했는데도 그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좋겠어요, 이가 다 새로 나서.\"
\"좋긴 이놈아, 엄마는 빠질 일만 남았다.\"
\"그럼 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그렇겠지, 좀 시간이 지나면.\"
\"그럼 나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만 많겠네요?\"
\"아니지, 그때쯤이면 네가 아이를 낳고 네 동생도 아이를 낳을 거야. 그렇게 이 세상은 항상 아이와 어른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있는 거야.\"
나는, 어쩌다 이런 주제로 들어 왔지, 하고 후회했다. 복잡한 인생사를 일곱 살 아이한테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아이들은 어떤 어려운 말도 다 이해할 수 있단다. 부모가 알아들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설명한다면 말이다. 나는 믿음이 없었다!
큰애의 울음은 그치는가 싶다가도 계속 이어졌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 울고 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낯선 변화들이 아이는 많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눈물을 닦아주며 겁낼 것 없다고 달랬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과연, 질긴 놈이었다. 그래서 실컷 울게 내버려 두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저녁상을 차리면서 큰애한테 달걀 프라이를 해 보라고 맡겼다. 큰애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라면 봉지에 적혀있는 조리법 같은 걸 읽고 그대로 하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는 귀찮고 위험해서 싱크대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했지만, 이제 이가 빠질 만큼 컸으니까 거기 맞는 대접을 해 주는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의자를 갖다 놓고 올라가, 큰애는 서툴지만 프라이를 만들어 냈다. 설거지는 여덟 살이 되면 시켜 주기로 약속한 지 오래 됐다. 제 운동화 빠는 거나 화장실 청소 같은 것도 하고 싶어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자기 일은 자기가 하게끔 잘 키운 것 같기도 하고, 애늙은이를 만든 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남편은 아직 안 들어 왔고 작은애는 잠이 들어, 나와 큰애만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았다. 마침 반찬이 배추쌈이었다. 아이는 이 걱정으로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 아이 앞에서 나는 배추쌈을 신나게 먹었다. 미안하게도 오늘따라 더 꿀맛이었다.
아이는 이 때문에 불거진 호기심들을 다 알아 내겠다는 듯 쉬지 않고 질문을 해 댔다. 난 건성으로 대답해 주다가, 결국 밥 먹는 데 방해하지 말라고 소리를 꽥 질러 버렸다. 섭섭해도 할 수 없다. 이가 빠지는 것도, 상냥한 엄마를 만나지 못 한 것도,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혼란까지도, 어쨌든 다 제 몫인 거다. 나는 젖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만큼 자랐구나. 아들아, 이제 시작이란다. 천천히 나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