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전화가 왔어요.
퇴근하여 옷을 갈아 입는 나에게 아내가 던진 말이다.
무슨 일로?
고구마 가져가래요.
애들 뒷치닥거리 때문에 갈 시간이 없는데...
그냥 부쳐주시면 안되나?
당신은 주말에 이틀 내리 약속이 있다고 했지 않아요?
그랬지...
다음 주에 간다고 말씀드려.
전에는 온 가족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시골 집에 들러
어머니를 뵙곤 했었다.
여름 휴가도 예외없이 고향집에서 보냈다.
집 식구들이 매년 치르는 고향집 휴가에 넌더리를 낼 때면
이따금 주변 대둔산이나 속리산 등에서 1박을 하고
고향 집으로 가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나 혼자만이 고향 집을 찾곤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놈의 교육이 무엇인지
아내는 늘 애들 뒷바라지 때문에
그리고 애들은 철천지 원수같은 학원 수강 때문에
이곳 서울 집 근처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충북 옥천의 어느 자그마한 산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들녘을 지켜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도회지로 떠나가고
이제는 칠십을 훨씬 넘긴 백발 노인네들 몇몇만 남아
꾸부정한 허리로 먼산을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이 넘들 이제나 오려나? 저제나 오려나?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어귀를 서성거리시며 어디 손주 녀석들이 안 오나
목을 쭈욱 빼고 보시다가
식구들이 나타나면 좋아라 말이 많아지시던 어머니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으로
옥수수를 한아름 따다가 삶아 주시던 모습...
행사가 끝나고 아들 딸 손주 녀석들이
썰물처럼 일시에 빠져 나갈 때면 허전함에 눈물을 글썽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차 트렁크에 들어 갈 틈이 없다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검은 비닐 봉지에 뭔가를 둘둘 말아 넣어 주시던 어머니
얼마 되지는 않지만
어디 가실 때 노자라도 보태 쓰시라며 돈 몇푼을 쥐어 드리면
에그 너희들도 어려울텐데 무슨 돈을...
그러시면서도 슬그머니 받아 넣어 두시던 그 모습
결국은 부메랑에 실어 손주들에게 돌려 주실 것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안드리는 것보다 드리는 것이 맘이 편하다 함은
뭔가 진 빛을 갚았다는 핑계는 아닐런지...
고구마 캐 놨다. 와서 가져 가거라.
물론 자식 놈들, 손주 놈들 생각해서 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 소리가 내 귀에 외롭다는 절규로 들리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고구마 한자루
기름 값에, 톨비에, 오는데 가는데 허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시장에 가서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그리고 배달원 불러 부쳐 주실 수도 있다.
이번 주말에는 공적인 모임이 있어
고향엘 들를 수가 없다.
그러나 다음 주말에는 시간이 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고향 집엘 다녀 와야 겠다.
아내가 시간이 되면 둘이 갈거고
아니면 나 혼자라도 간다.
이젠 혼자 가는 것도 그리 낯설지가 않다.
이거 이러다간
물리적인 기러기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은 되지만
마지막 남은 보수 세대, 흔히 말하는
마흔 놈의 세대 아니면 쉰세대인
내가 조금은 더 인간적인 것 같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