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니가 18개월 아이에게 생굴을 먹여 장염에 걸리게 한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42

내게 10월은


BY hayoon1021 2005-10-31

 

생각해 보면 10월은 내게 참 각별한 달이다.

어제는 작은놈 생일이었다. 10월 30일. 며칠 전엔 큰놈 생일이었다. 10월 21일. 애들 기억하기 편하게 양력 생일을 지내 주었다. 2년 터울로 같은 달에 태어난 두 놈은 음력으로 따지면 딱 하루 차이다. 둘 다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병원 신세를 일주일씩 져야 했다. 그래서 애 낳으러 갈 때는 파랬던 은행잎이 퇴원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노랗게 물들어 있곤 했다. 아이를 안고 그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걷노라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10년 전 가을에는 옷가방 두 개만 우선 들고 서울 가는 기차를 탔었다.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겁도 없이 화실 견습생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날이 10월 28일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떠나기 전날까지 10월 한 달을 거의 자취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나는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부모, 형제, 친구들, 그 누구도 내 편이 돼 주지 않았다. 서울 올라가는 그 즉시 내 인생은 끝장날 것처럼 그들은 하나같이 겁을 줬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각하게,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것이고, 그 책임도 몽땅 스스로가 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 두려움은 너무나 선명하고 강했다. 가끔 화장실 가려고 방 밖으로 나왔을 때 맞닥뜨린 10월의 가을하늘은 어찌나 맑고 시리던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도 했다.

2년간의 화실생활은 한 마디로 행복했다. 한 달에 30만원씩 받으며, 화실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은 다 맡아서 하면서도 후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몸은 고달팠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충만하고 빛나던 시절이었다. 다른 계산 하나도 안 하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몽땅 던져 봤다는 자부심만으로도 대가는 충분했다. 만화로 성공하고 안 하고는 문제가 안 되었다.

서서히 만화계의 불황이 찾아왔다. 그나마 잘 나가는 편이었던 우리 선생님도 결국 화실을 정리해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려 나가고 화실이 해체되던 그날이 10월 10일이었다. 그 무렵, 친했던 화실 친구가 이혼하게 되면서 그 친구네 이삿짐을 날라주러 갔는데, 거기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그날이 10월 17일이었다. 

나는 사춘기 때 잠깐 가을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걸 빼면, 쭉 가을을 싫어했다. 가을은 괜히 멀쩡한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놓아서 싫었다.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사람한테 감정 놀음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내게 가을은 낭만도 뭣도 아니었다. 가을 다음은 추운 겨울이니 얼어 죽기 싫거든 얼른얼른 대비하라는 신호등쯤으로만 보였다. 부모님의 김장걱정, 연탄걱정이 마치 내 일인 양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결혼하고 나서는 좀 달라졌다. 그 전의 내 모습이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도시의 은행잎과 같았다면, 결혼 후의 나는 자신의 뿌리에 그대로 쌓여서 다시 거름이 되는 숲속의 밤나무 잎으로 변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내 둥지를 틀었다는 안정감은 계절을 바라보는 눈까지 변하게 한 것이다.

우리 가족 건강한 것 말고는 아무런 욕심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가을은 참 아름답다. 해 지고 찬바람 불어도 돌아갈 따뜻한 내 집이 있으니 뭐가 걱정인가? 이번 가을은 오빠네 문제로 좀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가을은 아름답다. 그 10월이 이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