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낙엽이 어느새 거리곳곳 흩어지고 있었다.
참 오랜만의 외출, 그간 4년동안 아픔의 몸살을 앓은뒤 본 세상은 확연히 달라진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아이둘을 방안에 묶어두었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집안에서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하고 힘들어 했다.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둘씩 주어 모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이 떨어져 버린 자리에 다시 겨울눈이 쌓이고 봄이 왔다.
계절은 절망적인 순간에도 다시 희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잃어버린것만 같은 허전함을 다시 채우듯 가을 낙엽들이 풍성하게 뜨락위에 나뒹굴었다.
이번 가을은 허전함을 생각지 않으려했다.
지난 시간들 내가 아팠던 시간들은 분명 이유가 있었고 살아있다는 절규였고 살아있기에 느끼는 아픔이었다고 스스로를 믿기로 했다.
다시 그렇게 쓸쓸하게 가을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지난 가을 난 밤새 눈물로 지새웠지만 이번 가을엔 입가에 웃음꽃을 달기로 했다.
마음이 변하는 순간 내게 고통처럼 일렁이던 가을이 봄처럼 향기롭게 너울지며 붉은빛 눈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4년만의 외출, 그 긴시간동안 난 아파서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단 아픈이유로 절망했기에 삶의 한쪽을 바라보지 못했다.
다시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픈 시간들을 흘려보내는동안 아이는 어느새 건강하게 자라서 두 살과 네 살박이 다큰 아이들이 되었다.
아픈 시간동안 내곁을 지켜준 남편과 나의 가족들이 고마웠다.
오랜만의 외출이 오히려 어색한 느낌으로 처음을 마주했다.
해맑은 아이들과 가족단위의 많은 사람들이 가을산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관악산에 모여들었다.
가을산의 빛깔과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단감처럼 향기롭고 은은한 향취가 내 코끝을 휘감고 돌면서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따스한 옷차림으로 가을산을 올랐다.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단풍의 빛깔 만큼이나 총천연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과 미소가 산길위에 나뒹굴었다.
그동안 난 세상이란곳과 단절된 생활을 했다.
아니 애써 내 자신이 세상을 밀어내버린 것이다.
아픈이유로 절망했고 희망을 잃어버린 새처럼 스스로의 구속에 가두워져서 멀리 날려고도 날 방향을 찿지도 않았다.
그런시간들이 얼마나 아깝고 애처로운 시간이었는지 가을 관악산의 모습을 통해서 알수있었다.
힘에 겨워 정상을 밟을수는 없었지만 관악산 중턱에 넓게 자리를 깔고 가을산의 정취를 벗삼아 함께온 일행과 김밥과 간식을 나누워 먹으며 행복을 함께 곁들였다.
행복이란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가을산을 오르며 정말 느낄수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희망을 뺏어간 것이 아닌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놓고 방황과 절망으로 흘려버린 시간들, 그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인지 알게했다.
몸은 천근처럼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을 하늘을 나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그늘을 털어놓고 하산하는 가을산의 모습은 내 삶의 의미와 삶의 방식을 한번쯤 다시 돌아보게 했다.
아이둘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본다.
아장 아장 작고 앙증맞은 발을 옮겨놓으며 “엄마”하고 부르며 내 뒤에 앉기는 아가.
그리고 내 곁에서 나의 행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이가을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살아야 겠다.
다시 내가 나로 태어난다면 몸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건강한 마음으로 자신의 위치를 사랑하면서 작은것에 감사하는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작은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안에서 지금의 모습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나고 싶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