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한테 공격을 받고 병원을 드나들며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어머님의 고양이 사랑은 여전하셨다.
내가 있는 앞에서도 그 놈을 미워한 나에게 시위라도 하는 듯 그놈에게 멸치대가리랑 말린 북어 뼈를 입에까지 넣어 주는 친절을 베푸는가 하면 나보고 고양이 미워하지 마라는 씨알도 안 맥히는 주문까지 하셨지만 난 냉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호랑이 같은 시엄니지만 맘에도 없는 '네'라는 거짓말은 내키지 않았다.
이 고양이란 놈이 영물이 분명한 건 나를 빤히 쳐다보던 전(前)과는 달리 내 눈길을 슬슬 피하기도 했지만 멀찍이서 쳐다볼 뿐 적의는 품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왠지 눈빛이 약간은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낀 건 착각인지는 몰라도 지은 죄를 반성 하는지 아니면 또 다시 곳간으로 덜미 잡혀서 끌려들어 갈까봐 몸조심을 하는 건지 내 곁에 가까이 오지 않는 건 확실했다.
되도록이면 그놈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피차에 이로울 것 같아서 더 이상 미워하지도 이뻐 하지도 않고 끼니때가 되면 멸치 동가리에다가 밥 한 숟가락 얹어서 그 놈 앞에 밀어 주는 걸로 내 할일은 끝나는 거였다.
사건이 생긴 건 시어머님이 하룻밤 출타를 하신 날 터져 버렸다.
고양이가 새끼를 무려 여덟 마리나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시어머님이 시누이집에 가신다고 집이 비었으니 와서 자라고 하셨다. - 우린 분가해서 살고 있었다.
마침 그때 회식이 있어서 늦어진다는 남편의 연락을 받고 아이들과 잠을 자려고 하는데 이 고양이 가족들이 번갈아 가면서 우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짜증이 났지만 시어머님이 애정을 가지고 라면 박스에다가 낡은 담요까지 깔아주며 고양이 산바라지(?)를 한 마당에 시끄럽다고 갖다 버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왔다가 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고양이가 몸을 푼 곳간으로 달려가더니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고 기죽어서 조용할 고양이들이 아니었다.
산후에 신경이 예민해진 어미 고양이가 기를 쓰고 남편에게 방어 내지는 공격자세를 취했다.
고양이란 놈이 하는 짓이 눈에 거슬린 남편은 새끼들을 몽땅 정부미 포대에 넣고 둘둘 말더니 대문 밖으로 들고 나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내가 만류를 했지만 술 취한 남편은 듣지 않고 집에서 좀 떨어진 개울에다가 갖다 놓았다고 하면서 주둥이를 약간 열어 놓았으니 질식해서 죽지는 않을거라고 했다.
어미고양이의 시퍼렇게 살기 띤 눈초리가 자꾸만 맘에 걸려서 두렵고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죄없는 새끼들을 갖다 버렸으니 우리 아이들한테도 해고지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다급해 져서 날 새기만 기다렸다.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 개울로 쫓아갔더니 정부미 포대에 들어있어야 할 새끼들이 간곳이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침 초겨울이라서 개울과 주변에 있는 풀섶이 말라 있어서 쉬이 눈에 뜨일 법도 했지만 아무리 주위를 헤집고 찾아봐도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 어린 새끼들이 밤중에 어디로 사라진 걸까.
포대는 주둥이가 묶인 채로 있었는데 포대 중간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미가 구출해서 어디론가 데리고 사라 진 게 분명했다.
찜찜한 맘 털지 못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다가 입에 새끼를 문 채 나를 노려보고 길에 서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반가운 맘보다 놀란 가슴으로 심장이 멎는 것 같아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에 대한 적개심을 다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으니 고양이 성깔에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으로 공격받고 겨우 아물어 붙은 손등을 쳐다보았다.
전생에 나하고 무슨 인연이 있어서 사사건건 얽혀 드는지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이놈한테 잘못 했다고 빌어야 할지 아니면 고기뼈다귀로 유인을 해야 할지 좌우간 백배사죄의 제스쳐는 취해야 지은 죄를 면제 받을 것 같아서 얼떨결에 내 곁에 오라는 손짓을 했으나 그놈은 나를 슬쩍 쳐다볼 뿐 내 앞을 그냥 지나쳐서 여전히 우리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놈 뒤를 쭐래쭐래 따라가 보니 짚을 쌓아놓은 뒷곁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새끼 일곱 마리가 한 마리도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어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 고맙고 다행스러워서 새끼들을 보는 순간 콧등이 시려왔고 울컥 치미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말 못하는 짐승의 그 눈물겨운 모성애에 난 할말을 잃었다.
어미는 밤새도록 새끼를 한 마리씩 입에 물고 이 짚단 위에 데려다 놓은 것이다.
이 죄를 어이할꺼나....이 고약한 심사를 어이 할꺼나.....
전날 먹던 소고기 미역국이 생각나서 부리나케 부엌으로 내 닫는 내 발걸음이 깃털 같이 느껴졌다.
미안하다..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무사히 살아줘서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