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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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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이야기(옷이 날개)


BY 개망초꽃 2005-10-06

추석 무렵...지점장님이 나를 보더니 그런다.

“이종미씨? 백화점 부점장님이 그러시는데 고급스런 서점에서 종미씨는 고급스럽지 않다고 하는데..옷을 사 입던지 하세요. 안 그러면 백화점으로 출근하지 말라고 합니다.”

“네에? 제 외모가 어때서요? 못생겼나 내가...옷은 사 입을게요. 근데 외모를 탓하는 건 잘못된 거지요. 그건 진짜 잘못 말하셧네요.”

“암튼, 알아서 옷을 사 입으세요.”

나의 고급스럽지 못하다는 외모를 탓하며 백화점 부점장님의 말을 전한 분은 여자면서 지점장이시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경기도에 있는 서점 총대리점 그야말로 윗대가리신 분이다.

한마디로 그 윗대가리는 턱이 주걱턱이고 피부도 좋지 않은 그냥 그렇게 생긴 분이신데

내 외모를 탓하다니...그날 일이 손에 잡히기는 커녕 한참씩 침울했다. 


서점에 출근하진 이주일쯤 돼서 회식자리가 있었다.

화정점 주엽점 뉴코아백화점 이렇게 세 곳에서 총 여섯 명의 직원과

지사장님이라는 분과 첫 대면을 했다.

고만고만한 도토리 비스무리한 외모의 아줌마 여섯이 모여 수다를 떠는데...

서로 예쁘다고 칭찬들을 하는거였다.

난 먹고 있던 맥주가  넘어가지 않아서 한모금씩 짤라 마셨다.

어느 누가 봐도 외모는 그리 뛰어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 평등하게 보통 아줌마처럼 생겼는데..서로서로 예쁘다고 난리들이었다.

신입이라고 나를 가운데쯤 놓고 나한테는 한마디 칭찬도 하지 않고 지들끼리 미인을 만들고 멋쟁이로 만들고 예쁜이로 만들어가며 술잔을 부딪치고 좋아서 흐흐덕거렸다.

그래 서로 예쁘게 봐주면 좋지 나는 양쪽귀로 들으며 실속 없이 웃어버렸다.

어느 정도 술에 취하더니 이차를 선택하라고 했다.

노래방 손드세요? 나만 번쩍 들었다.

나이트? 나만 빼고 다 들었다.

춤에 "ㅊ"자도 모르는 난 그 자리에 일어나 저 먼저 집에 갈래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말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난 신입이지 않은가..그것도 몇 시간 아르바이트’

할 수 없이 중년나이트로 끌려 들어갔다.

귓구멍이 먹먹한 음악소리하며, 눈알이 돌아갈 것 같은 현란한 조명하며

음침하고 음습한 기운하며...

난 나이트 같은 분위기를 질색한다.

타고난 것이 우리 엄마를 닮아 비위가 약하고 시끄러운 건 지레 겁을 먹는,

내가 나를 고치려해도 고쳐지질 않는 고리타분한 뇌속을 후벼파 낼  도리가 없다.

의례 찾아 들어오는 맥주를 테이블에 세우고 안주를 두 접시 앉히고

본격적인 나이트에 와서 몸 뒤흔들기 내지는 뒤틀기를 해야 했다.

춤을 못 춰서 자리 지킬 테니까 가서들 즐겁게 노세요. 했더니 막구가나들이다.

아니 아깐 지네들끼리 예쁘다고 할 땐 나는 빌려온 바가지처럼 내버려두더니

춤출 때는 왜 나를 낑겨줄려고 하는 건지..

당춰... 이 아줌마들의 안과 겉의 성격들을  모르겠고 환장하겠다.

무대로 끌려 나갔다.

춤이라? 크하하하~~

내가 왕년에 춤추는 곳이라면 신경질을 내며 도망을 쳤던

왕왕왕 왕고집쟁이라는 걸 다들 모르나보다.

부르스? 아고...푸하하하

몇년전 어떤 모임에 어떤 건장한 남자가 부르스 당기자고 할 때 바닥에 앉아 버텼다는 이유로 건장한 남자가 나한테 아주 심한 말을 해서 나도 같이 심하게 대들었다는 걸 모르나보다.

그려~~ 내 식대로 춤을 추자고...

조명아래 손뼉이나 치고 있음 되는 거지...

왠 여자아줌마들과 남자아저씨들이 그리 많은지...자유롭고 정열적인 곳이군...

한참 우리들끼리 빙 둘러서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춤을 추고 있는데

세 명의 남자들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들어오던지 말든지... 난 손뼉만 쳐줬다. 아~~하!! 잘들 추는군...

직원 두어명은 남자들과 배를 맞대고 야리꾸리하게 맞장구를 쳐 줬다.

현란한 음악이 끝나고 끈적끈적한 음악이 거미줄처럼 들러붙었다.

한 남자는 나를 붙잡고 지랄이다.

한 남자는 서점 직원 중에서 제일 젊은 처녀 직원을 붙잡았다.

나머지 직원들은 남자들이 붙잡지 않아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제자리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낯선 남자를 밀쳐내고 자리로 들어왔는데

남자들에게 잡히지 못한 직원들이 심통한 볼따구니를 해가지고 나를 외면했다.

내가 뭔 잘못을 했나...? 잡히지 못한 지네들 외모 탓을 해야는 거 아닌가...


 

백화점 부지점장님은 내가 알기론 나보고 정장 옷을 입으라고 했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서점에서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어야하는데

나는 오래전에 입던 하얀 티에 누가 거져 준 껌정 치마를 입고 다녔었다.

몇 번 백화점 직원이 나보고 날씬해서 정장 입으면 예쁠텐데 그랬지만

내가 한달 월급이 얼마고, 아직은 고객 없는 시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깨끗하게만 입고 다니면 되지 꼭 비싼 정장을 사 입어야하나 했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옷을 입으라는 말이 와전된 여자들 입방아에 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다음날로 메이커 정장 세일하는 곳으로 달려가 팔만오천원을 주고 정장을 구입했다.

거기에 맞춰 사만구천원짜리 가죽 구두도 샀다. 합이 십삼만팔천원이다.

내 한 달 월급이 얼만 고하니...이거원...이렇게 비경제적일 수가 없고, 굶어 나자빠질 판이다.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이나 하는 윗대가리들...

인간들의 외모 지상주의자들...

여자들이 자기보다 예쁜 여자에 대한 날카로운 질투들...


엄마와 올케한테 일러바쳤다.

"내가 외모가 떨어진데...고급스럽지 못하데..."

우리 엄마가 기가 막히신지 "그러기에 옷 좀 사 입으라고 했잖아. 지독하게 굴더니..."

우리 올케가 하는 말이

"직원들이 그렇게 예뻐요? 형님보다 예쁘면 젊었을 때 미스코리아 였나보네요" 한다.

우리 엄마가 급하게 막내이모한테 전화를 걸었나보다

이모가 전화를 걸자마자 냅다 소리를 질렀다.

“기집애야!!옷 좀 사 입어라. 예쁘면 뭘 하냐 옷이 날갠데.”

“한 벌 사 입었어...이모...”

“한 벌로 되냐 두어 벌 더 사 입어라.”

“월급올라가면...헤헤헤”


충격적인 말을 전한 윗대가리가 며칠 전에 날 보더니 아주 상냥한 말투로

“예뻐졌다고 그러던데 정말 예뻐졌네요.” 한다.

난 아주 바르고 정직하게 말했다.

“외모는 그대로랍니다. 옷이 날개지요.”


서점에서 일을 한지 두 달이 넘어간다.

후끈하게 찌던 여름날은 떠나가고, 가을이 날아와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서점으로 출근하며 입던 빈티 나는 옷은 재활용 옷 통에 집어 쳐 넣었다.

그리고, 까만 정장을 입고 굽 높은 뾰족구두를 신고 엉덩이를 샐룩샐룩 흔들며 출근을 한다.

 

"다음에 회식하면 정장입고 나이트가서 부르스 섹쉬하게 출 것이다.여보란듯이... 크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