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도 아니고 아주 가끔씩, 어떨 땐 몇 년을 훌쩍 건너뛰기도 하고 내 얼굴을 잊으실 만하면 한 번씩 선심 쓰듯 친정에 들르는 나. 그나마 인사치레로 아주 조금의 용돈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데, 오히려 그럴 때마다 바리바리 싼 보따리를 건네 받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다. "아휴, 엄만. 이렇게나 많이....무거워서 어떻게 다 갖고 간디야". 그럼 울 엄마는 "어디 그걸 니가 들고 가냐, 차가 싣고 가지. 어여 썩혀서 버리지 말고 알뜰히 챙겨서 먹어라". 그리고선 슬쩍 옆으로 다가와 주머니에 뭔가를 찔러 넣어 주신다. 가서 우리 아이들 옷이라도 하나씩 사 입히라면서. '받아라' '안 받겠다' 몇 번씩 실랑이가 벌어지지만 언제나 내 주머니가 불룩해지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난 아주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결혼 전에 은행에 몸담았던 직업적인 습관 때문일 것이다. 바로 무엇이건 메모를 해두는 습관이다. 특히 수표 번호나 통장 번호 등을 적어 놓은 것은 물론이요, 만 원짜리도 빳빳한 신권이나 연 번일 때는 문서 대하듯 하나하나 기록해 놓곤 한다.
그 날도 친정 집에서 돌아와 주머니에 들어 있던 꽤 많은 돈을 헤아리고 있었다. 왠지 빳빳한 느낌과 본능이 감지한 어떤 기운에 이끌려 나는 또 기록장을 열었고, 거기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분명 내 손에서 나갔던 돈인데...'나는 순간 노트를 집어 던졌다.
자식이 준 돈을 차마 쓰지 못하고 자리 밑에 넣어 놓고 딸 대하듯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을 울 엄마의 그 마른 풀 같은 마음이 너무 아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그랬어. 왜 그랬냐구우. 아예 10년은 두고 썩히지 그랬어". 마음과는 달리 나는 또 엄마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집에 안 갈 거라고, 다시는 돈 같은 거 안 줄 거라고 했더니 담담하게 하시는 말씀. "이것아, 그럼 이 에미 죽으면 올라나".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온라인 통장으로 송금을 하고, 집에 들를 땐 선물이나 다른 물건으로 사간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송금해 드린 돈은 지금도 또 다른 명목으로 울 엄마의 비밀 장소 어딘가에서 거친 손길 담뿍 담은 사랑을 받고 있을 거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