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보성으로 간 딸아이를 뺀 나머지 다섯 식구가 커다란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 앞에 한껏 오물거릴 입모양을 하면서...
저 입들(시부모님 입은 왠지 입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찬을 맛있게 준비해야 할 텐데...
하루 세 끼 끼니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 부분이다.
금방 뚝딱뚝딱 근사한 상을 마련하는 기막힌 솜씨를 지닌 이도 있건만 16년차 주부인 나는 아직도 그것이 쉽잖다.
그래도 가끔 자화자찬 한다. 일년 삼백 육십 오일 그래도 굶기지 않고 꾸역꾸역 꾸려나가는 것을 보면 대단한 거야.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주도 없고 요리에 별다른 끼도 없는 사람치곤 꾀부리지 않고 착실하게 식탁을 꾸려가는 편이니까...
그래도 커다란 식탁은 반찬을 참으로 초라하게 만든다.
같은 찬을 두 군데씩 놓았다.
아버님, 남편이 한 상. 어머님,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한 상.
어머님은 계란찜이 잘 되었다며 좋아하신다.
거품기로 훼훼 저으라 하셨는데 그 덕분이라 하신다.
간을 맞추고 불조절하고 한 내 공(?)은 사라졌다.
어쩜 어머님 말씀대로 거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속이 상한다.
둘째 형님(시누님)이 추석 때 주셨던 옥돔과 조미 고등어도 식탁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머님은 너무 바싹 튀기지 말고 말랑하게 구우라 하셨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지글거리는 생선은 입맛을 돋운다.
어머님은 드시면서 맛있다 맛있다 연발하신다.
내 맘이 꼬인 탓일까, 형님이 주신 생선이라 더 맛있다 하시는 것 같다.
처음 생선을 꺼냈을 때 어머님이 그러셨다.
한마리는 고등어고 나머지 한마리는 이름을 잘 모르겠는데 참 맛있다고 하더라.
내가 말씀드렸다. 한마리는 옥돔이에요.
어머님이 그러신다. 내가 옥돔을 모르니? 이건 옥돔이 아니야, 절대로...
식탁에서 생선을 먹던 남편도 옥돔이라 했지만 어머님은 끝까지 아니라 하신다.
원래 어머님은 옥돔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형님이 옥돔을 한마리만 주신 것이다. 어머님이 우리 식구 아무도 안 먹는다 그러셔서...
옥돔은 이 맛이 아니야... 어머님은 절대적으로 단정하신다. 내 목구멍이 간질거린다. <그래도 옥돔인데...>
남편은 식탁 밑으로 나를 살짝 꼬집는다. 그냥 가만 있으라는 뜻이다.
얼마 전에는 꽈리고추를 볶았는데 제법 매웠다.
어머님은 고추반찬을 정말 좋아하신다. 그러나 매운 것은 잘 못 드신다.
매운 꽈리고추를 보고 마땅찮아 하시며 한말씀 하신다.
이건 꽈리고추가 아니야, 세상에, 넌 살림하는 주부가 어쩌면 그것도 모르니... 꽈리고추는 훨씬 작고 이렇게 맵지도 않아.
어머님, 꽈리고추 맞아요. 쭈글쭈글한게 꽈리고추 맞잖아요.
어머님은 그냥 어른 말씀에 네네 하지 않는 며느리가 마땅찮으신지 휑하니 가버리신다.
그리고 한 말씀 하신다.
꽈리고추도 모르고...
나도 뒤에서 들리지 않게 구시렁거린다.
<그래도 꽈리고춘데...>
그 고추를 다 먹기 전에 형님이 집에 들리셨다.
어머님이 형님께 물어 보신다.
글쎄, 얘가 이걸 꽈리고추라고 그런다. 이게 어디 꽈리고추냐?
엄마, 그거 꽈리고추 맞네요. 형님이 말씀하신다.
그래, 난 또 얘가 꽈리고추라는 걸 절대로 아니라고 했지.
어제도 저녁을 먹고난 뒤, 형님께 걸려온 전화를 받으시다가 생선을 잘 먹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생선 이름을 물어보신다.
아마 형님이 옥돔이라 그러셨나보다. 그래? 난 에미가 옥돔이라고 하는 걸 아니라고 했지 뭐냐, 옥돔이 생긴게 변했네?
며칠 전에도 멸치를 볶을 때 어머님께서 비릿한 냄새가 싫으시다며 뭐라고 하신다.
차라리 얼마 전 먹었던 잔멸치가 더 나은 것 같아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건 멸치가 아니야. 뱅어새끼지.
멸치라고 포장된 것을 산걸요. 멸치 맞아요.
글쎄 멸치 아니래두..
<아닌데, 잘긴 하지만 그래도 멸친데...>
요즘은 어머님과 마주 하기가 영 불편하다. 내가 한 것은 무조건 잘못되었다 하시기 때문이다.
부엌에 있을 때 어머님은 저만치 떨어진 거실 의자에 앉으신 채로 이런 저런 지시를 하신다.
그런데 16년차 주부인 나는 듣던 말씀 듣고 또 들으니 이젠 조언이 아니라 참견 같고 지겹다.
대충 대답하면 하신 말씀 하시고 또 하신다.
거기에다 따님들 칭찬을 입에 달고 계신다.
내가 하는 것은 다 틀렸다 하시면서...
자꾸만 목구멍이 간질거린다. 왜 번번이 제게 그러시나요?
일이 점점 싫어지고 의욕이 없어진다. 어머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답니다. 정말 그렇게 제가 하는 것은 다 싫으신가요?
드러내진 못해도 내 속상해하는 모습이 완전히 감춰질 순 없었나보다.
남편은 내게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어른이 그러시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지 그걸 따지려드냐고...
그러나 어쩌다 한번씩 뵙는 분도 아니고 하루 종일 함께 계신 분께 매사 질책받으면 내 속도 속이 아닌게 되는 것을 어쩔 것인가.
나도 이제 마흔 넘어 새색시마냥 고분고분해지질 않고 호르몬 탓일까, 울컥거리는 맘이 자꾸 생기는 것을...
그러고보니 어머님은 여든이시다.
뼈 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시고 외출을 일체 삼가한 채 집 안에만 계신분이다.
늙고 아프니 서러움만 가득해지셨다.
정말 예전과 많이 달라지신 것 같다.
그래도 기분 좋으실 때면 아픈 몸 이끄시고 내 일을 몰래몰래 도와주실 때가 있다.
언젠가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몸만 성하다면 몸 아끼지 않고 널 도와 주고싶다.
계속 내 맘을 불편하게 하시다가도 몸이 아프니 심술 나는 것이라며 멋쩍게 변명하시기도 한다.
정말 우리 어머님 나쁜 분 아니신데, 나도 그닥 나쁜 며느리 아닌데 왜 우리 고부는 점점 골이깊어가는 것일까?
가끔은 어머님 정말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편안히 계셔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쩜 바로 그것이 어머님을 슬프게 해 드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늙으셨으니 아무런 참견도 마시고 그냥 쥐 죽은 듯이 가만 계시란 심보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잘 모시지도 못하면서 온통 착한 며느리란 칭찬은 다 듣고 있는 나. 어머니 모시고 사는 착한 올케라고 손위 시누 네 분 모두로부터 늘 아낌을 받고 있는 나.
그런 난, 정말은 나쁜 사람 아닌데 자꾸만 미운 심보가 나오게 된다.
이 세상 어떤 즐거움도 못 누리고 계신 어머님과 그 곁에서 삭아가고 있는 며느리.
둘 다 알게 모르게 죄짓고 살지만 그래도 불쌍하다고 용서를 받게 되려나...
어머님 가끔 예쁜 말씀 하셔서 내 맘에 감사의 복을 쌓으셨는데 그것이 다 저축이 되어 있으니 지금 속상하게 하실 때 조금씩 꺼내서 이해해드려야 할 텐데...
그렇게 하려고 지난 날, 고마운 맘 생길 때마다 맘 속 깊이 잘 보관해 두었더랬는데...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듯 팍팍해지고 있다.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예전보다 고집도 점점 더해간다. 그래서 자꾸 죄를 짓는다.
아마도 더 늙고 늙은 어느 날, 젊고 똑똑한 며느리가 내 고집에 수긍하지 않고 꼬박꼬박 따지려든다면 괘씸함에 벌벌 떨지도 모를 것을...
그래, 그런 것을...
콩을 팥이라고 해도 어른 말씀이라면 생긋 웃으며 예예 할 줄 아는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후일 며느리가 옳았음을 알게 된다면 또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울 것인가?
우리 어머님그저 가끔 심술낼 상대로 며느리가 만만했던 것이지, 부러 며느리 속상하게 하실 맘은 털끝만큼도 없었으련만... 난 이렇게 글로라도 가끔 어머님 몰래 흉보고 속 푸는데 어머님은 그것조차 못하시고 끙끙 앓으시련만...
알면서도 자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남이 속상하고 못나보인다. 그래서 모질게 힘든다.
이 일을 어쩌나...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