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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92

가끔은 이런 재미도 있어야......


BY scalett 2005-09-24

가끔씩 해지는 노을을 보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아니, 해놓은 일 하나 없이 가버린

시간들을 아쉬워하고 푸념을 내 뱉곤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보니 신나게 놀던 아들 녀석이 들어오더군요.

 

"엄마, 이거 안 갈아 줘요?"

"알았어. 벗어봐."

 

아들 녀석의 인라인스케이트 스톱퍼가 다 닳아 없어진 것을 보며 여분으로 사두었던

스톱퍼를 갈아 끼우기 위해 연장을 찾아 들었습니다.

벌써 아들녀석에게 잔소리를 몇차례나 들었음에도 뭐가 그리 바쁜지,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깜빡깜빡 하는 바람에 언른 해치우자는 심산으로 닳아진 고무를 끄집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닳아버린 고무는 고사하고 고무를 감싸는 부분까지 모두 닳아 없어져

제 손으로 해결하기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거 아빠가 오셔야 겠다. 엄만 이렇게 까지 닳아진건 어떻게 못해. 가장자리까지 다

닳았잖아. 이 녀석아 이렇게 되면 타지 말아야지."

 

"얼마나 재미 난데, 엄마도 한번 타봐요. 정말 재미 있어요. 이렇게 닳아진 줄 도 몰랐어요."

"정말 재밌니? "

"엉. 엄마"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마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이가 들어간 것을 확인 하고는 아이의 인라인을 한참을 노려 봅니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저걸 나도 탈 수 있을까?

하지만, 금새 "타긴 뭘타. 타다가 엎어지면 동네 망신이지......"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신랑에게 아이의 인라인 스케이트를 보였습니다.

닳아진 부분을 살짝 깍아내고 긴 나사를 고무와 연결해서 박더니 안심이 안되는지 강력

본드까지 살짝 두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신랑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신랑? 나두 저런거 있음 탈 수 있을까? 몸이 둔해서 안될까?"

 

남편은 아무런 말도 없이 피식 웃기만 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그런 웃음으로 해석을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그런일이 있고 한 사오일 지난 어느날 벨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택배 직원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 씨 댁 맞습니까? 주문하신 물건 왔습니다."

 

"...씨집은 맞는데, 이런거 주문한적이 없는데요?"

 

상자를 받아들고 보낸 사람 받는 사람 이름을 보니, 신랑 이름과 제 이름이더군요.

 

제법 커보이는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엔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옃칠전 아이의 인라인 스케이트를 고쳐 주며 건넸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던 신랑이

제 발치수에 맞는 인라인을 사서 보낸 것이없습니다.

 

씽긋 웃음이 베어나오고 설레이는 가슴으로 전화기를 찾았습니다.

 

"여보세요?  난데."

 

"어. 넌데, 왜?"

 

"신랑 고마워. 스케이트. 전번엔 듣는 척도 안더니."

 

"왔어? 빨리 왔네?"

 

"근데, 저걸 탈 수 있을까?"

 

"왜, 예전에 학교 다닐때, 운동 잘 했었잖아 운동신경이 있어서 좀만 연습하면 될꺼야."

 

갑작스런 선물에 격려의 말까지......

너무나 지루하던 생활의 커다란 변화와 활력소 까지. 남편과의 짧은 통화가 끝나고

격려의 말에 힘입어 당장 학원에 다녀오는 큰 아이와 아파트 주차장으로 비범한 각오로

문을 나섰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는 능숙한 동작으로 시범을 보이고 코치를 해주더니 생각보다

쉽게 밀고 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작은 아이는 옆에서 "엄마 조심해"를 연발을 하고......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빠를 붙잡고 큰 아이는 연신 떠듭니다.

엄마의 인라인 타는 실력과 자신이 얼마나 엄마를 잘 가르쳐 주었는지를.

잠시도 쉬지 않고 아빠에게 설명을 하는 아이를 보며 남편과 나는 흐믓한 마음이 됩니다.

 

옆자리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물끄러미 봅니다.

오늘은 참 예쁘게 잠을 자는 군요.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고, 가끔은 이런 재미도 있어야 살지......

내일은 하루 종일 전화를 붙잡고 살아야 할 듯 싶습니다. 

푹퍼진 아줌마인 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갖게된 사연을 알려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