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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BY 들키고 싶지않은(이해해 주세요) 2005-09-17

 

생각해보니 그런 기미가 있었다.

두려워 외면하고 모른 체 지내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내 비겁한 모습.


바람.

다들 그런다고 들었지만.

나도 내 남편은, 하고 .......


얼마 전 처음으로 본 핸드폰 내역.

다 - 지워져 있었다.

좀 이상하네 했지만,

그냥 다 꽉 차있어서?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오늘 일찍 들어온 남편. 저녁준비하기 전에 이야기.

중학교 친구가 만나자 연락 왔는데.

저녁을 먹고 만날지, 만나서 저녁을 먹을지 모르겠다고.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나갔다.


열두시 넘어 술에 취해 들어와

핸드폰을 화장실 앞에 두고 잠들고.

지워져 있던 게 생각나 열어보았다.

그 친구 이름이 많이 많이 있었고.

그런데 그 친구 동생이름도.

거기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수신메시지, 발신메시지. 수신번호, 발신번호.

다 오늘 날자. 아, 단 하나 오늘 열두시 넘어 발신번호 하나.

문자메시지 열어보았다.

남편‘즘심은 드셨슈우’ she‘지금 먹었슴다 몇개’

남편‘84개로 1등__헤헤돈2만원따서 보리밥샀지요__일잘되시나요’

남편‘사랑하는 oo씨__ 추석 잘보내세요_비록 몸은 서로떨어져있지만_마음은 항상당신 곁에_’ she‘피__이 말로만 추석 선물도 안주고 고로케는 안되지여’

남편‘만나야주지여____쪽쪽쪽’ she‘◑◑눈흘기는 모습’

남편‘에이잉____으스러지도록 꼬옥 안으니___꼼짝마라’

남편‘아직도 일하고 있나요_택시 타고 가는중’

친구 이름은 그 여자였고, 친구 동생이름이 그 친구였던 듯.

오늘 전화는 집에 들어왔다는 전화였을 듯.

 

처음 손도 몸도 마음도 벌벌 떨리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도 보다,

나도 예전 알던 남자에게 문자 보내볼까,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채팅이 가정을 파괴한 이야기하던 남편이 생각나 채팅을 할까 - 부질없는 생각으로 이리 저리 시간 보내고.

지금 다시 핸드폰 보며 내용 그대로 쓰다보니 다시 벌벌.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은데.......... 몸은.......


처음에는 언제부터냐, 어떻게 할 거냐, 어떤 사람이냐 묻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어째야하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시금.

믿고 싶지 않은.


다시 그 전화번호 저장된 날자를 보니 이년도 넘었다.

내 번호는 그 후 바뀌어서 그 후 날자로 되어있고..


무기력감.


항상 저녁 먹으러 오다,

이제는 저녁을 주로 밖에서 먹을 거고 집에 와서 먹을 때는 전화하겠다던 그 때가 그 때였나.

핸드폰을 이상하리만치 손에 두고 있다고 느낀 때 - 언제였던가.

모든 문자 통화 기록이 지워진 걸 본건 일주일 정도?

그전에 한번 남편의 전화로 통화했을 때 - 남편이 긴장했던가......

그 때 지워야겠다고 생각한건가...


난 왜 그동안 핸드폰을 살펴보지 않았을까.

아니, 아예 보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까.

아니 그건 아니야. 모르고 당하는 거보다는 - 그럴까.. 정말 그럴까


이제 어떻게 무엇을.


한번 올라왔던 반찬을 먹지 않는 그가 저녁을 먹으러 들어오지 않은 걸 편하다 여겼던 거.

아까도 그랬다.

먹고 만날지, 만나서 먹을지 모른다고 했을 때... 그냥 나가먹지 하고 생각...


어떤 여자일까.

남편이 이런 문자를 보냈다는 거. 남편을 그런 모습으로 만든 여자.

지금 아는 거-일 하는 여자라는 거. 세련됐겠구나.......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는

일은 물론, 종교 활동도 못하게 하고.

뭐 배우러 다닌다면 남자있냐고 묻고.

이제 오십을 코앞에 둔 이 나이에.......

지난주-  저녁 모임이 있었고.

10시 좀 넘어 음식점에서 나와 몇 사람이 이야기하다 열한시를 넘겼고.

그날도 저녁은 밖에서 먹은 남편. 전화-화내며 어디 있냐고. 이때까지 여는 음식점이 어디 있냐고.

다 지 뒤가 구려서 그랬던 건가.


그나저나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부딪칠 일도, 모른 체 할 일도. 다 난감하기만.

저 어쩌면 좋을까요?


어느새 날이 밝아오네요.

추석에 지 형네 가는데 음식 해가는 건 해가는 거고 뭐를 가져가야한다며

내 동생이 보내준 수삼까지 가져가자는 남편.

뻔뻔한 놈 나쁜 놈.


저 어떻게 할까요.

좀 있으면 일어나 또 아침 달라하겠네요.

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거 같아요.

갈수록 잠은 멀리 달아가는데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