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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상화


BY 옛친구 2005-09-13

 

아름다운 추상화(抽象化)


“나쁜 놈! 난 몰라! 이건 한 벌 뿐인 옷이란 말이야!”


찢어 질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따귀를 올려 부치는 소리가 “철썩” 하고 났다.

이것은 또 분명히 말썽꾸러기 경환이 녀석 짓이었다. 경환이 녀석이 방금 맞은 오른뺨을 두 손을 올려놓고 당황해 하고 있고 그 밑에 수정이가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서럽게 울고 있었다.


수정이 의 분홍색 원피스의 뒤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피카소가 그린 추상화처럼 물감 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범인의 증거물인 물감을 엉망으로 뭉쳐놓은 손수건이 떨어져 있었다. 경환이 놈이 물감을 손수건에 잔뜩 뭉쳐 수정이의 의자 위에 살며시 가져다 놓은 것을 수정이가 모르고 그만 앉아 버려서 옷이 물감 범벅이 된 모양이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수정이가 화구를 챙겨 휭 하니 나가버리고 경환 이는 또 원장 선생인 소담 김 기연 화백에게 꾸지람을 듣고 화구 정리 및 화실 청소를 그 벌로 하게 되었다.  이곳은 소 도읍 Y 읍에 있는 피카소 미술학원이다. 경 환 이는 이  소 도읍 Y읍에 유일한 “정 림 실업‘ 봉재회사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집안 이 쾌 잘 사는 편이었는데 귀한 자식 버릇없다고  초등학교 5학년인 정 경환(鄭 經 煥)은  그야말로 읍내에서 유명 짜한 전형적인 개구쟁이로 하루도 말썽을 안 피울 때가 없었다.


이 화실도 경환이 어머니가 정서를 기르는 차원에서 보내는 터인데 정작 경환 이는 그림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늘 말썽만 피워서 원장 소담(小潭)김 기연(金 琦蓮) 화백의 심사를 뒤 흔들어 놨다. 그러나 경환이 아버지 정 림(靜 林) 정 아림(鄭芽琳) 사장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  다감하며 김 기술 화백의 은인이기도 했다. 그의 후원으로 공부를 한 인연도 있고 해서 원장 은 경환이의 말썽을 참아 넘기었지만 오늘의 경우는 너무 심했다 싶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여자의 자존심을 뭉개 놨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한편 그렇게 울면서 뛰쳐나간 고 수정(高 秀 靜)은  경환이 아버지가 후원하여 돕고 있는 소녀 가장이었다. 정 림 실업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60대의  할머니와 초등학교 1학년이 동생 고 다 복(高 多 福) 과 그렇게 세 식구가  조그만 반 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아이이었다.

그러나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수정 이는 학교가 파하면 정 림 실업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용돈을 벌어 생활에 보태는 착한 아이이었다. 그런 고수정이 이 피카소 미술학원에 다니는 것도 경환이 아버지 정 아림 사장의 배려 때문이었다. 


수정 이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아무 종이나 보면 무엇이든 그적그적  그리기를 좋아했고 수정이가 신문지에다 그린 그림을 그 재능을 높이 산 정 사장이 김 화백에게 추천하였고 김화백도 수정이의 그림을 보고 오케이 하여 화구와 모든 것을 준비해주어 학원비 없이 학원에서 배우게 하였다.


수정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화구 등 모든 것을 준비해주고 그것도 이름난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게 된 것을 꿈같이 생각하고 열심히 하였다. 그래서 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발전하여 전국 사생 대회에서 본상을 받아 김화백과 정 사장. 그리고 할머니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런 수정이게 경환 이는 악동이었다.


매일같이 머리를 잡아 다닌다거나 붓을 부러트린다던 가 일껏 그려놓은 그림을 망가트리기 일수 이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 했다. 그 분홍색 원피스는  수정이의 유일한 외출복이자 한 벌 뿐인 쓸 만한 옷이었다.


수정 이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옷을 빨려고 보니 팬티까지 물감 범벅이었다. 이물감은 유성이어서 잘 지워 지지도 안했다. 할 수없이 한쪽에 쳐 박아놓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계속 눈물이 났다. 그런데 그 충격이 컸는지 수정이 몸에서 계속 피가 났다. 급한 대로 깨끗한 손수건으로 막았다.


그 이튼 날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창피해서 나 다니기가 싫었다. 그런데 오후에 그 말썽꾸러기 경환이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찾아왔다. 문을 여니 멋쩍게 들어서서 상자를 들이밀며


“말썽 부려 미안해! 사과할게? 그리고 이것은 사과의 뜻으로 주는 것이고 이건 우리엄마 선물이야! 여기에 놓고 갈게! 용서해줘!”


비죽 비죽 그렇게 말하며 장미 꽃다발과 상자 하나를 놓고 돌아갔다.

수정 이는 속상하고 괘씸해서 쳐다보기도 싫었으나 경환이 어머니가 보냈다는데 안 볼 수도 없어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에는 놀랍게도  예쁜 분홍색 드레스 형 원피스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예쁜 봉투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경환이 어머니가 보낸 편지이었다.


“수정아!

얼마나 놀랐니? 그리고 어른이 된 걸 축하한다.

경환이가 철없이 군 행동은 너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단다.

경환이 말에는 내 옷에 피가 배어 나와 다른 아이들이 보면 당황해 할까봐 그런 말썽을 피웠다고 하더구나! 지금 몸에서 피가 나는 것은 초경이라고 내가 어른이 되는 자연스런 현상이야! 엄마가 없어서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겠지만 그것은 여자라면 다 겪게 되는 현상이니 무서워하지 말 아 라! 그리고 여기에 보내는 옷은 경환이가 버린 옷 대신이니 부담 없이 입고 또 같이 보낸 생리대를 사용하도록 하 여라! 좀 더 자세한 것은 일간 집에 한번 들리면 내가 잘 설명해 주마! 다 시 한번 축하 한다! 여자가 된 것


경환이 엄마가  “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났다. 순간 수정 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중학교 언니들이 초경에 대하여 떠들던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면 경환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창피하고 징그러웠다. 무슨 남자 자식이 그렇게 능구렁이냐!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말썽꾸러기답지 않은 의젓한 행동이기도 하였다. 만약에 경환이가 재치를 발휘한 말썽을 부리지 안했다면 꼼짝없이 망신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창피한 사건을 고맙다고는 쑥 쓰러 워서 말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었다. 그래 수정은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쓰레기  통에 쑤셔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 놓았던 물감 묻은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수정 이는 개구쟁이 경환 이를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경환이의 개구 짓은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다. 수업이 너무 권태롭거나 모두들 그림이 안 풀려 고민할 때면 어김없는 경환이의 타깃이 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 뒤로 수정 이를 생각하는 경환이의 덜렁 거리는 듯   한 행동은 늘 배려있고 찬찬한 것임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경환이가 이해가되니 나이는 어리지만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유네스코 연맹 주최로 열린 세계 어린이 미술 대회가 있었다.

소재는 자유였고 피카소 미술학원에서는  고수 정이의 작품을 대회에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피카소 미술 학원에는 경사가 났다.

수정이가 낸 그림“ 아름다운 추상“ 이라는 작품이 당당하게 대상을 차지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작품은 놀랍게도 경환이가 물감을 뭉개 수정이의 원피스를 못 쓰게 만들었던 바로 그때의 그 형상이었다.

수정 이는 경환 이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표현으로 그때의 그 못 쓰게 된 원피스의 물감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학원에서 대대적인 축하 파티가 있던 날 수정이가 경환 이에게 다가와


“경환아! 그때는 고마웠어! 이 그림은 널 위해 그린 것이야! 너에 대한 고마움으로 .. 우리 친구하자! 어때!”


그렇게 말했다. 맑게 웃는 수정이의 얼굴에 볼우물이 생겼다. 경환 이는 수정이가 참 예쁘다고 느꼈다.


“그래! 친구하자! 영원한 친구!”


경환이도 흔쾌 하게 수정이가 내민 손을 잡아 흔들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화백이 정 림 정 사장에게 말했다.


“선생님! 보기 좋지 않습니까? 저애들이야 말로 미래에 아름다움을 창조할 추상화 같은 존재이죠!”


경환이 아버지 정 아림 사장이 말했다.


“미래 한국 화단을 책임질 여 화백을 위해 청평 별장에 아틀리에를 하나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김 화백 ! 하하하!”


유쾌한 정 사장 의 웃음이 맑게 펴져 나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