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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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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가재맛을 알어?(고향의 맛)


BY 개망초꽃 2005-09-09

고향은 산으로 싸여 있어서 아늑하고 폭신폭신한 마을이었어요.

볼기짝만한 비탈밭엔 메밀꽃이 피고, 가마솥에 달작지근 삶아지는 찰옥시기 마을이었지요.

앞산 돌작밭엔 보라색 감자는 보라색 꽃을 피워내고,

누렁색 감자는 누렁색 꽃을 피워 물었지요.


고개를 넘어 산길 끝은 굽이쳐 휘어지고

그 밑으로 내리막을 지나면 바위가 하나 등을 굽혀 앉아 있었어요.

우린 바위에 책가방을 올려 놓고 기대어 서서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숨을 돌리곤 했지요.

바위뒤엔 고구마 밭이 있었어요. 잎만 무진장 달려 있는 고구마였지요.

우린 호기심에 고구마 줄기를 두 손으로 뽑아 올렸더니 고구마가 딸려왔는데

너무 가냘 퍼 먹을 건더기가 없었어요.

엣따~ 모르겠다 내팽개치고 가방을 끼고 돌아왔지만

밭주인이 와서 야단친 일이 한번도 없었답니다.


한번은 야단맞을 짓을 한적이 있었어요. 마을엔 과수원이 한 집 있었어요.

비오는 날 아직 덜 익은 시퍼런 사과를 따러

동생들과 우산을 들고 과수원으로 숨어 들었지요.

따긴 땄어요. 우산을 뒤집어서 그 속에 넣어 와서는 빗물에 씻어 한잎 베물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과수원집 둘째 오빠가 나타 난거에요.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영원히 돌이 되는 줄 알았어요.

도망도 못가고 사과를 한손에 들고 입에 한입 물고 돌이 되었지요.

아직 덜 익은 걸 땄다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하며 되돌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냉랭한 바람이 부는지 사과를 담아왔던 접지 않은 우산이 날아가더라구요.

그 오빠가 사과 나뭇잎에 파묻힐 쯤

우린 서로 쳐다보다가 들고 있던 사과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어요.

그리고 그날밤 외할머니한테 또 혼났습니다.

좁은 마을에서의 소문은 발이 열개도 더 달려있으니까요.

 

고향엔 집집마다 앵두나무 몇그루는 기본이라서

여름엔 어느집을 가나 앵두가 뎅굴뎅굴 굴러다녔지요.

산줄기마다 도라지 꽃이 피면 그 옆에 잔대꽃도 덩달아 피었고

잔대뿌리를 케서 그 자리에서 먹었지요.지금은 잔대 볼 줄을 몰라 맛도 잊어버렸답니다.

잊어지는 것이 자연뿐만 아니고

사람과 사람사이도 잊혀지고 버려지는 것이 어디 한두번이겠어요.

 

제 고향은 산골이라서 산을 하나 넘어 초등학교를 다녔고,

버스는 하루에 세번 마을로 기어들어왔습니다.

마을로 기어오는 산 고개 이름이 말구리 고개랍니다.

말이 굴러 떨어졌다는 뜻으로 버스가 올라오려면 얼마나 기운을 써대야 하는지

버스 옆에 있다가는 먼지와 기름냄새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이라

우린 멀찌감치 떨어져 버스가 지나갈때까지 풀섶가에 서 있곤 했습니다.

눈이 오는 겨울엔 버스는 며칠씩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요.

버스 코는 커녕 버스 몸 냄새조차도 맡을 수 없어 그 향취가 궁금해지곤 했답니다.

 

겨울 내내 감자 넣은 밥에 짠 김치만 먹었고,

햇볕 잘 드는 산소앞에 앉아 이종사촌 여동생과 생고구마를 겨울내내 야금야금 먹어,

봄이면 고구마를 넣어둔 수수깡 우리를 다 비워냈었지요.

겨울밤에 야참으로 무를 깍아 먹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런 맛이나는 생무와 고구마를 먹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다리를 잡고 있으면 방아 찧는 것 같다해서 방아깨비라 하는 방아깨비도 구워먹고

가을 추수철에 냅다 날뛰는 메뚜기도 간장 넣어 졸여먹고,

논둑길에 풍덩풍덩 다이빙을 하던 개구리도 몸보신용으로 엄마가 구워 주었는데

내가 뱀 보듯 질겁을 해서 속상해 하던 엄마의 얼굴과 개구리 얼굴이

유년시절과 함께 떠나질 않네요.

 

연하고 단 과일맛이 나던 찔레순,

싱아잎,괭이밥,며느리배꼼잎은 시큼털털 색다른 맛이지요.

까만것이 바위에 까맣게 들러붙어 있던 다슬기,

된장을 넣고  끓인 다슬기국은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지요.

비탈논 한마지기를 통째로 들쑤시며 잡던 미꾸라지.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에서 주전자 들고 호롱불 밝히며 뒤로 도망가는 가재를 잡아

볶아 먹으면 새우 맛은 여기에 따라 나서지도 못하고

킹클랩인지 긴클립인지 요것들도 뒤로빠져야 한답니다.

 

큰구슬같은 뱀딸기는 부드럽고 달달하고

새콤하게 씨가 씹히는 멍석 딸기도,

도랑가에 머루도 많은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지요.

 

근데 내가 안먹는 것이 있어요. 번데기랍니다.

왜냐면 누에를 길러봐서 못먹겠더라구요.

한잠 자고 나면 애기 손가락만 해지고 두어번 자고 나면 내 손가락만 해지고

여러번  자면 어른 손가락만 해지지요.

어른 손가락 굵기 정도가 되면 뽕잎을 먹는 소리가 여름날 소낙비 내리는 소리 같아요.

누에 몸둥이는 회색빛이 도는 하얀색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여운 구석이 도는 놈이지만

요것이 서울에 와서는 구수수한 영양간식 뻔데기로 둔갑을 해 버렸으니...

먹을 수가 없었지요.

 

지금도 질리지 않은 것이 있답니다.

찰옥수수, 분나는 감자, 집에서 직접 썩혀 만든 감자녹말로 만든 감자떡.

고향의 맛은 오래도록 오래도록 머릿속에 저장이 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