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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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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사랑했소!


BY 옛친구 2005-09-04

 

“여보! 사랑했소!

   당신 나 만나 고생만 했소!

           편안하게 잘 가시게! “


지난해 11월20일 사랑하는 나의 넷째 누나가 세상을 하직 했습니다.

쉰아홉 해 인생을 살면서 무척이나 고생을 많이 한 누나 이였습니다.

대개의 60년대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나의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생활력이 없어 무능하셨고 어머님이 우리 육남매를 고무공장 직공을 하시며 키우셨습니다.


일찍이 누나는 겨우 중학교만 졸업하고 롯데제과에서 직공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그렇게 집안에 보탬이 되고 어린 남동생을 가르쳐야된다는 사명감에 열심히 생활하시던 누나의 불행은 꽃다운 나이 열아홉 시절에 바둑 껌 공장의 기계청소를 하는 중 사람이 청소를 하는 것을 미 쳐 발견 못한 직원이 기계에 스위치를 넣는 바람에  오른 손가락 세 마디를 잃으셨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불우의 장애인이 되었지만 의지가 굳은 누나는 집게만 남은 그 손으로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걱정하고 눈물짓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로하며 씩씩하게 사셨습니다.


그런 누나가 매형을 만난 것은 스물 셋인가 하는 그 무렵이었습니다.

직업군인인 중사계급의 매형은 경상도 사나이로 조그만 눈에 호탕한 분이셨습니다.

누나는 전라도. 매부는 경상도 그때만 해도 결혼하기 참 힘든 시기 이었습니다.

양가 부보의 결사반대 모든 것이 난관이었지만 두  분은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하셨습니다.


딸 둘 아들 둘 사남매를 두신 두 분에게 닥친 첫 번째 불행은 세 번째 얻은 큰아들이 아홉 살 때인가? 산부인과 진찰을 받은 누나의 자궁암 선고 이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하면 6개월 그냥 두면 3개월밖에 못산다는 통보를 받은 매부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아무한테도 그이야기를 하지 않고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낸 매형은 의아해 하는 우리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포항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넥타이 매고 회사를 다니던 분이 생전 안 해보던 철근을 매고 건설 현장 노동자 생활을 하시면서 암에 좋다는 것은 상황버섯에서부터 굼벵이까지 좋다는 것은 다사다 먹히면서 그렇게 1년을 지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재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선생님은

“이건 기적입니다! 아저씨의 정성이 기적을 나았군요?”

하면서 격려해 주었답니다. 저희 가족도 그때에야 왜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포항으로 내려갔는지 그 연유를 알았답니다. 그렇게 경상도 사내는 무뚝뚝합니다.


그렇게 그 무섭다는 암을 가진 채 누나는 10년 20년 30년을 더 사셨습니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 암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자식이었습니다.

그런 고난 속에 키운 자식들이 출가를 하고 큰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장가를 보내고 국어 선생을 하는 며느리를 얻었는데 고부간에 갈등은 아들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갈등이 심한지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죽었는데도 장례식에 얼굴을 나타내지 안했습니다. 나는 그 갈등의 원인도 모르고 나도 출가전의 아들이 있으니 악담은 못하겠습니다만 누나를 보내는 동생도 입장에서 조카 녀석을 나 무 냈습니다.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또 하나의 불행은 막내아들이었습니다.

태권도 4단인 녀석은 용인대학교에 지원했다가 집안 형편상 진학을 못한 뒤로 사업을 한다고 날뛰더니 부부가 평생 장만한 아파트 두 채를 업어먹고 말년에 포항 바닷가 모래 부는 엉성한 주택가에 달세 방으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겹쳐지면서 누나는 급속도로 무너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흔한 변비로 알았던 것이 복막염 대장암으로 까지 사랑으로 잠재해 있던 암세포가 누나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습니다.

한 많은 쉰아홉 생애 이 좋은 세상에 환갑도 채우지 못하고 한줌 재로 화하는 화장터 화로 앞 제사상에서 매부는 비몽사몽 실신상태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보! 사랑했소! 당신 나 만나 고생만 했소! 잘 가시게! 편안하게!”

쓰러질듯 술 한 잔을 올리며 하던 그 말이 내 가슴에 각인 되어 지금도 나를 울립니다.


그때 나는  매형에게 고맙고 먼저 간 누나에게 미안하고...

그래도 그렇게 그리 말해주는 매형이 너무도 고마웠고

“ 누나는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저런 매형의 사랑을 받았으니 참으로 행복하였겠구나!  ”

이런 생각을 하니 내 설음은 잦아들었고 지친 매형을 부축하며 눈물을 흘렸다.

“매형! 참으로 고마워요! 누나를 그리 사랑해줘서.. ”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부부되어 자식 낳고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그리 사랑할 수 있다면 짧으나 짧지 안했고 고생되었으나 고생스럽지 안했구나!

“누나야! 잘 가 거래 이! 그리고 이제 편히 쉬 거래 이! 남겨진 사람들은 남겨진 대로 버려두고 한도 미련도 없이 훨훨 흩어지는 연기처럼 잘 가시요! 부족한 동생 이제는 남겨진 매형 시시 때대로 찾아뵈며 보살펴드리리다 사랑하는 나의 누나여!  ” 

나는 화장 터 굴뚝을 보며 그리 눈물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