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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빛 바위위에, 저 밤배~~


BY 개망초꽃 2005-08-29

그래요 우린 그 산길에 올라 밤배처럼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저어 갔어요.

저기..저 밑엔 어둠으로 출렁이는 바다가 있었어요.

오징어 배를 타고 멀리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 봤어요.

안개낀 수평선, 운무에 싸인 무인도,

아홉 명의 우린 불빛 하나씩을 머리에 또는 가슴에 달고 선장을 믿고 노를 저었어요.

밤하늘은 구름으로 별들이 흐리하게 보였어요.

별빛이 추억처럼 내 가슴에 우리들 가슴에 떨어졌지요.

손톱 같은 달도 졸린 눈을 실눈처럼 뜨고 우릴 내려다보았지요.


뒷일을 봐주는 선원 한명이 홍주를 연거푸 마시고 노래를 불렀어요.

“검은빛 바다위에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 가 봐 한없이 흘러가네~~(난 무서워서 혼났수다~~)

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져 비출 때면

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산봉우리를 건너 갔수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들텐가(바위에서 잠들었수다~~)“


노래를 들으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도시를 내려다 봤지요.

소나무에 걸려있는 도시의 불빛은 카페나 상점에 걸려 있는 광고성 조명 같았어요.

도시는 언제나 나를 먼저 내 세우죠.

남보다는 나를 먼저 돋보이게 해서 상대방을 눌러야 살아남기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난 도시를 벗어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몸은 도시에서 크고, 도시에서 먹고 살았지만

정신은 도시를 배회하는 방랑자였어요.


선두가 보이지 않아요.

불빛 하나만 가지고 선두를 따라갔지요.

난 자꾸 꼬랑지로 밀려났지요.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고 했지만

나는 노을빛 유년시절부터 하얀목련꽃 학창시절에도

파란바다 젊은시절까지 꼬랑지가 편했어요.

보라색 들꽃이고 싶은 중년에도 선두보다는 조금 밑에서 따라가는 게 나한테는 맞았어요.

변한 건 있어요. 꼬랑지 보다는 아랫배 정도가 좋아졌으니까요.


안개낀 바다였어요.

습기가 작은 배 한척을 감쌌지요.

우린 길을 잃었어요.

왔던 길 반대쪽으로 노를 저어 갔더니 제자리였어요.

배가 뱅그르르 큰 원으로 한바퀴를 돈거지요.

길도 막혔어요. 선장이 둥그런 바위를 끌어안고 길이 없어 밧줄을 가지고 와 했을 때
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밧줄 하나만 의지해서 바위섬을 탈출한다는 것은

나보고 홀로 바다 한가운데 남아 있으라는 말과 똑같았어요.

차라리 여기서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가

길을 찾아 노를 젓은 것이 낫지않을까하며 순간 털썩 주저앉았는데

누군가가 길을 찾았다 이리 가면 돼 했을 때 그 선원과 기쁨을 함께 하려고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지요.

근데 그 선원이 누군지 모르기도 했고, 보는 눈이 많아서 마음뿐이었어요.


검은빛 바위위에서 우린 귀신이야기를 펼쳐놓고 몸을 으스스 떨었지요.

진짜 영혼은 있는가봐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바위 위를 떠돌다 나에게 덮칠 것 같았어요.


새벽은 오고 있었어요.

안개가 새벽빛에 푸르게 빛을 뿜었지요.

다들 졸음에 지쳐 끙끙 신음소리를 냈어요.

하얀 성벽 길을 걸어 성문을 지나 하산길로 접어들 때 아침은 어김없이 떠올랐지요.

아침이 오는 하산 길은 아름다웠어요.

바위를 애무하듯 흘러가는 계곡에 손을 담그니

그 짜릿함에 온 몸의 피로가 손끝으로 빠져나갔어요.

이름모를 나무 사이로 여명이 비치는 모습은

내 속에 있던 어둠의 건더기들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소나무, 절벽, 폭포, 바위,

어둠 속에 있을 땐 바다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는데..

이들은 한곳으로 뭉쳐져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었지요.


잠시 쉬기 위해 찜질 방에 누웠는데..

옆에 어떤 아저씨가 코를 너무나 잘 골아서 잠을잘 수 없었지요.

11시 토요산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새 노를 저은 몸을 이끌고

선장 하나에 선원 넷이 한 여자를 기다렸지요.

근데요 전화를 해도 안받고 한 시간을 기다려도 코빼기도 안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두부집가서 점심 먹고 귀한 해오라비난 보고 집으로 왔지요.

덕분에 평생 한번 볼까말까한 야생란을 보게 되어서

빵꾸내신 여자 분에게 감사했지요.

살다보면요,

절벽아래  떨어졌다가도 절벽을 다시 기어 오르다보면 귀한 야생화도 보게 되고

오묘하게 생긴 나무도 만나게 되고...

힘겹게 올라와 내려다보는 삶은 더 새롭고 값이 나가겠지요.


"으음~~몰사람(요 가사 맞나요?) 찾는 이 없는 조금만 밤배여~~

조그마..안... 밤... 배... 여~~어~~~ "


선장을 비롯해 남자 선원 셋, 여자 선원 다섯은

나침판도 없이 깃발도 없이 등대도 없는 목적지에 아주 잘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