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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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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BY 동해바다 2005-08-26


     
       작년 받아두었던 맨드라미 씨앗



       가을을 재촉한다.

       지독한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갗에 다가와 이젠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모처럼 나가 본 백사장에 피서객이 모두 빠져 나가고 갈매기들만이 호수처
       럼 잔잔한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평화로운 정경으로 그 허허로운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름날 피서객에게 빼앗겼던 바다를 이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슬슬 가을 채비
       하고 있는 해안가의 식물들이 일찌감치 새로운 계절을 맞고 있다. 명아주 잎새가 벌써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소나무를 칭칭 감아 올라가는 덩굴도 하나 둘 붉은 옷으
       로 갈아 입으려 한다. 구절초도 해말갛게 피어 있었다. 

       가을꽃의 대표격인 코스모스는 철도 잊은 채 뜨거운 뙤약볕에서 몽우리를 터트려 피기 
       시작하더니 벌써 자주색 흰색 분홍색 꽃을 마구 피어 내느라 정신이 없다. 이상하게 코
       스모스 군락지를 보면 내 젊은 날의 향수를 자극시킨다. 지금 껏 간직하고 있는 여고시
       절 사진 속에 코스모스처럼 아름다운 청춘이 꽃과 함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씨앗 갈무리...

       봄이라는 계절을 에누리 없이 누리며 초록의 화원에 수놓았던 끈끈이대나물이 제 명을 
       끝내고 휴면기에 들어갔다. 마디마디 사방으로 휘저으며 진분홍색 얄미운 꽃을 수도 없
       이 맺더니 꽃 대궁이 바짝 말라붙어 버린다. 대궁을 가위로 잘라 흰 종이 위에 올려놓고 
       톡톡 터니 와르르 무수한 씨앗들이 쏟아져 내린다. 마치 모래알처럼.... 
 
       도톰한 씨앗봉투가 보석처럼 귀히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일찌감치 받아 놓은 그 씨앗을 시작으로 지인에게서 얻은 매발톱과 분홍장구채, 금낭
       화 씨앗을 모래흙에 심어 파릇하게 올라오는 새싹들을 어디에 나누어 심을까 행복한 고
       민을 하기도 했다. 

       노란 금계국이 마당의 황제처럼 군림하며 수십 개의 꽃 피우더니 하나 둘 꼬투리 남기
       며 그들은 몰래몰래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은 흙 속에 숨어 내년 봄을 약속하기도 하
       고 조심스러운 씨앗주머니들은 터질세라 나의 손길을 기다리다 봉투 속으로 들어오기
       도 한다. 
       그 안에서 건드리니 약속이나 한 듯 바사사삭 씨앗들이 터져 나온다.
 

       기생초, 채송화, 백일홍, 나팔꽃 등 집 마당에 피어있는 꽃 잔치에 나는 그들의 피로연까
       지 열어준다. 갈무리하여 봉투 표면에 꽃씨 이름과 개화시기를 적어 넣고 나만의 보물
       창고 에 얌전하게 보관해 놓는다. 미처 거두지 못한 씨앗은 저 스스로 온 몸 던지며 흙 
       위에 흩뿌려질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 가까워지려는지 하나 둘 늘어나는 식물과 하루하루 정겨움을 나
       누며 지내는 날들이 뿌듯한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파종하여 마른 땅 헤치며 나오는 새
       순을 바라보는 설레임, 서로들 키재기하며 앞 다투어 피는 꽃에게서 귀여운 경쟁심을 
       훔쳐 보기도 한다. 
 
     
       한낮의 뜨거움을 고스란히 받으며 꽃들은 씨방을 만들고 분신을 키워 놓는다. 물론 화
       분  속에서 얌전하게 사계절 똑같은 모습으로 일관하는 관상용 화초들은 그런 과정 없
       이 변하지 않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다듬어주는 손길에게 한겨울 푸르름이란 감
       사의 표시를 할 줄 안다.  
 
     
       식물에게서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을 얻기도 하고, 그로인해 곱고 예쁜 꽃을 선물
       받기도 한다. 얼마나 한 고마움이며 희생이랴. 비록 숨쉬지 못하는 봉투 속에 구금되어 
       이듬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몇 달의 답답함이 있겠지만 주인만 잘 만나면 영양 많은 흙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깟 구금이야 왜 참아주지 못하
       겠는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접고 한 해를 보내며 스스로를 버릴 줄 아는 소멸과정을 지켜보면 
       포기하면서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삶이 때론 아름답다는 사실도 깨우치곤 한다. 버리고 
       비워 낼수록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피고지고 스러져 버리는 과정을 
       통해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꽃씨처럼 나도 한 해 한 해 갈무리되어 새 삶으로 다시 태어
       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사 맘먹기에 달려 있다지만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인간사 아니던가. 지쳐있는 육신을 거두고 세우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면 또한 마찬가
       지, 씨앗처럼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만나는 흙에 입맞춤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재탄생
       이 못내 부럽기만 하다.
 
 

       바람에 날려 내 꽃밭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채송화에게서 덤으로 얻은 씨앗들로 기쁘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맨 땅에 피어난 금계국 한 움큼 뽑아와 수백 수천 개의 꽃씨를 얻어
       내는 횡재를 얻어 기쁘고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검은 모래알처럼 여기저기 날려 올라오
       고 있던 맨드라미에게서 얻은 기쁨 모두가 내겐 소중하다. 바닥에 떨어진 씨앗 하나라
       도 소중히 여길 만큼 귀한 내 새끼인 것이다.
 

     
       온갖 번민을 잠시 내려놓고 둘러보는 꽃밭에서 얻은 씨앗이 더욱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
       할 것만 같다. 소슬하니 부는 바람에 또 어떤 씨앗들이 날아와 내 꽃밭에 행복 한 움큼 
       던져줄까. 

       한참 씨앗 여물기에 바쁜 족두리꽃이 꽃잎 하나 둘 떨어트리며 흔들리고 있다. 

     
      풍접초 (족두리꽃)

     
     지금 우리집엔~!~~~~



 

                         나팔꽃                                                                                 코스모스


 

                        란타나 (허브)                                                                         강낭콩

 

                         선로즈                                                                                 기생초

 

                         송엽국                                                                                샤피니아


 

                       클로로덴드롱                                                                        백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