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참으로 신선하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어서 인지
습기도 온기도 적당한 바람이다
비가 내리니까
혹은 남의 글을 더듬어 읽다보니
나도 공연한 수다를 늘어놓고 싶은 기분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보일러를 틀어 방을 뽀송 뽀송 덥히고
따뜻한 차를 한잔 마셨다
세수도 하지 않았고
아직 설거지도 마치지 못했다
아니 그냥 쌓아두고 외면해 버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을때 하겠다는 속셈으로
시어머님과 같이 살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어찌 ...집안 일을 두고 다른 일에 몰두 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집안 일에 목숨을 걸고
그저 노닥거릴 시간이 있다면
목욕탕에 얌전히 있는 깨끗한 대야라도 문질러야 하거늘 ..
늘 궁상스런 살림살이가 오늘은 눈에 띄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니
지난 겨울 내내
알바이트를 했었다
이른바 좌담이나 세미나
혹은 새로 나오는 상품의 디자인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 등 등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예리한 분석과 다른각도의 눈이 이렇게 많다는 걸 실감했다
하나같이 잘나보이고
하나같이 교만함이 우쭐함이 몸전체에서 풍기는 교양만큼이나
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
소위 ...
공주병으로 가득찼던 가슴을 털어내고 씩씩하게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뛰어들어
잡아보는 일이었다
겉으로만 포장을 단단히 하고
어제 모처럼 집을 지키고 있는데
일거리가 들어왔다
공연한 심통으로 일을 차버렸다
"혹시 설문에 참가하실래요? @@에 대한 품평회인데 .."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
"거절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의외라는 듯 재차 물었다
"네 .."
공연히 통쾌했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는 당당함을? 보여준 것 같아서(마음의 순간적 사치다)
당장 그 돈을 벌면 내가 사고 싶던 엠피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보태어서 ㅎㅎㅎ)
지인은 쉽게 벌 수 있는 돈인데 ..왜 거절했느냐고 묻는다
물론 시간당 charge는 큰 편이지만
그 돈은 그냥 주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의 骨은 빼는 것이다
큰언니는 내게 늘 이렇게 말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안쓰는 게 버는거라고 ..'
나는 안쓰고? 있었으니 벌고도 있었다는 엉뚱한 대입을 해대면서
실은 오늘 친구들과 울진에 있는 백암온천을 가기로 했는데
이런 저런 연유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 화풀이나 심통으로 내게 굴러온 일을 차버린거다
남들은 돈 쓰러 놀러가는데 구질 구질 비가 오는데
돈 벌러? 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발동한거다
그리고 순간 맥이 빠졌다
일에서도 놀이에서도 순간 원했던 왕따가 된 듯한 느낌때문에 ..
소용과 무소용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가 내키는대로 살고 있다는 거 하나에 무진장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
그 누구도 내일의 그림이 어떠할 것이라는 설정은 함부로 할 수 없다
남경주의' 아이러브유 '공연중
결혼 후 30년이 지난 노부부가 신문 한장씩 나누어 갖고는
서로 아무 말로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둘 다 어찌나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지
결혼을 공지한답시고
그의 지인들과 쎄실에서 만났을때
둘이서 결혼하면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것이며 아울러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하느라고
다음날은 여지 없이 둘다 지각을 할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왔던 기억이 날 지경이다
한 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한방에 살기를 희망했던 마음
그 마음은 깊숙히 묻어 둔 채(가끔 이렇게 꺼내보기도 하면서 ㅎㅎ)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잘 다녀오라 든가의 인사를 가끔은 침대에서 하면서
ㅎㅎ
나는 비오는 날 마음껏 내 기분을 즐기고
그는 지금 을지 훈련중이라 상부의 지시에 따라 꼼짝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