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 없는 무덤“
(1)
어릴 적에는 밭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야산을 개간 하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는 지독하셔서 하루 종일 장사를 하고 오셔서도 달 밝은 밤이면 집 뒤에 야산을 개간하기 시작하셨다. 나도 아들이라고 어머니를 거들어서 돌 맹이를 추려 나르는 일을 도왔다.
밭을 개간하는 것은 야산에 불을 놓아 풀을 태운다음 삽이나 곡괭이로 땅을 파서 자갈이나 돌을 골라내 밭을 만드는 것이다. ( 아버지는 늘 약주에 취해계시면서 괜히 남의 땅 개간하여 땅주인만 좋은 일 시킨다고 야단만 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그날도 나는 어머니가 파놓은 땅을 돌아다니면 자갈을 골라 밖으로 내다 버렸다.
그런데 달빛에 유난히 하얀 하게 비치는 돌이 있었다.
간혹 차돌이 그런 빛 이여서 무심 코 버리러 가는데 어머니가 곡괭이질을 하시다가
“ 아이고~우리 아들 고생이 많네! ”
하시면서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시다가 삼태기에 담아 있는 돌을 보시더니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시더니
“ 이돌 어디서 주어 왔니!”
하시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곳에 가시더니 어머니는 조심조심 주위를 파시더니 하얀 나뭇가지를 골라서 담으셨다.
그리고는 나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하시면서
“누나에게 깨끗이 씻어 달라고 해라!”
하셨다.
누나가 깨끗하게 씻어주어 기분 좋게 잠을 자고 며칠
후 (그 뒤로 어머니는 밤에는 땅을 개간하지 않으셨다.)
밭 주위에 커다란 언덕이 생겨서 내가 누나한테 물었더니 밭을 개간하다 뼈가 나와서 무덤을 만들어 준 것이라 했다.
내가 그날 만진 게 사람 뼈이었는데 어머니가 내가 놀랄까 보아 그리 혼자 처리 하신 것이다.
나중에 철이 든 후에 그때의 일에 대해 알았다.
( 2 )
예비군 훈련 중에 생긴 일이다.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초창기 예비군 시절에는 지역 예비군 훈련에도 할 것은 다 했다. 그날은 뒷산에서 참호를 파는 날 이었다.
별짓을 다시킨다고 투덜대던 정구가 삽질을 하다 말고 기압을 하듯 소리를 쳤다.
“ 으~ 아악~머리카락~ 시 체~ ”
뒤를 넘어져 버둥대는 정구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더 이상 파지 말고 덮어서 봉분을 만들어라! ”
중대장의 말에 못 볼 것을 본 양으로 삽들을 들고 얼른 덮어서 봉분을 만들고 무엇을 꺼리는 것처럼 모두들 자리를 피했다. 그날 동구 밖 술집에서 술을 떡이 되도록 먹은 정구 녀석이
그 이튼 날
얼굴이 부스스 해서 밤새도록 처녀 귀신에게 쫓겨 다녔다 고 한다.
기가 약한 녀석이라고 놀려 댔지만 얼굴이 누렇게 뜬 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요즘이야 장례식장이 많이 생기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니까 그런 일은 없지만 그때만 해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