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간혹 건강에 보탬이 될만한 음료나 과일 쥬스를 다소곳하지 않은 모양으로 건네어 주어도 무방하다. 깔끔하게 다림질한 바지나 셔츠, 그리고 깨끗한 속옷은 항상 찾기 쉬운 장소에 보이도록 하면 만사 통과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 퉁방맞은 소리를 건네다 원하지 않은 답들이 올 때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주절거리기를 멈추지 않아도 상대방은 괘념치 않는다.
태어날 때 가진 언어가 남자는 천 번의 말이고
여자는 오천 번의 말을 하루에 써야 하는데
남자는 그 천 번의 말들을 밖에서 다 소진하고 들어 오고
여자는 주위의 같은 부류들과 침이 마르도록 써도 겨우 삼 천번의 말만 소진하기에
그 나머지 이천 번의 말을 돌아 온 남자에게 한다는 식의
검증되지 않은 말들을 늘어 놓아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으면 된다.
혈연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신경을 써 주어야 할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지난 날에 대한 응어리들을 조금은 삼켜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출근할 때에는 아무런 통고도 없다가 오후 느즈막한 시각에 어느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며 있다고 하여도 그런가 보다 여기면 된다.
그나마의 연락에 감읍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피차에 윤활유가 될 수가 있지만
그 정도의 너그러움은 기대 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
상대방은 그 또한 염두에 두지 않는다.
평등의 관계를 유지하다가 보면 자연스레 대화도 남의 다리 긁는 식으로
속내를 보이지 않기에 아, 이러한 식의 가면도 필요하구나를
매번 뜨끔하게 고마워하다가도
이번 달 하숙비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란 식의 숫자적인 개념이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대화의 난이도는 급강하를 하기에 이르고
수칙상 금기시된 '비교하기'에 이르면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할 여력마저 상실할 지경에 이르게 되고
시간차 공격에 대비한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숨 고르기에 선수를 친다.
조목조목 따지고 앞으로의 협력과 미래적인 청사진을 내비치지 말아야 한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비타민과 건강 음료와 과일 쥬스를 건네거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찌개류를 식탁위에 펼쳐 보이기만을 원한다.
하숙생은 평온해 보이는 기운과
구시렁거리지 않는 손길과
깜짝 놀랄만한 재산상의 손실에도 그저 침묵으로만
이 집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