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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한 A씨의 사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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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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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 2005-07-17

사흘동안 잠만 잤었다.

 

난 그 사흘의 기억이 전혀 없는데 밥이 들어오면 일어나서 먹고 화장실 가서 볼일도 보았고 말도 주고받고 엉엉 목놓아 울기도 했단다. 옆침대 아주머니의 남편인 근육맨 아저씨가 인상을 썼던 것은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보고도 물을 안 내리고 나와서였던가보다. 불면증으로 입원한 나는 약의 힘을 빌어 깊이 잠들 수 있었지만 그것은 진정한 잠이 아니고 거의 까무라치는 기절 수준이었다. 암튼 사흘 후 주사약 대신 먹는 약으로 바뀌자 정신이 좀 들었다.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어린시절 학교 조회시간에 기절 한번 못 해봤었고 술 마시고 필름 끊어진 적도 없었고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을 때도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잃는다는 것이 싫어서 부분마취만 하고 낳은 나였는데 나의 생애에는 그 사흘이 실종이다. 잠이란 실종이고 삭제이고 망각이었고 기억의 지우개였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좀더 많이) 우리는 잠을 잠으로써 지우고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잊지 못하고 자꾸 기억하게 된다면 병이 되는 것인가 보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것은 자꾸자꾸 지워야 겠다.

 

아주머니는 꺾여 버린 희망과 좌절로 몸도 마음도 상한 내가 안돼 보였는지 여러가지 얘기를 내게 해주었던 것 같은데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단지 아주머니의 동생이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과 식물인간처럼 된 동생을 돌보러 자주 그곳에 온다는 얘기 외에는... 또 나를 위로하려는 뜻에서인지 병원비로 엄청난 돈이 사그라들었다는 얘기도 보태셨다. 아픈 동생을 내몰라라 하지 않고 누구보다 나서서 돌보는 아주머니는 여릿한 인상과는 달리 강인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아주머니의 친정이 남편의 직장과도 가까와서 남편하고도 여러가지 얘길 했었던 것 같다.

 

내 뇌리에 없는 사흘까지 합하여 1주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어찌저찌 고심에 노심초사에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남에게 저렴하게 양도함으로써 깨끗이 청산하였으나 청룡열차를 10번쯤 연달아 탄듯 어지럼증이 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