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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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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목화솜 이불


BY 개망초꽃 2005-07-13

94번째 맞는 외할머니 생신이다. 새벽 빗길을 뚫고 춘천으로 향했다. 거리마다 호스로 물을 뿌린 것처럼 젖어 시원하다.


춘천 시내로 들어서서 길을 헤맸다. “백 미터 앞 죄회전입니다. 삼백미터앞 우회전입니다. 이 도로는 속도를 줄이십시요. 안전운행하십시요.” 똑똑한 척 떠들던 네비게이션(이리 쓴 게 맞는건지..)이 헷갈려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 동생이 한림대학을 한림병원이라고 해서 네비게이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고 한것이었다.


춘천 외삼촌댁엔 이모들이 먼저 와 있었다. 외할머니는 친딸처럼 날 반기신다. 어릴 적에 자신의 젖가슴에 묻고 살았던 외손녀라서 다른 외손주들보다 정이 도톰한 건 사실이다.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 댁에 두고 서울로 가셨다. 그때가 8살이었으니까 할머니 젖을 만지작거리며 없어진 부모의 정을 외면하려 애썼다,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외할머니는 이번엔 다르셨다. 안면근육이 바람결에 문풍지였고, 걸음걸이도 아직 덜 여문 옥수수를 달고 있는 옥수숫대처럼 흔들렸다. 등짝은 꼽추가 되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시도 가만히 안 앉아 계시더니 이번엔 한자리에서 꼼짝을 안하셨다. 낡아져 밑이 빠지고 있는 쇼파같았다.


모여든 친척들 24명이 펜션으로 갔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가다보니 앞엔 냇물이 흐르고 사방으로 산이다. 마당엔 오래된 뽕나무가 많다. 개가 종류별로 네 마리였다. 샴 고양이도 있다. 우리를 보더니 컹컹 멍멍 켕켕 야옹거린다. 숯을 피워 고기를 굽고,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먹었다. 꺽지,메기,빠가살이,모래무지...민물고기 잡는 것이 취미인 외삼촌 큰아들은 민물고기를 작살로 잡는다. 깊은 곳으로 잠수를 해서 작살로 잡은 걸 곧바로 회를 쳐서 먹고, 매운탕을 끓이면 칼칼하다. 밤늦도록 지난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그랬다. 몸은 늙었지만 다시 어린시절도 돌아간 것 같다고...대부분 고향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친척들이라서 그때 그 시절로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외할머니는 아버지를 일찍 잃은 어린 나를 품에 앉고 키우셨다. 할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 텃밭 한 귀퉁이에 매년마다 목화씨를 뿌리셨다. 내가 결혼하면 목화솜이불 한 채 혼숫감으로 해 주시려고, 강원도 비탈밭에 씨를 묻고, 때양볕에 수건 뒤집어쓰고 잡초를 뽑고, 가을날 마른 씨방 안에 애기 주먹만한 목화를 따셨다. 곡식을 가둬 논 창고, 할머니 키보다 조금 작은 항아리에 목화를 저축해 두셨다. 스물다섯에 결혼을 한 나는 목화로 된 두꺼운 이불 한 채를 장롱 속에 넣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너무 두꺼워 겨울에만 잠깐씩 덮었는데, 덮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이 울컥거렸다. 내가 못살고 싶어 못산 건 아니지만, 평탄한 결혼생활이 이어지지 않아서 목화솜 이불을 보면 가슴이 찢어졌다. 이불을 넣을 때마다 그 이불을 한번씩 쓰다듬어 주면서 “할머니 나 잘 살고 싶어요. 근데…….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생인가봐요.” 하면서 가슴이 너덜너덜 해졌다.


펜션에서 일박을 했다. 아침을 먹고, 들길을 걸었다. 길가엔 패랭이꽃이 눈부셨다. 밭둑가엔

산딸기가 패랭이꽃처럼 활짝 피어 눈 시리다. 유유히 흐르는 유리창 같은 물, 크고 작고 중간 것까지 고루 섞인 고운 돌, 흩어졌다 하류로 모여든 모래밭, 고목이 된 밤나무에 부드러운 털을 가진 애기 밤송이, 가늘게 뻗는 낙엽송 언덕, 그림 같은 하얀 집에 때 이른 자주색 코스모스꽃, 이 모든 걸 온 몸으로 온 정신으로 만끽했다. 내 것은 아니지만 잠시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도 난 흡족했다. 미래의 내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했다.


외할머니는 한 자리에서 주저앉은 것 같은 쇼파처럼 계시다가 나를 보시더니 몇 번이나 내말 잘 들어라 그러시면서 “힘들어도 잘 살아야 한다. 참고, 또 참고...잘 살아라.” 유언인 듯하다. 내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아서 대답을 크게 잘했다. “그럼요. 저 잘 살고 있고, 잘 살거에요. 걱정마세요.” 할머닌 내가 혼자가 된 걸 아시는 것 같다. 헤어지던 차안에서 할머닌 눈물을 보이셨다. 처음 있는 일이였다. 딸들을 보내시면서 한참동안 손을 놓지 못하셨다. 외삼촌은 그러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머니 방문 먼저 열어보신다고... 밤사이 잠자듯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올 생신이 마지막일 것 같으니 자주들 내려오라고...


16년만에 결혼을 청산하면서 목화솜이불도 깨끗하게 결말을 지었다. 떡살무늬 찍힌 장롱도 버렸고, 자리차지 많이 하던 문갑도 버렸다. 쓸데없이 걸리적 거리는 걸 다 버렸지만 허기가 졌다. 목화솜 이불을 쓰레기통 옆에다 두고 오면서 허기가 졌다. 그 이불을 가지고 갈 수 없는 현재의 내 자신이 싫어 굶주림에 쓰러지고 싶었다.

 

외할머니를 두고 오면서 그 심정이 되었다. 목화솜 이불을 두고 오던 심정, 두번 다시는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그 허함, 그 슬픔, 그 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