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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샤워


BY 송영애 2005-07-11

      노점상아줌마의 일기 -눈물의 샤워- 송영애 내 조그만 몸 속 어디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담겨 있었을까. 혹시 그동안 먹은 물이나 맥주가 다 눈물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헛된 생각을 하며 울었습니다. 꽃샘추위와 씨름을 하다가 내 몸뚱어리가 졌는지 감기몸살이 난 것 같아서 일찍 포장마차 문을 닫고 집으로 오는 길에 그냥 많이 울고만 싶었습니다. 길에서 울 수도 없어 참고 집까지 꾸역꾸역 기어서 들어와 어린 딸과 함께 샤워를 했습니다. 뜨거운 물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정말 좋은 볼거리는 아니었지만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수도꼭지에서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을 핑계삼아 후련하게 울기에는 얼마나 좋던지...... 아무것도 모르고 물 속에서 장난치며 좋아라하는 딸을 보니 더욱 눈물이 나왔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서글퍼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텔레비전 연속극 같은데서 보면 샤워를 하며 머리를 젖히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 흘리던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멋진 모습을 한번쯤은 흉내를 내보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도 했었지요. 오늘 직접 내가 경험을 해보니 다시는 그런 장면이 멋지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오늘의 내 처량한 모습이 생각나서 많이 울 것만 같습니다. 산다는 건 어찌 이리 힘이 들까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고 늘 웃으며 남들까지 위로하며 살아가는 긍정적인 나이지만 살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제자리걸음도 아니고 오히려 뒷걸음치는 이놈의 팍팍한 삶을 어찌할까요. 우리동네 동사무소에 가면 액자에 걸린 멋진 글귀가 있습니다. -걷는 자만이 전진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걷는데 전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아기도, 할머니도,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도 단지 빠르지 않을 뿐이지 걷고 있으면 모두 전진하지요. 그래서 그 멋진 말을 내 좌우명처럼 늘 가슴에 새기며 걸었습니다. 찬란하게 숨어 있을 내 앞날을 향해 날이면 날마다 걸었습니다. 지금도 걷고 있고 내일도 걸을 것이고 모레도 글피도 난 앞만 보고 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놈의 길엔 뭔 돌멩이가 이리도 많고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풀숲에 묶어 놓은 끈에도 걸려 넘어지게 되고 건너야 할 강도 너무나 멀어서 발만 동동 구르기 일쑤입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싶다가도 이렇게 힘든 날엔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내 마음 때문에 바보 같이 엉엉 울기가 일쑤입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남편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오고, 아무 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고 있는 병아리 같은 새끼들을 봐도 눈물이 나오고, 눈이 시리게 푸르른 하늘을 봐도 눈물이 나오고...... 어느 가수는 우는 아인 바보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우는 어른도 분명 바보 맞겠지요? IMF라는 이름도 요상한 것이 우리 집을 침투한 후로 이 싸가지 없는 것이 도대체 우리 집에서 나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달래도 보고 쫒아 내어도 보고 물을 끼얹어 보아도 이 질긴 놈이 우리 집에 똬리를 단단히 틀고 아직도 지키고 있으니 사람 환장할 노릇입니다. 6살짜리 딸아이를 데리고 포장마차에 출근하기 전에 날마다 산엘 오릅니다. 딸아이가 산에서 만난 어른들을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노라면 만나는 사람들 중에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은 "유치원 안 다니니?"라고 대답을 합니다. 아직도 유치원은 방학인 줄 알고 딸아이는 "방학 이예요."라고 당당히 말을 하지만 너덜너덜하게 헤지는 엄마 가슴은 어쩌란 말인가. 형편이 되질 않아 올해는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자연을 가르치고 공부도 가르쳐서 내년에나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건네는 "유치원 안 갔니?"라는 인사가 날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게 만듭니다. 살려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겐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을 하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라고 늘 자부하면서도 돈이 없어 딸아이를 유치원에도 보내지 못하고 큰아이가 좋아하는 바둑학원도 못 보내는 부모 마음은 늘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6살엔 꼭 유치원에 가야한다는 법도 없건만 사람들의 틀에 박힌 생각 때문에 난 늘 고개 숙인 엄마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도 내 소신껏 아이를 키우렵니다. 유치원에 못 가는 걸 어쩌겠습니까. 산을 오르기 전에 몇 개의 유치원을 지나치지만 그곳을 보면 오히려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산을 오르는 딸아이가 더 행복한 길을 걷고 있노라고 억지를 부려보며 아이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면 엄마의 아픔 따윈 알지 못 하는 딸아인 더욱 환한 웃음으로 화답해 줍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눈물과 물을 한데 섞고 울고 있던 나는 이렇게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시간조차도 사치인 것 같아 얼른 물을 끄고, 눈물을 그치고 옷을 주워 입었습니다. 속이 후련타!! 역시 눈물은 좋은 것이여. 삶이 버거우십니까? 한번쯤은 샤워를 하며 실컷 울어 보십시오. MBC라디오 '여성시대' 방송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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