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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후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BY 송영애 2005-07-07

      내가 죽은 후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송영애 엊그제 아는 사람 집에 갔다가 너무나 놀랍고 황당한 광경을 보고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난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꼈다. 여러 엄마들과 아이들이 모여 다들 밥을 먹는데 그 집의 아들은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아이는 듣는 체도 않고 곧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 갈 것 같은 자세로 게임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도 얄미웠지만 그 아이의 엄마의 행동은 내 입을 소리나게 벌리게끔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밥을 차리는가 싶더니 컴퓨터 앞으로 달라는 아이의 대령에 맞춰 컴퓨터 앞에 밥을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그전에도 자신은 아이한테 그렇게 한다는 걸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러는 그 아이 엄마의 행동이 너무나 맘에 들지 않았고 아이들이 그 광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난 그 엄마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상관없이 그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 "○○아, 밥 먹을 땐 상에서 바른 자세로 먹어야지. 컴퓨터 앞에서 게임하면서 밥 먹는 건 나쁜 버릇이야." 그래도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게임을 하며 밥 한 숟가락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밥을 입에 떠 넣는다. 그 아이 엄마에게도 한 마디 했다. "아니, ○○ 엄마는 아이가 저러고 있는데 밥을 갖다 차려줘요?" 했더니 이 엄마의 말이 더 가관이다. "뭐 어때?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닌데." 난 거기서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먹던 밥을 말없이 먹고 서둘러 그 집을 나와 버렸다. 내 아이들에게 더 이상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놀러갔다가 기분 묘하게 흔들고 돌아온 날이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승근아, 아까 ○○ 형처럼 컴퓨터 앞에서 밥을 먹으면 되겠니?" "아뇨?" 아들은 당연히 안 되는 일을 엄마가 물어 본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의 생각과 행동이 다르겠지만 부모가 무엇인가. 아이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들을 깨닫게 해주고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게끔 도와주도록 해줘야 하는 자리가 부모의 자리가 아닐까.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바로 잡아줘야 하고 아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직 생각주머니가 덜 채워져서 옳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는 어린아이들인데 아까 그 엄마의 행동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방법하고 다르기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가 갖춰지지 않게 키우고 있고 아이의 버릇을 엄마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에 화가 났다. 내 친구는 그런 일에 늘 흥분하는 나를 두고 다 자기 자식 키우는 방법이 다르니 내버려두라고 하지만 난 아이들에 대해서만큼은 욕심이 많다. 내가 여기서 욕심이 많다는 것은 공부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난 내 아이들에게 늘 그런 말을 한다. "엄마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거짓말을 하는 건 용서해 줄 수가 없다. 또 어른들께 버릇 없는 행동을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어.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하면 뭐해, 사람들에게 버릇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면 공부를 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는 거야." 난 항상 공부가 우선이라고 가르치진 않는다. 공부를 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출세와 명예를 위해 시키는 부모도 있을 테고 자식 잘 되라고 시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부는 자식이 잘 되라고 시키면서 부모가 곁에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기본조차도 가르치지 못한다면 부모가 제 할 일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위에 보면 한심하고 답답한 엄마들이 참으로 많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이가 필통을 열 개도 넘게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3년 동안에 필통을 열 개 넘도록 잃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당연히 잃어버릴 때마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사줬기 때문이다. 난 아들이 필통을 한 번 잃어버린 후로 필통을 다시 사주지 않고 있다. 가끔 사 달라고 조르긴 하지만 더 반성을 한 모습을 보고 사줄 생각이다. 자신의 물건을 챙길 줄 모르는데 잃어버릴 때마다 사주면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물건을 챙길 줄 모를 것이고 물건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사 준 준비물은 절대 다시 사 주지 않는 게 내 철칙이다. 다음에 다시 필요할 때 지난번에 샀던 똑같은 준비물을 챙기지도 못 하고 다시 사 달라고 졸라서 처음엔 사 줬는데 그 후에 또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이젠 아이에게 못을 박았다. 한 번 사준 준비물을 다신 사주지 않을 테니 잘 챙기라고 했더니 이젠 습관이 돼서 잘 챙긴다. 준비물을 못 챙겨 가면 선생님께 혼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혼도 나보고 매도 맞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이의 습관과 버릇을 망치는 걸 많이 봐왔다. 아이는 잡초처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부모가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게끔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난 아이들을 내 표현으론 대충 키운다. 밥도 혼자 차려먹을 수 있게 만들고 먹고 나서 본인의 그릇은 당연히 싱크대에 넣어야 하며 엄마가 가끔 집에 없을 땐 열쇠로 문 여는 방법도 미리 가르쳐줬다. 어떤 교수는 아이가 혼자 열쇠로 문을 열 수 있는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서 정답은 가르치는 그 순간부터라고 말했다고 했다. 어느 해의 달력을 보니 자녀교육에 대한 참 좋은 지침이 있었다. - 내가 죽은 후 아이들의 삶을 상상해 보라. 아이들의 홀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당신의 자식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 난 그 달력을 몇 해가 지났지만 우리 집 거실에 걸어두고 늘 보며 참고하고 있다. 아이들은 비싼 메이커 옷을 입혀야만 훌륭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비싼 음식을 먹여야만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많이 사주는 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행복을 위해 평생의 행복을 저당 잡힐 것인가. 부모는 아이들의 모든 걸 다 챙겨주고 거친 가시밭길에서 앞서가며 가시를 잘라주며 아이가 오게끔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싸구려 옷을 입힐지라도 여러 가지 색색의 옷을 입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란 걸 가르쳐야 하고, 텃밭에서 뽑은 상추 한 잎을 먹여도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농부들의 고마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는 가시밭길에서 가시를 자르면서 아이가 순조롭게 부모의 도움으로 가시밭길을 오게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거칠고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낫으로 가시나무를 자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웅변을 아주 잘할 수 있다면 지금 심정으론 "이 연사! 여러분 앞에서 아이들을 강하고 바르게 키우자고 외칩니다!" 라고 정말 크게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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