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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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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다시 태어나길


BY 송영애 2005-06-20

 
    오늘 같은 날 다시 태어나길 송영애 뒤로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옆으로는 밤나무 가득한 산이 있어 아름다운 그림 속에 지어진 듯한 우리 초가집이 있었다. 여름이면 송충이가 소나무에서 떨어져 집 앞마당 가득 기어다닐 때도 징그럽다는 생각을 해 보질 않았고 사내기라는 냄새나는 곤충이 우리 집 방바닥을 기어다닐 때도 그냥 늘 봐 왔던 것이기에 괜찮았지만 어린 내게 무섭고 징그럽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랫집인 형규네 집엔 형규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규 누나와 내 친구 형규가 살고 있었다. 분명 사람은 한 사람 더 있었는데 이상하게 형규네 가족들은 그 한 사람을 빼 놓고 다른 식구들만 방에서 늘 따뜻한 밥을 먹으며 웃고 즐거워했다. 난 지금도 가끔 그런 습관이 있지만 어릴 적에도 늘 마당 끝에 서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마당 끝에 서서 멀리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노라면 늘 내 발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허...허..." 우리 집 바로 밑에 있는 형규네 헛간 앞에서 누군가 날 쳐다보며 내는 소리였다. 형규네 형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손과 발은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 형태도 이상하게 사람 같지가 않았고 말도 하질 못했으며 늘 눈동자는 딴 곳을 바라보는데 고개는 날 향해있었다. 형규네 형은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했다.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한 그를 형규네 부모님은 집안에서 키우질 않고 헛간에서 소와 함께 길렀다고 한다. 내가 본 형규네 형은 헛간에 같이 묶여있던 소와 똑 같이 행동을 했다. 얼굴 형태만 사람의 형상을 조금 했을 뿐이지 팔도 굽을 대로 굽어서 제 역할을 못했고 다리도 항상 앉은 채 양옆으로 벌리고 어기적어기적 기어다녔으며 동물과 똑 같은 대접을 받으며 살았고 아주 서럽고 짧은 삶을 살다 간 슬픈 사람으로밖에 기억되질 않는다. 난 형규네 형이 무서워서 늘 멀찌감치 떨어져 그를 바라보곤 했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형규네 형을 볼 때마다 돌을 던지며 "야! 병신! 여기 좀 쳐다 봐!" 형규네 형은 분명 아이들을 쳐다보는데도 눈동자는 딴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이들은 그 모습이 재밌다며 여린 코스모스 꽃잎 같은 형규네 형을 때리며 놀리곤 했다. 그래도 형규네 형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변함 없이 "허...헐..." 하다가 침을 흘리며 헛간 속으로 기어 들어가곤 했다. 어째서 형규네 부모님은 그 아픈 형을 헛간에서 키울 생각을 했을까. 우리 할머니께 형규네 형을 볼 때마다 물어보곤 했었다. "함마이(할머니), 형규네 형은 징그럽고 무서워. 그러면 할머니께선 "그런 소리하면 낸중에 지옥 간다. 하느님이 다보고 있응께 그런 말은 하지도 말어 가시나야, 알았냐?" 난 무서우면서도 "알았어, 근데 왜 형규네 형은 눈이 이렇게 많이 오고 추운데도 방에서 안 자고 헛간에서 잔당가?" 하고 물으니 형규네 형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자 형규네 부모님께선 동네 창피하다며 갓난아이를 죽으라고 헛간에 갖다 놨다고 한다. 소가 묶여 있고 쇠똥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고, 쇠파리들 날아다니고 들어가면 냄새 때문에 구역질나는 헛간에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죽지 않았고 살아있는 목숨 없앨 수도 없어 그냥 헛간에서 키웠다고 했다. 아이는 커 갈수록 짐승을 닮아갔고 함께 생활을 하던 소가 엄마인양 소를 쳐다보며 애처롭게 웃곤 했다. 소도 형규네 형을 자기 새끼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늘 형규네 형이 소를 보고 웃노라면 형규네 형이 흘리는 침을 핥아주고 발로 등을 쓰다듬어주곤 했었다. 익숙해진 그 모습에 난 그냥 넋을 놓고 바라보기 일쑤였다, 늑대소년이라는 이야기처럼 당연히 소가 엄마인 줄 알고 소를 닮아갔던 형규네 형. 형규네 형이 당연히 새끼인 줄 알고 보살펴 주던 소. 짐승도 이렇게 사랑을 베푸는데 형규네 식구들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장애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형규네 형의 슬픈 눈망울이 떠올라 내 가슴이 축축해진다. 어느 날, 형규네 형이 죽었다며 멍석말이를 해서 지게에 지고 산을 오르는 형규네 아버지를 본 후론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그 슬픈 눈망울. 햇살 좋은 오늘 같은 날, 이름도 없이 짧은 삶을 살다간 형규네 형이 밝은 햇살 아래에서 부잣집의 갓난아기로 태어나는 날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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