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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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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보낸 메일


BY 낸시 2005-06-18

내겐 언니가 둘이 있다.

여덟살 차이가 지는 큰 언니는 언니라기 보다 엄마 같을 때가 많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화 낼 줄도 모르고 그냥 너그럽기만 하다.

어려선 데리고 포풀러 나무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도 듣게 하고, 자운영 꽃밭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깨닫게 해주었다.

제대로 씻고 살 줄도 모르던 때, 까맣게 된 손등이 트면 데리고 앉아 따뜻한 물을 손을 담그고 정성스레 때를 밀어준 후 언니가 쓰던 크림을 발라 보들보들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그러던 언니는 내가 오십이 훌쩍 넘어도 마냥 어린애인 줄 알고 잔소리도 잘한다.

언니의 잔소리가 싫어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웃집 아줌마나 언니가 다니는 성당 사람들하고 하라고 일렀다.

나는 이렇게 못 된 동생이다.

그런데 언니가 이런 메일을 보냈다.

 

청소를 하는데 갑자기 유나의 말이 떠올라 나를 미소짓게 한다.
너도 그 미소에 동참해 보렴.
 
욕조에서 유나를 안고 목욕을 시키는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유나가
"할머니, 유나가 할머니 사랑하는 것 알지?"
입을 벌리고 있는 나에게 한술 더 뜬다.
"할머니, 보고싶었어."
이 정도의 말을 한 때가 언제냐면 3주 전이었다.
 
(맹모삼천지교} 라더니 현수가 유나를 데리고 너의 집에서 몇 달을 살다  온 것이 이렇게 유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나 보다.
 
 
 
유나는 언니의 세살짜리 외손녀이고 현수는 언니 딸이다.
유나는 말 배우는 속도가 또래에 비해 빠른 모양이다.
언니는 손녀딸의 이쁜 짓을 보면서 내가 생각났나보다.
언니의 메일에 행복해진다.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항상 선의로 해석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난 유나만큼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데...
 
언젠가 유나의 엄마가 되는 조카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그러는데 이모가 어렸을 때 무지무지 착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하하...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못 된 아이였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싫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이쁘고 착한 사람으로만 기억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나도 언니처럼 그런 사람이고 싶다.
다른 사람의 미운 짓은 다 잊고 이쁘고 착한 것만 기억하고 싶다.
그런데 형만한 아우가 없다던가...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언니의 메일을 읽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본다.
다른 사람의 이쁘고 착한 것만 기억해야지...
섭섭하고 얄미운 점은 다 잊어줘야지...
 
결혼하고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한 날, 나는 언니가 보고 싶었다.
친정엄마가 살아있었지만 늙은 엄마보다 언니가 더 의지의 대상이었나 보다.
언니 얼굴을 한번만 보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도 내 속상한 마음이 풀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사람으로 떠올려졌으면 좋겠다.
정말 힘들고 속상한 순간에 얼굴을 떠올리며 위로가 될 수 있는...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언제라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